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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텐조 Nov 10. 2023

소실대탐

대학원생의 성장일기 85

벽돌 시리즈 팔십 오 번째


브레인스토밍은 꽤 유용하다. 장을 보러 마트에 들렸는데 날씨도 춥겠다 호다닥 집에 들어가서 겨울잠 자려 듯 침대에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워있었는데 그러기엔 시간이 8시라 얼린 몸 녹여 자려니 시간이 너무 뜨는 것 같아서 일어나 책상의자에 앉아 어제 글을 쓰고 내가 요즘 느끼고 있던 통찰이나 생각을 연결해 보면서 거기에 각 주를 계속 달다 보니 의외로 단무지 같은 단순무식한 지식이랄까? 간단한 깨달음을 얻었다.


작은 것조차 못하면서 무슨 큰 것을 이룰 수 있을까?라는 깨달음이다. 뻔한 문장일순 있겠지만 내가 그동안 일상을 보내면서 이것저것 핑계 대며 너무 많은 것에 대한 기대와 그것을 이루려고 온갖 야심은 품어댔지만 내게 주어진건 극히 드물었다. 일상이 초능력자처럼 집중하면 뭔가 상황이 달라지면 좋았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기에 되돌아보면 큰 것에 집착을 많이 했던 것 같다.


명문대 들어간 혹은 공부해서 뛰어난 성적을 얻은 학생들을(우리 때는 한참 공신이 유행이었으니) 보며 나도 뭔가 할 수 있다고 생각은 했으나 사실 그 이면에는 순간적인 동기부여와 영상에서 보이는 멋대가리 없는 성냥갑 콘크리트 건물과는 다르게 고전적인 유럽풍 느낌의 캠퍼스의 서울권 대학들이 나의 환상을 자극시켰다. 그래서 고등학교 시절 따끈따끈한 문제집 한 권 들고 등교하고 내 자리에 앉아 책장을 펼쳐 공부인척하는 공부를 하게 되면 그나마 알았던 친구 2명 정도가 "오 웬일임?" 하며 물으면서 옆으로 앉아 구경(?)했다.


그때는 불안한 마음과 잘되길 바라는 마음이 공존하는 부적을 수집하는 어르신 마냥 샤프펜슬 좋은 거 사며 마치 그것만 있으면 이미 서울대는 따놓은 당상인양 흥분에 취해 문제집의 첫 문단을 읽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정확히 말하면 15~20분 정도 지나면 서울대 가는 샤프를 손에 쥐고 서울대 가려는 마음으로 공부하려는 나의 마음도 언제 그랬냐는 듯 "내 집중력은 요정도니까 일단 조금 쉬자"라는 생각에 한 2개월은 쉬었던 것 같다.



수행평가나 시험이 끝나고 대게 그런 감정이 많이 몰려온다. "아 미리 공부했으면 무조건 점수 더 잘 나왔을 텐데" 그리고 저쪽에서 엘리트 양반들끼리 서로 온갖 아양을 떨며 서로 답을 맞춰보는 것을 질투 난 채 지켜보며 "나도 이젠 한다 할수있땨!"라고 다짐한 채 그렇게 시작하노라면 얼마 못 가 다음 수행평가나 중간기말고사가 있기까지 잠시 서울대 가려는 마음을 절제하는 금욕주의 수도사가 되어 책상에 엎드려 자거나 낙서하며 시간을 보냈다.


하루아침에 들끊는 성적 욕망처럼 동기부여 또한 순간의 이벤트로만 작용하지, 이 이벤트로만 나의 일상의 변화가 이루어질 수 없음을 이제야 대면하게 되는 것 같다. 마치 축제가 일반적인 사람들의 삶을 대변하지 못하듯, 연극이 끝나고 난 후처럼. 우리가 학벌 탓을 하기도 하지만 그 학벌을 얻기까지 정말 무지하게 공부해 댄 그들의 노력은 외면할 수 없다. 집에 가서 놀고 주말에도 잠만 자고 있을 때 꾸준히 루틴을 유지하며 그들은 학생의 역할로써 끊임없이 공부했다. 청소년 시절 감정의 요동이 심한 와중에도 그런 것을 보면 다들 대단들 하다. 그리고 한 가지, 그들 대부분은 어릴 때부터 계속 꾸준히 공부를 해온 학생들이었다. 대개 재수학원이나 수능 포기했다고 재수하려는 학생들 보면 가능성이 높은 건 이미 해왔던 학생, 수능날 잠시 삐끗한 학생이지. 갑자기 재수한다고 명문대 갈 확률은 상대적으로 희박한 거 같다. 왜냐하면 나도 재수라고 핑계 대고 1년을 놀아봐서.


다만 우린 그들의 일상에 대해 알지 못하고 결과에만 초점을 맞추니 졸업식에 여유롭고 기뻐하는 꽃다발에 축하받는 그들의 모습만 볼뿐이다. 그런데 이건 자기가 원하는 방향에서 이루어낼 일부일 뿐이다. 수능이 끝나고 자살하는 학생들을 보면 심정이 이해 가면서도 안타깝다. 보이는 것이 그게다고 지금껏 그것만 붙잡고 살아왔으니 그럴 수밖에.. 수능이 일주일정도 남았는데 혹시 이 글을 보는 학생분이나 가족분들이 있다면 고생 많으셨다는 말씀드리고 싶다.


이제 우리는 작은 것이라도 해봐야 하지 않을까? 사소하게 여기지만 결코 1분도 안 하는 그것을 해야 한다. 일상에서 큰 것만 바라보다가 작은 것조차 안 하려는 자기 모습을 살펴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나는 더더욱 느낀다. 작은 것도 못하면서 큰 것을 하려는 자, 기본조차 안되어 있는데 욕심만 부리는 자에게 오만한 태도에 질려 기회도 찾아오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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