'일주일 모두 브런치연재북을 만들려다가..'
탈상제를 마치고 어머니 유품을 정리하다가 눈 좀 붙이고 새벽일 하고 글을 써나갔다.
어머니 심장병이 심해지면서 내가 그 몫을 아버지 동생과 함께 대신하게 되었고 이제는 완전히 세 남자
몫이 되었다.
어머니와 나는 짝꿍이었고 큰딸 역할도 하며
풀천지에 필요한 일들을 시키지 않아도 찾아 알아서 힘이 닿는 데까지 해나갔다.
그래서 자주 잠이 부족해 몸이 피로해도 참으며 했고
더 연세가 있으셨던 어머니는 견디지 못하고 먼저
떠나셨다.
( 3년 전 아버지께서 어머니 김장 도와주신다고
무 채칼로 썰다가 오른손 엄지손가락이 일부 베어나가
평소 친분 있는 동네 삼성의원 원장님께 동생이 모시고 갔습니다.
따라오신 어머니 얼굴에 이상을 감지한
원장님이 검사를 해보셨고 10~20프로 사이 간신히
뛰고 있는 '심장병' 이란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서야 어머니는 농사의 짐을 내려놓고 좀 쉬실 수 있는 '여유'를 가지게 되셨습니다. )
건강하게 살고 싶어 선택한 농작물들과의 재관계 설정이 필요하다.
매일 연재브런치북 책임감에 마지막 승인 버튼을
누르지 못하고 지금처럼 자유롭게 내가 쓰고 싶은 시간대에 쓰다가 글이 30개 정도 모이면 두 번째 북을
만드는 걸로 생각을 바꾸었다.
두 번째 책은 떠나간 어머니를 그리며
하루하루 제대로 살아나가겠다는 다짐을 기록한
풀천지 재현의 비망록이다.
"온 세상 온마음이 풀천지 되었으면 합니다." 자급자족 가족소농 지속적인 건강한 삶의 가치를 실현시키는 꿈을 꾸며 부모님 동생과 땅을 지키는 농부가 되었습니다.
삼무농법 무비닐 무비료 무농약을 하지 않는 농사는 풀천지가 처음이라 사명감을 가지고 묵묵히 힘들어도 네 명이 똘똘 뭉쳐해 나갔습니다.
25년이 지난 지금 저는 41살 동생은 36살 농촌 노총각이 되었네요.
어머니 중심으로 돌아가던 풀천지는 어머니를 25년 12월 8일 심장병 심정지로 보내드리면서 크나큰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너무도 다양한 작물을 심다 보니 쉴 새 없이 작물관리 손질 가공에 흘러가는 세월은 즐거움을 힘겨움으로 바꾸어 놓았네요.
*기계도움은 한정적/대부분 잔손질 수작업/품값이 안 나오는 일도 많고 고생한 농작물 제대로 소비도 부족
요즘 150세 시대로 발달한 세상에 풀천지식구들은 200살은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 생각했지만 오만이었습니다.
가장 큰 가치였던 건강한 삶의 고민을 다시 시작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