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과 신혼여행, 작은 후기

by rimmie


나에게 2025년은 정말 가득차고 바쁜 한 해였던 것 같다. 가장 큰 변화는 나와 남편이 중심이 되는 독립된 가정을 꾸렸다는 것이고, 나아가 시댁과 친정을 비롯한 더 큰 가족관계 속에 발을 들였다는 것일테다. 그래서인지 새로운 환경에서 우리만의 루틴과 룰을 만들고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아져 혼자 사색하거나 글을 남길 시간적 마음적 짬이 안 났던 것 같다. 그럼에도 결혼 후의 신혼생활을 요약하자면 퇴근하고 가끔은 땀을 뻘뻘 흘리는 운동을 같이 하고 종종 재밌는 프로그램을 함께 보면서 어설프지만 맛난 저녁을 해먹으며 별 것 아닌 일로 웃음이 터지는 순간이 많은, 자주 행복하고 아무 말 하지 않아도 편안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안락함' 또는 '안온함'이지 않을까 싶다. 뭐라고 한 단어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꽉 찬 든든함과 안정감으로 나의 요즘 하루하루는 꽤나 만족스럽다고 느껴진다. 결혼식 날 당일은 정말 행복하고 벅차고 감사함이 넘쳐 흐르는 시간이었다. 몇 번의 작은 눈물의 위기가 있었지만,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두 한 자리에 모여 진심으로 축하해주는 이 순간이 너무나 행복하고 감사해서 그저 환하게 웃으며 마음껏 반기는 것 말고는 할 수 없었던 그런 벅찬 하루였다. 결혼 준비는 길고도 지난했지만, 결혼식날은 정말 행복했기에 누군가 묻는다면 결혼식은 꼭 올리라고 말해주고 싶을 정도였다. 그래도 두 번은 못할 행사이기에, 결혼식 때 우리가 작성한 혼인서약문의 마지막 문장을 실천하며 오래오래 잘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고마워"를 자주 말하면서, 서로 서서히 길들여져 가고 또 그것이 꽤나 괜찮게 느껴지는 소소한 신혼생활을 보내고 있다.


“아내를 위해 사랑한다는 말을 아끼지 않고, 남편을 위해 고맙다는 말을 아끼지 않으며, 있는 모습 그대로 편안하고 따뜻한 가정을 꾸릴 것을, 부모가 된 후에도 서로를 다정하게 부르는 부부가 될 것을, 함께 맹세합니다.”




신혼여행을 2주간 스페인으로 다녀왔는데, 스페인에서도 그라나다-(샌딩투어)프로힐리아나/네르하/론다-세비야-바르셀로나(가우디투어, 몬세라트-시체스 투어) 순으로 머물렀다. 영어도 그다지 잘 통하지 않고 계획을 촘촘히 세우지도 못하고 큼직하게만 일정을 짜두고 급하게 비행기에 오른 여행이었지만, 나는 더듬더듬 영어를 하고 남편은 길을 찾고 안내하면서 어쩌다(?) 적절히 역할을 분담하고 서로를 의지하며 많이도 돌아다녔다. 거의 매일 하루에 2만보씩은 걸으면서 기절하는 밤이 이어지기는 했지만, 다시 보지 못할 많은 풍경들과 문화유산들을 보고 감동적인 해산물을 맛보고 매일매일 맥주를 마시면서 보고 먹고 걷는 여행이었다. 기억에 남는 것은 세비야의 거리 그리고 겉바속촉의 초코스(오징어 튀김), 오렌지 나무에서 나는 오렌지 향기가 그윽한 밤의 세비야 대성당, 억수로 내리던 비가 잠시 그쳐 세비야의 메트로폴 파라솔에서 함께 봤던 웅장한 하늘구름과 한 줄기 햇빛 아래 빌었던 소원(우리 가족 모두 건강하고 행복하게 해주세요), 그라나다에서 본 거대하고도 화려한 알함브라 궁전의 삐죽삐죽 솟은 나무정원과 종이 달린 요새, 그라나다 타파스 바에서 좁은 테이블에 합석하게 되어 어색하게 만난 한국인 신혼부부와 도전했던 맛없는 하몽 플레이트, 그리고 맛집을 찾지 못해 지친 순간 만났던 영국 할아버지의 바르포에 타파스 가게 오픈런, 까사 바뜨요에 구현된 동그랗고 신기한 푸른색 물속 세계와 구엘공원의 도마뱀(가우디의 트렌카디스 기법), 영롱한 스테인드 글라스의 석양이 참 예뻤던 아직도 짓고 있는 사그라다 파밀리아(가우디의 뒤를 잇는 부담을 안고도 수난의 파사드를 조각하기로 한 수비락스의 결심), 바르셀로나 보케리아 시장에서 먹은 맛조개와 백화점에서 사온 100% 이베리코 하몽과 메론, 마지막으로 칼바람에 코가 빨개졌지만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절벽 끝 절경과 소년합창단의 신성한 합창으로 기억에 남을 몬세라트까지. 시체스에서 인어조각상의 손을 잡았으니 언젠가 스페인에 돌아올 수 있겠지 하며 남편과 아이를 다 키우고 20년 뒤 쯤에 또 오자고 말했던 순간을 나지막히 마음 속에 남겨둔다. 마지막에 돌아올 때 바르셀로나 공항의 입국심사가 게이트 바로 앞에 있는데 키오스크도 다 꺼두고 세명이 아주 느릿느릿 심사를 하는 바람에 귀국하는 비행기를 놓칠 뻔했지만 입장마감시간에 뛰어서 겨우 탑승한 스릴넘치는 마무리까지 전부 잊지 못할 추억이었다.


