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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뤼미쌤 Jul 30. 2023

거창하게 말고, 그냥 나부터 생각하면

요즘 일련의 사건들을 보고 들으면서 여러가지로 생각이 많았다. 안 그래도 이 직업을 평생 할 자신은 없었는데, 스스로 목숨을 끊은 초임교사의 소식, 아동학대로 고소당하는 여러명의 교사소식, 여러 학부모 민원에 대한 뉴스들을 듣다보니 그저 마음이 점점 더 심란해갈 뿐이었다. 내가 느끼기에 교사의 현실은 외부에서 생각하는 것과는 많이 다르다. 이 지점이 나를 더욱 힘들게 하는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의 인정에 목숨거는 것은 아니지만, 특히 좋은점 위주로 시샘당하고 힘들고 나쁜 점은 다 당연히 감당해야 할 수준으로 마치 볼드모트처럼 교사의 하루하루와 실상에 대해 말할 수 없는 처지에 놓여있는 기분. 교사의 명예와 사회적 지위는 옛날에나 높았던 것 같다. 지금은 그저 여러 직업들 중 하나의 수준이 되었는데, 요즘 느끼는 것은 학원에나 요구할 법한 것을 학교에 요구하는데다가 학부모와 동급까진 아니어도 학부모 다음으로 가장 많은 책임을 요구하는 자리인 것 같다. 약간 서비스직같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마치 학원비를 냈으니 이것저것 요구해도 된다는 것처럼 교사들도 국민의 세금으로 월급받으니 내가 이것저것 요구해도 되고 악성민원까지도 기꺼이 너네는 들어야지 하는 태도의 서비스이용자들을 만나면 넌덜머리가 난다. 어떻게 보면 교사도 교육서비스를 제공하는 서비스직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서비스직에게 학부모 수준의 책임을 요구하는 건 웃긴거 아닐까? 우리가 판매처에서 물건이 잘못왔다고 해서 물건을 교환/환불은 하지만, 그 판매업자를 고소하지는 않지 않을까? 학교에서는 우리 아이를 수업 중 자는데 깨웠다고 해서, 벌점을 주었다고 해서, 폭력적인 아이를 말리려고 손목을 잡았다고 해서, 아동학대로 개인이 고소를 당한다. 또, 누군가가 불의의 사고로 죽거나 다쳤을 때, 특히 생명과 관련한 사안이 발생했을 때, 이 학교의 교사는 뭐했는지 추궁을 당하고 상담기록 공개를 강요당하며 고소를 당할 수도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에서 학교와 교육청, 교육부라는 교육조직은 교사를 지켜주지 않는다. 교사 개인이 이를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현실에서 교사는 이용자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해달라는 무리한 요구와 더불어서 문제가 생겼을 시 다 책임지라는 책임소재와 원망과 비난을 모두 견뎌내고 개인의 임기응변으로 전쟁터에서 버텨내야 한다. 교사에게는 전문성과 자율성이 있다고 교육학에서 배웠는데, 교사의 전문성은 학교의 이용자들(학부모와 학생)은 믿어주지 않고 불신을 기본으로 하며, 교사의 자율성은 자유는 없이 책임만 있는 것이 현실인 느낌이다. 



나쁜 소식들이 들려오다보니, 나의 생각도 부정적으로 초점화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요즘의 트렌드를 반영할 때 학교가 서비스제공주체라고 한다면, 상담교사는 충분히 좋은 질의 상담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컨디션에서 일할 수가 없는 것은 확실하다. 교원치유지원센터에서 개인상담을 받으면서 학교상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나는 상담의 재미를 모르고 단지 일로서 너무나 큰 부담을 느끼고 소진된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상담자로서의 열정은 상담 및 치료과정 내에서 내담자와 '접촉'이 이루어지고 내적 성장을 지켜보면서 재미를 느끼는 것에서 비롯되는 것 같은데, 상담교사는 상담과정에 충실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시간적 물리적 여유가 부재하다. 일단 한 명이 전교생을 커버해야 하고, 하나의 사안이 터지면 책임을 추궁당할 것을 대비해야 하는 서류작업이 너무나 많다. 예를 들어 자해(자살시도) 사안이 발생하면, 작성해야 하는 서류만 네다섯개가 되고 열어야 할 회의가 수두룩하다. 내야 하는 보고서는 어찌나 자세하고 촘촘한지, 힘든 마음을 주체하지 못해 자해를 할 수밖에 없었던 그 마음을 충분히 들어주고 싶은 마음과 달리 아이에게 당시 정황과 과거이력, 가족사항 등등 확인해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아서 그 마음에 도저히 충실할 수가 없다. 보고를 한다고 해서 어떤 지원이 오는 것도 아니고, 단지 더 큰 문제가 생겼을 때 보고를 했냐 안했냐 책임을 따질 때에나 쓰이는 보고서를 쓰고 있자니, 현타가 오는 것이 한두번이 아니다. 



이렇게 되다보면, 내가 문제인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많다. 그냥 아이를 위하는 마음, 교육적으로 어떤 개입이 더 옳을까 생각하는 고민, 무엇을 해주면 조금이라도 더 아이에게 다가갈 수 있을까 아이디어를 생각하는 그 교육자라는 알량한 사명감이 나를 더 힘들게 하고 옥죄는 것 같아서. 오히려 나도 그냥 서비스직에서 일한다 치고 마인드셋을 고쳐먹고 그냥 사무적으로 하는 게 이 교사라는 직업세계에서 버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아닐까 하고. 그렇게 점점 자책을 하게 되고 교사라는 직업을 언젠가, 가능하다면 너무 늦기 전에 그만둬야 겠다는 마음이 커져가는 게 아닐까. 



그래서 나는 무엇을 해야할까. 교사탈출은 지능순이라는 말이 있다는데, 나는 높은 지능을 가진 자가 되어 어떤 식으로든 탈출을 해야 하는 걸까 아니면 낮은 지능을 가진 사람으로 치부되어 그저 이런 급류 속에서 얼떨떨하게 정년까지 안주하게 되는 걸까, 아니면 혹시라도 교사로서의 사명감을 가지고 살면서 그래도 손가락에 꼽는 숫자만큼이라도 아이들에게 좋은 추억과 교육을 제공하며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보람찬 직업생활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이라도 있을까. 사실 자신이 없다. 어떤 미래를 어떻게 설계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다만, 어찌보면 엘리트 코스를 거쳐 이미 교사라는 소위 말하는 좋은 직업을 드디어 얻게 되었는데, 그 조직 안에서 지옥을 맛보았을 때 더이상은 길이 보이지 않고 고독하고 희망이 없다는 무력감을 느끼는 것이 어떤 것인지 그 외롭고 공허한 마음이 어떤지 아주 조금이나마 이해가 되기 때문에, 소식들이 남의 일 같지만은 않은 것이다. 나는 그런 틀에 갇혀서 학습된 무력감을 느끼면서 내 생명과 건강을 깎아가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싶지는 않아서, 뭔가 변화와 계기가 필요한 시점인 것 같다. 사실 이렇게 시위를 하고 뉴스가 보도된다고 해서 무언가 바뀔 거라는 기대조차 별로 되지 않는데, 이미 몸과 마음이 지쳐버려서 그런가 싶다. 거창하게 말고, 그냥 나부터 생각하면 뭐부터 바꾸어야 할까, 무엇부터 시도해봐야 할까 고민이 많아지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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