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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뤼미쌤 Nov 12. 2023

2023년 하반기를 보내며 느끼는 것들


어느덧 11월이 되었다. 매달 글 한 편씩은 쓰는 것이 올 연초의 목표였는데 하반기는 실천하지 못하게 되었다. 3년째의 사이클을 돌려보면서 확실히 하반기보다는 상반기가 더 업무강도가 세다고 생각했는데 올해는 또 그렇지만도 않았던 것 같다. 정말이지 하루하루를 겨우겨우 무사히- 보내고 넘기는 것이 쉽지 않다고 많이 생각한다. 마음이 아픈 친구들이 왜 이토록 많은건지 의문이 가득해지기도 한다. 요즘 시대의 트렌드인지, 코로나19사태가 대인관계 단절과 누적된 학습결손을 초래하여 대규모의 코로나후유증을 모두가 앓고 있는건지, 정신건강에 대한 인식이 높아져서 많이 드러내고 도움을 청하기 때문인지, 대입을 앞둔 교육특구의 고등학교라서 더 그런건지 도대체가 원인을 모르겠지만, 많은 일들이 벌어져왔다. 그저 살아서, 무사히, 하루하루를 보낸다는 것이 얼마나 당연하지 않은 일인지 일하면서 많이 느끼게 된다. 처음 상담일을 시작했을 때는 내가 이 일을 하지 않았더라면 알지 않아도 되었을 어둡고 우울한 이야기들만 듣는 것 같아서 싫고 또 부당하다고 느꼈었다. 그러나 점차 이 일을 하게 되어 감사하다는 생각도 들기 시작하는 시점인 것도 같다. 정신건강과 관련하여 분명 일반 사람들보다 더 많이 고민하고 정보를 접하므로 누군가 내 주변에 힘든 사람이 생겼을 때 미약하게나마 도와줄 수가 있고, 여러 케이스들을 접하면서 내가 부모가 된다면 양육에서 또 부부관계에서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지 미리 많이 고민하게 되기도 한다. 그리고 나에 대해서도 많이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상담일을 하기 때문에 나 또한 근근이 상담을 받으면서 나라는 사람이 어떤 모양인지, 나의 강점과 취약점은 뭔지, 대인관계 속에서 나는 어떤지 등을 끊임없이 고민하고 성찰한다. 그리고 이러한 성찰은 나를 지키고 보호할 수 있도록 이끌어준다고 믿는다. 내가 잘 하지 못하는 '알아차림'을 강제적으로 할 수 밖에 없는 환경이랄까. 내가 나의 감정과 상태를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하면 나의 내담자들에게도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고, 무엇보다 알아차리지 못하고는 도저히 상담이라는 분야에서 버틸수가 없다. 극한의 상황에서 생존을 위해 맨땅에서 데굴데굴 구르면서 나에게 부족했던 스킬을 얻어가고 있는 중이랄까.


 올해는 두가지 집단의 경험을 했다. 첫번째로는 상담교사가 모인 학교밖 교원학습공동체에서 4회기의 집단상담을 경험해봤고, 두번째로는 학교 안에서 9명 정도의 교사가 모여 3회기의 교사돌봄 회복적 서클에 참여하였다. 나는 개인적으로 집단상담은 참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대학을 다니던 시절 성당 동아리를 좋아했던 이유는 여러 활동들 속에서 "진심이 통하여 서로의 솔직한 면모를 나눌 때 함께 마음이 울리는 공명"이 좋았기 때문이었다. 또 대학 시절 학생생활상담소에서 한 번의 구조화 집단상담과 한 번의 비구조화 집단상담을 경험해봤고, 청소년상담사 3급 연수에서도 비구조화 집단상담에 참여한 경험이 있다. 집단상담에서는 서로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모여 자기개방의 양과 속도를 실험해보면서 조절해갈 수 있고, 또 서로의 아픔을 나누면서 큰 위로를 받기도 하고 연민과 관심 같은 따뜻한 감정들이 이끌어져 나오기도 한다. 무엇보다 집단 속에서 평소 나의 대인관계 패턴이 반복되어 나옴을 통찰하게 되기도 하고 새롭게 시도하고 도전하게 되기도 한다. 나는 평소에 말을 많이 하지 않는 편이고 대부분 듣기만 하며 누군가 질문을 할 때에서야 비로소 나를 꺼내어 놓는 편인데, 집단에서는 말하고 싶은 순서대로 말을 하고 제지하지 않는 편이다보니 내가 말을 하기로 선택하지 않는다면 2시간 내내 말을 한마디도 안할 수도 있다. 그리고는 너무나 답답하고 기가 빨린다고 느낀다면 다음 회기에서는 내가 제일 먼저 말을 하기로 결심하고 시도해볼 수도 있는 것이고, 그것이 좋았을 수도 뒤돌아서니 창피하고 후회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감정마저도 솔직히 나누면서 집단원들로부터 "과했다, 좋았다, 부족했다"등의 피드백을 받아볼 수도 있다. 그렇게 안전하다고 믿는 집단 안에서 나를 탐색하고 시도하고 피드백을 받으면서 내가 보다 편안한 방식의 대인관계를 찾아갈 수가 있다. 또 집단원들과 그 시간만큼은 서로 비밀을 지켜주고 서로의 감정분출(눈물, 화 등)을 버텨(holding)주면서 함께한다는 안정감과 따뜻함을 실체로 느낄 수가 있고, 그것만으로도 새로운 치유의 경험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집단은 현실 세계 속에서도 안전망이 되어주기도 한다. 하반기는 그래서 유난히 더 바빴던 것 같기도 하다. 아직 학교에서는 집단상담을 운영하지 않고 있는데, 걱정스러운 점들도 많고 현실적으로 모집되기 어렵기 때문도 있다. 청소년기의 학교생활에서는 아이들이 시샘과 질투도 많고 비밀보장도 현실적으로 어려워서 집단경험이 오히려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될 수도 있다는 걱정이 있고, 또 대입공부에 치여 시간을 빼어 자발적인 구성원을 모집하기가 어렵기도 하며, 안전한 집단응집력을 위해 집단원을 잘 구성해야 하는데 그 구성이 참 어렵다. 그럼에도 내가 집단을 참여할 때마다 집단은 참 매력적이라고 느끼기에, 나의 경험과 전문성이 쌓여가면서 언젠가는 집단을 운영해보면 좋겠다는 마음을 한 켠에 품게 되는 것 같다.


