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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텐조 Nov 12. 2023

은 촛대

대학원생의 성장일기 87

벽돌 시리즈 팔십 칠 번째

멤버 한분이 케이크를 가져왔다. 오늘도 모임을 진행하기에 앞서 세팅하고 있을 때 참여 멤버 중 한 분이 라디오 출연 축하한다고 케이크를 가져오셨는데 우쭐되는 것보다 감동이 더욱 컸다. 누군가가 신경 써줬다는 것이 상당히 감명 깊었고 순간 울컥함이 몰려들어와 연신 감사하다고 표했다. 덕분에 13명이 케이크로 맛나게 당을 충전하며 따뜻한 분위기 속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왔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요즘은 개인주의를 핑계로 너무 인색하지 않은지 생각해 본다. 나는 가끔 사주거나 선물해 주는 것을 좋아하는 데, 커피 한잔 사지 않았다는 누군가의 사연을 듣노라면 정이 없는 건지.. 아니 그보다도 처세를 할 줄 모르는 것 같다. 베풀수록 돌아오는 것이 많다는 생각을 가지고 실천하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을 보면 나도 사실 손익계산서를 따지고 대학원생이다 보니 궁핍하긴 하지만 액수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가가 많이 올라, 저축등을 생각하며 꽁꽁 싸매는 사람을 보면 솔직히 말해서 있는 정도 떨어진다. 나중에 한턱 쏘겠다는 사람, 밥 한번 먹자는 사람들의 허공메아리 패턴을 유심히 살펴보자. 한두 번은 그렇다 치더라도 계속 만나면서 그런다면 쉽게 믿지 못할 이미지만 쌓여간다. 각자 먹은 것을 N분의 1로 계산하는 문화가 좋긴 하다. 심지어 요즘 식당가는 책상마다 키오스크가 있는데 거기에 각자 계산할 수 있게끔 되어 있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런 것을 이야기하면 "쪼잔하다", "아니 물질이 중요하냐 마음이 중요하지"라고 생각하는데 웃긴 것은 그런 사람들이 마음조차 따뜻한 지는 항상 물음표다. 그리고 가뜩이나 비호감인데 물질이라도 베풀던지. 아니 오히려 사소한 것을 더 따져야 할 것이다. "쪼잔한 것을 짚진 않겠지"하며 빌미로 뻔뻔하게 그러는 사람도 많다. 그래서 우리도 뻔뻔하게 대응하도록 하자. 마찬가지로 작은 것도 베풀 줄 모르면서 뭘 하겠다는 건지 의심스럽다. 그래서 간혹 가뭄에 콩 나듯 베푸는 이를 보면 세상 살아갈 맛, 따뜻함을 느끼곤 한다.


그저께 티비 프로그램 "세상에 이런 일이" 옛날 방영분을 보게 되었는데 집에 잡동사니에서부터 쓰레기를 한가득 모아놓고 사는 할머니의 사연이 소개되었다. 이분의 증상을 보노라면 강박장애 중 하나인 저장장애(수집광)로 파악할 수 있다. 결정적인 원인으로 지적장애딸이 있는데 이제 "자기가 죽으면 우리 딸은 뭐 먹고사냐"는 불안감에 매일 밖에서 쓰레기를 주어 오시는 것을 보며 참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윽고 할머니는 없는 살림에 라면을 끓여 피디에게 건네주었는데 사실 냉장고나 거실이 발 디딜 틈 없는 쓰레기와 벌레가 기어 다니는 환경이라 분명 피디도 먹기 힘들었을 것임에도 아무렇지 않게 먹었는데 할머니는 "거지 같은 집에 라면밖에 못 주는데 먹어주니 기분이 좋다"라고 하셨다. 곧 솔루션으로 봉사지원자들이 방을 치우고 40살 가까이 된 지적장애 딸은 장애인 대상으로 한 취업을 하게 되었는데 그때 직원이 "일 다니면 무엇을 가장 하고 싶어요?"라고 묻자 "엄마 한약 지어주고 싶어요"라는 대답에 뭉클함에서 눈물이 터질뻔했다.


왠지 모르게 동기부여가 되었다. 삶의 의미. 저런 사람들을 돕기 위해 성장하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약자임에도 모두가 착한 약자는 아니다. 경제적 여건만 다르지 상류층은 나쁘고 약자는 착하다는 인식도 벗어나야 한다. 다만 저렇게 순수하게 사는 사람들,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 아무리 봐도 착하게 사는 사람들이 저런 힘든 환경에서 매일을 사는 것을 보노라면 코가 훌쩍여진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소설 중 하나는 "레미제라블"이다. 장발장에게 은촛대까지 내어주던 미리엘 신부처럼,

어쩌다 인간관계에서 베풂이 사회적 덕목까지 오게 되었는데, 아무튼 누군가에게 베푼다는 것은 정말 신의 현신이 우리 가운데 나타나지 않았나 하는 마음이 가득 차오르는 순간을 목격하기도 한다. 이런 사람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 세상은 좋은 세상이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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