그리고 약간의 시련이 있었다면 첫날 밤에 바르셀로나 공항에 내려서 공항버스를 타고 숙소를 가는데 우리가 내려야 할 정류장에 내려주지 않아서 캐리어 세개를 끌고 밤거리를 약 20분 걸어갔던 것, 마지막날 출국 전에 택스리펀을 받겠다고 공항에서 서류 찍고 홈페이지에 가서 신청하는데 촉박하고 피곤한 와중이라 서로 조금 예민했던 것 정도였던 것 같다. 한국에 돌아와서 결과적으로 받은 리펀은 작고 귀여운.. 만 얼마여서 그렇게 애를 썼던 게 좀 웃겼다.


이렇게 쓰다보니까 벌써 아련해지고 말았다. 다녀와서는 시차적응에, 오랜만에 하는 출근에, 사온 선물 나눠주는 가족인사에, 결혼 답례품 돌리기까지 너무 정신 없이 한 달이 훌쩍 가버렸다. 남편이 내가 좋아한다고 해서 바르셀로나에서 거의 다섯 번째 마켓에서야 비로소 구해 왔던, 이제는 하나 남은 마지막 하몽맛 프링글스를 어제 밤에 먹으면서 스페인의 기억이 되살아나 기억이 더 흐릿해지기 전에 서둘러 기록을 남겨보려고 후다닥 작성해보는 결혼과 신혼여행의 작은 후기이다. 새로 다가 온 2026년에는 자주 울고 웃으며 나의 감정을 솔직하고 투명하며 편안하게 느끼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


추가 1) 스페인에서 처음으로 미슐랭 1 스타 히솝(HISOP)이라는 곳에서 와인페어링을 한 디너코스를 먹어봤다! 조금 이해하기 어려운 메뉴도 많았지만(염소치즈는 진짜 포기) 메뉴마다 바뀌는 와인이 정말 잘 어울리고 이래서 와인 페어링이라는 것을 하는구나 느꼈던, 새롭고 즐거운 경험이었다.


추가 2) 스페인에서 좋은 쪽으로 자극을 받은 메뉴는 피스타치오 스프레드였는데 야오야오라는 유명한 요거트 아이스크림집뿐만 아니라 맥도날드에서도 소프트콘에 피스타치오를 얹을 수 있었다. 너무 한국인 입맛에도 고소하고 단짠단짠이라 잘 맞는데 한국에는 왜 이 정도로 인기가 없을까 생각했는데 요즘 두바이쫀득쿠키가 유행해서 오 이렇게 바로 유행하는구나 싶어서 신기했다. 안 좋은 쪽으로 자극을 받은 건 염소치즈인데, 버거킹에서도 염소치즈가 들어간 너겟이나 버거를 밀고 있어서 사실 스페인어를 몰라서 잘못 시켜서 먹어보게 되었는데 그 꼬리꼬리한 향에 도저히 적응할 수가 없었다. 왜 이게 유행인걸까? 의문만 남았는데 한국에서도 언젠가는 유행을 하게 될지 궁금하다.


추가3) 이번 신혼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최고의 프로그램은 바로 콩콩팡팡이었다! 멕시코로 떠난 이광수, 김우빈, 도경수가 맛있는 타코집을 찾아가고 영수증을 관리하는 순간들이 너무 우리의 모습과도 닮아 있어서 밤에 숙소에서 잠들기 전까지 친구ID로 다운받아 온 에피소드들을 보느라 같이 깔깔 웃었다. 스페인 음식이 다 맛있을 줄 알았는데 첫 날 먹었던 대구찜(?)은 정말 내가 먹어본 것 중에 최고로 짰다. 눈이 번쩍 뜨일 정도로.. 스페인어도 잘 몰라서 구글맵에 있는 사진을 보고 손가락으로 가리켜 겨우 시키고 이게 뭘까 이게 무슨 맛일까 하는 순간들이 콩콩팡팡에서도 나와서 너무 웃겼다. 스페인의 음식에는 전반적으로 단 맛이 빠져있는 것 같다. 짠 맛과 약간의 신 맛 위주..? 그리고 국물요리가 없다. 튀김과 볶음과 찜? 너무 추웠던 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갔던 한식당에서 먹은 순두부찌개조차도 짠 편이었지만 뜨끈하고 얼큰한 빨강 국물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꽤나 만족스러웠던 기억이 있다. “맛있다!” 하는 음식은 한..셋째날쯤 처음 먹었던 것 같다. 책자와 가이드픽 맛집들, 그 중에서도 해산물과 튀김류는 실패하지 않는 맛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