올해는 또 작년 하반기부터 이어서 유니세프와 서울시교육청이 공동주관하는 프로젝트에서 활동도 하였다. 청소년의 마음건강을 돌보는 커리큘럼과 교재를 개발하는 일이었는데, 보다 전문성 있고 열정적인 많은 선생님들과 함께 일해볼 수 있어서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이 든다. 또한 또래상담부 아이들을 대상으로 실제 개발한 교재를 바탕으로 수업을 해보기도 하였는데, 교실세팅에서 수업을 하는 일이 많지 않아서 부담스러우면서도 새로운 경험이었다. 누군가는 눈을 빛내고 맞추며 참여해주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무반응으로 일관하거나 졸기도 하여, 교과선생님들이 수업을 하면서 느끼는 감정을 짧게나마 느껴볼 수도 있었다. 또 수업이라는 것이 아이들과 가까이에서 호흡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는 것도 느꼈다. 그럼에도, 나에게 수업을 하고 싶냐고 물어보면 침묵과 함께 고민스럽다는 답을 할 것 같다. 수업과 상담은 참 병행되기 어렵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전체 아이들과 수업을 통해 호흡하는 것과 한 사람 한 사람을 깊이있게 만나고 탐색하는 상담은 결이 많이 다르기도 하고, 두가지를 모두 하기에는 물리적으로 시간과 체력이 불가능하다. 또 상담을 통해 만난 선생님이 평가권을 가진다면 아이들은 솔직한 자기개방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복합적인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질 수 있어 상담윤리적으로도 옳지 않다. 그렇지만, 아이들이 마음건강을 관리하고 스스로를 사랑하고 아낄 수 있도록 스스로에 대해 탐구하고 성찰해보는 시간이 교육과정의 빈틈 속에 들어갈 수 있다면 좋겠다는 바람은 품고 있다. 그렇기에 다음에도 기회가 된다면, 이러한 교재 및 커리큘럼 개발에는 참여하고 싶은 마음은 있다. 작년 하반기 3개월 정도의 짧은 활동기간을 예고했던 프로젝트가 근 1년이 넘게 유지가 되었고, 다음 단계로 확장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이 새삼스럽게 신기하기도 했다. 그만큼 우리나라의 교육계가 청소년의 마음건강에 관심을 두고 지원하고자 한다는 시그널인 것 같기도 해서 뿌듯하기도 하고 또 내심 그러한 큰 사명에 발을 담고 있는 것이 무겁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도 해보기를 잘했다고 느꼈던 경험이 되었다.


