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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텐조 Nov 02. 2023

독서의 오만과 편견

대학원생의 성장일기 76

벽돌시리즈 칠십 육 번째

남산.. 아니 어디선가 찾아온 검은 정장을 입은 사내들이 나타나 당신의 집을 무작정 들이닥친다. 웅성웅성 현관에서 소리가 들리더니 현관문이 펄쩍 열리며, 이윽고 그들이 당신에게 대뜸 하는 소리가 "진짜 책을 많이 읽고 있긴 하나?"라고 묻는다면 여러분은 뭐라고 답을 할 것인가? 오늘도 찾아오는 반성의 시간. 아...! 내 책장을 보니 거의 80프로가 심리학 서적이고 나머지는 기타 등등이다. 책을 많이 읽으려고 하는데 이 또한 쉽지 않다.


가끔 누가 물어보면 어영부영 취미가 독서라고 하는데, 반은 찔리고 반은 당당했다. 읽긴 읽으니까. 하지만 꽤 읽었다는 나도 정말 우연히 다른 책을 보다가 놀라운 영감을 받는 것을 보면 독서는 하면 할수록 좋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실 각자 단계가 다르다고 본다. 누군가는 정말 많이 읽었지만 로봇처럼 인풋만 들어갔지 자기만의 생각으로 풀어낸다거나 삶에서 적용하지 않는 독서를 한다면 나와는 반대로 독후감이나 영감을 현실화해야겠지만 나는 있는 정보 없는 지식 영끌하다 보니 부족함을 느낀다.


그럴듯한 겸손함이 생기려는 것인지, 아니면 어젯밤에 읽었던 책의 영감이 임팩트가 컸던 것인지는 모르지만 최근에 다른 분야의 책들을 읽으면 정말 신선한 시각에 신선한 영감을 받는 것을 느꼈다. 요즘은 아무리 전자책이 발달하고 글쓰기 콘텐츠에 접근하기 쉬워졌다지만 때를 잘못 탄 건지, 아니면 항상 그런 건지 책을 읽지 않는 것 같다. 영상으로 모든 것을 접하려고 하고 그마저도 3분 카레처럼 3분 요약본으로, 심지어 1분 이내의 쇼츠나 릴스로 짧게 보거나 줄거리 대충 보아가며 정보를 익힌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요즘 아이들이 문해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기사인지, 풍문인지 접했던 것 같은데 그게 사실이라 하면 씁쓸하긴 하다. 주변을 지켜보면 육아에 힘이 든 나머지 케이스 두껍게 씌운 태블릿으로 키즈영상을 하루종일 틀어주며 부모는 한숨을 돌린다지만 글에 대한 접근성이 떨어진다면 편식하는 나의 독서처럼 정보나 영감을 받을 수 있는 수단을 잘라내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런데 또 나는 자책하고 싶지 않다. 오히려 뻔뻔하게 "그게 어디야?"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책을 좋아하는 것만 읽는 게 어디냐는 생각도 해본다. 그래서 책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만화책으로 흥미를 가지고 점차 텍스트 위주의 책을 접하면 저절로 독서량도 늘 거란 생각도 해본다. 개인적으로도 그렇게 추천하기도 하고. 욕심인지 다양한 책들을 읽어보자라는 생각이 요 근래 생겨나고 있지만 귀찮다. 솔직해지자. 그리고 막상 또 읽으면 몸이 찌뿌둥하고 내용이 별로 와닿지 않으면 그 분야 전체가 질리기도 하다.


하지만 영감이라는 놈은 사실 기습적인 깜짝 이벤트 같은 아이라서 다양한 곳에서 덫을 놓아 걸리게 할 수 밖에 없다. 삶을 풍부하게 하려면 뭔가를 마련하기 전에 일단 다양하게 접하는 것이 필요하기에 여기저기 찍어먹어 볼 필요가 있다. 옛날에 권장도서니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 같은 프로그램에서 추천도서를 이야기하면(그때 당시 나는 미취학아동이긴 하지만) 오히려 나는 차별화되고자 하는 생각인지 뭔지 모를 유니크함, 개성이라는 오만함을 가지고 있었다.


소문난 집에 먹을 거 없다며 베스트셀러 싫어하고, 순위권별로 차지하는 책들 싫어하고 물론 가끔 읽으면 정말 좋은 책들도 많긴 하지만 오히려 스페셜함을 핑계로 베스트셀러조차 읽지 않는 나 자신을 보게 된다. 하지만 뻔한 이야기를 쓰거나 진짜 동의할 수 없는 책들이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것을 보고 선 넘은 마케팅 때문에잘 안 읽게 되긴 하는데 그래도 또 하나의 책에 대한 오만과 편견을 내려놓을 필요가 있는 것 같다.

그렇게 읽고 반면교사 삼으면 되는 것이다! "나는 저자의 주장에 동의를 못하므로 이렇게는 안해야 겠다."처럼.


"나는 책 안 읽어도 살 수 있고 현실에 충실하자"라는 마인드를 가진 사람도 분명 있고 나름대로 존중받을 필요도 있다. 오히려 다독한 사람이 마치 뭐 특권층이라도 되는 것 마냥 안 읽는 너희들은 미개하다는 식의 주장이나 글에 대한 거부감을 비웃는 사람도 도찐개찐이다. 지혜있는 자에게 수박 겉핥기의 지식만 갖춘 사람이 뭐라고 하는 것처럼. 그래서 그런 사람들 보면 가끔 오기로 더 안 읽고 싶어 진다. 하지만 일부 사람들의 주장일 뿐 막상 각 분야의 피상적인 정보든, 아니면 그 사람의 진솔한 이야기든 간에 책이 가진 가장 최고의 장점은 간접경험이라는 것이다.


경험은 삶을 채워가는 주재료이고 내가 앞으로 세상과 상호작용하여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한 선택권을 늘리는 기회이기도 하다. 그래서 읽어보면 읽을수록 또 다른 나의 편견을 깨고 겸손함을 주고 배움을 주기에 내가 접해 보지 못한 다양한 삶들이 경험했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좋은 것 같다. 안 읽으려는 쪽과 읽으라는 쪽 모두의 오만과 편견을 접어두고 자기가 좋아할 만한 분야의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두루두루 깨우치면 님도 보고 뽕도 따는(?) 기회이지 않나 생각해 본다.


저 책 그래도 읽으려니까 이제 좀 돌아가세요. 현관문은 언제 고쳐줄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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