또하나 참여한 공동체는 상담교사 멘토링이었는데, 보다 경력이 많은 상담선생님이 멘토가 되어 멘토링을 해주시는 프로그램이었다. 같은 업을 갖고 나보다 앞서 살아내고 있는 선배의 실물을 본다는 것 자체가 내게는 정말 큰 힘과 위로가 되었다. '평생 이 일을 할 수 있을까?'라는 공포심 내지는 두려움이 있었기에, 그 길을 나보다 오래 앞서 걷고 있는 사람이 실재한다는 것을 보고 또 그분이 경험 속에서 겪어낸 노하우와 진솔한 마음들을 나누어주셨을 때 "나도 이 선배처럼 이 길을 걷다보면 후배를 만나는 또다른 선배가 될 수도 있구나"하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선배가 참 멋있어 보였다. 상담교사일을 아끼고 애정하면서 또 상담교사로서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찬찬히 공부하고 교육받으면서, 그러면서도 가정을 꾸려 아이를 키우고 있는 선배의 모습이 위대하면서도 멋지다고 생각했다. 선배에게 여성이자 상담교사로서 결혼과 육아도 하고 싶고 커리어도 계발하고 싶은데, 2030이라는 시기가 겹쳐서 두마리 토끼를 다 잡기가 어렵다고 느껴져 고민이라고 여쭈어봤었다. 그 때 선배의 답이 참 인상적이었다. "아 공부 좀 해볼까?하는 마음이 들 때가 있다고, 그 때 해도 늦지 않다고. 놀고 싶어서 실컷 논다면 그건 그 때의 나에게 쉼과 놈이 충분히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무엇이든 급하게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질문이 마음에 남는 답이었다. 조급한 마음은 독이 될 때가 많은 것도 같다. 빨리 부자가 되고 싶은 마음, 빨리 고경력자가 되고 싶은 마음, 빨리 완벽한 엄마가 되고 싶은 마음 같은 것. 조급하게 마음을 먹으면, 현재의 나를 놓치게 되는 것 같다. 현재의 내가 갖는 장점과 아름다움이 분명 있을텐데, 그런 것은 눈에 보이지 않고 미래의 되고 싶은 모습만을 바라면서 현재는 불만족과 자기비판으로 가득차게 되니까. 또 학교에서는 40년 가까운 교직경력을 지니신 부장님과 함께 2년간 호흡을 맞추면서도 배우는 점이 많다. 교사로서 정년을 채우시면서도 여전히 열정을 갖고 아이들을 대하고 후배들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주시는 부장님을 눈앞에서 보면서 교사로 평생을 산다는 것은 이런거구나, 그리고 이렇게 우아하고 지혜로운 선배교사가 될 수도 있구나 하고 느낀다. 올해 해주신 말씀 하나도 마음에 남는다. "세월이 쌓여 자연히 갖게 되는 것을 부러워하지 말라고" 하셨다.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으니까, 지금처럼 앞으로의 길들을 잘 채워가면 자연히 얻게 될 것이니까 너무 걱정말라고. 지금은 지금만 갖고 있는 것들이 있으니 그것에 감사하며 누릴 줄도 알아야 한다고. 그래서 그저 견디고 버텨내는 것이 얼마나 큰 일인지 많이 생각하고 느끼게 된다. 세월이 쌓이게끔 그 자리에서 견디고 버티는 것이 지금 살아보니까 정말 그 자체만으로도 쉽지 않으니까.  강한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하다는 말이 유난히 와닿는 요즘이다.


그리고 돈을 많이 버는 주변 사람들을 부러워하지 않기로 했다. 소득이 많다면 그만큼의 시간과 노력이 투자되기 때문이기에. 세상에는 공짜가 없기에. 내가 가진 직업을 아껴주기로 했다. 그리고 나의 상황 속에서 최선을 찾아가고 싶어졌다. 돈을 많이 벌지는 않지만, 나에게는 시간이 있다. 시간 속에서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할 수 있다. 또 정해진 월급 안에서도 저축을 할 수 있고 투자도 할 수 있다. 작을 뿐이지만, 오히려 작기 때문에 작게 많은 시도들을 해볼 수 있다. 재테크에도 관심을 유지하면서 나의 전공도 공부하면서 그렇게 소소하지만 확실한 하루하루를 채워나가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힘들고 아프지만 견디고 버티다보면, 체념과 수용 그 어딘가에서 나의 현위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순간이 오는 것 같다. 아이들을 보면서도 느끼는데, 마구 난동을 치면서 주어진 바뀔 수 없는 나의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겠다고 거부하고 소리치고 나뒹굴다가도 어쩔수 없이 그래서 어떻게 할건지를 고민하게 되는 그 순간이 온다. 그리고 그 순간에서야 비로소 상담이 가능하다. 그 전까지는 그저 '버텨주기'가 전부일 때도 있다. 나도 그랬던 것 같다. 사회초년생으로서 그저 출퇴근만으로도 벅차던 시기를 거쳐서 상담이 싫고 미웠던 시기를 지나 돈이 작아 비참하고 위축되던 시기를 지나가고 있는 것 같다. 앞으로는 또 어떤 힘듦이 다가올지 모르지만, 모든 것은 지나가리라는 옛말이 거짓말은 아닌가보다. 그리고 내 주변에 마치 내가 아이들을 버텨주듯이, 나를 버텨줄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상담 일을 하면서 정말 "인간관계와 공동체(community)"가 중요하다고 많이많이 느낀다. 고립되지 않고 진솔하게 감정을 교류하고 지지받을 수 있는 인간관계가 있는지 없는지는 정말 정신건강과 직결되며 위기에 빠지더라도 이를 버텨낼 강력한 안전망이자 보호요인이 되는 것 같다. 그래서 내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더 많이 감사하기로 했다.


요즘 느끼는 것들을 다 적다보니 주제가 참 중구난방이라서 제목을 "2023 하반기를 보내며 느끼는 것들"로 정했다. 올해가 끝나면 인수인계를 하고 3년간 머물렀던 공간과 업무를 마무리짓고 떠나야 한다. 너무너무 힘들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견뎌낸 나에게, 또 나를 버텨준 수많은 은인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가득하다. 다음에 다가올 곳에서는 부디 덜 힘들기를, 그리고 더 감사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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