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사했는데 남자를 원했다고요?
Part1.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 ep.03
"사실 그 자리 남자가 오길 바랐어"
인수인계를 받던 도중 잠깐 쉬는 타이밍에 전임자가 내게 말하였다. 나는 필기하고 있던 손을 멈추고 깜짝 놀라 전임자를 쳐다보았다. 그렇지 않아도 이 회사에 입사하면서 채용 과정이 다소 이상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첫 직장을 1년 만에 퇴사하고 곧바로 이직 준비를 하였다. 마침 학교 전공(회계세무학) 조교실에서 특정 기업 추천서를 써줄 테니 회계 직무로 취업 중이면 지원서를 내볼 거냐고 연락이 왔었다. 회사 이름을 들었는데 내가 주식 투자를 하고 있던 기업이었다. 옳다구나 싶어 입사지원서를 학교에 제출하였다. 일주일 후에 서류 통과 소식을 들었고 면접 일정을 안내받았다.
면접 당일 대기실에 도착하니 익숙한 얼굴들이 몇 있었다. 나와 같이 학교를 통해 지원한 같은 전공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3학년 때 산업 공학과에서 회계학과로 뒤늦게 전과해서 전공 사람들과 친하진 않았지만 안면 정도는 알았다. '너도 왔구나?' 눈빛을 서로 주고받은 뒤 면접 순서를 기다렸다. 곧이어 내 차례가 되었다.
면접장이라고 쓰여 있는 회의실로 문을 열고 들어가니 임원진으로 보이는 남성 세 분이 앉아 있었다. 그중 가운데 있는 사람이 주로 질문하였다. 우리 회사에 대해 어떤 점을 알고 있는지? 직장 경험이 있는데 본인의 업무 스타일은 어떤지? 회계 업무에 대해서 아는 것 말해보기 등(10년이 지나도 질문이 생각나는 걸 보면 꽤 기억에 남는 면접이었던 것 같다). 회사에 대해선 소액이지만 주식 투자하면서 이러이러~한 회사로 알고 있다고 답하였다. 최근 회사 이슈 등 알고 있는 지식을 끌어모아 대답하였다. 그리고 학교에서 학점 높은 순으로 추천하는 듯 보여서(면접 때 낯익은 얼굴들을 보았을 때 과에서 공부 좀 한다는 애들이었기 때문) 업무 스타일은 '성실성'이라고 대답하였다. 회계 업무는 아르바이트한 게 전부이지만 이전 신평사 업무 경험을 언급하여 재무비율 등 재무제표에 대해 잘 안다는 식으로 어필하였다.
며칠 후 인사과에서 합격했다는 연락이 왔다. 그런데 기쁨도 잠시, 입사 시기를 한 달 정도 늦출 수 있는지 물었다. 절차가 좀 있나 보다고 단순하게 생각해서 일단 알겠다고 답하였다. 그로부터 한 달 뒤 다시 그 회사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당시 12월이었는데 깔끔하게 다음 해인 1월부터 출근하라고 하였다. 한 달이 더 연기되었지만 어차피 다른 곳에서 오라는 데도 없어 선택권이 없었다. 그저 해가 바뀌기만을 기다렸다.
전 직장을 퇴사하고 두 달 넘게 쉬었다가 출근을 한 셈이다. 그런데 입사 첫날 내 자리에 남자 직원을 앉히려고 했다는 소리를 들어 기분이 언짢았다. 그리고 그 말은 헛소리가 아닌 것 같았다. 나중에 사수인 과장한테 들어보니 그때 면접을 진행했던 임원들은 나를 최종 합격시켰는데, 팀장은 남자로 다시 뽑아 달라고 한 것이었다. 그런데 위에선 입사 취소를 할 수 없는 상황이라 먹히지 않았다. 팀장은 이후 퇴사할 직원이 대리급이라 사원을 두 명 채용하여(남자 한 명 더) 업무 분장을 하자고 의견을 제시하였다. 결국엔 나 혼자 들어온 걸로 보아 임원진 설득을 실패하여 성별이 남자인 직원은 구하지 못한 걸로 보였다. 합격 후 두 달 만에 입사하였지만 입사 취소가 되지 않은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어쩐지 팀장이 나를 달가워하지 않은 눈치가 선명하게 보였다. 처음 봤을 때 인사를 드렸는데 '좀처럼' 받아주지 않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입사 첫날이 새해 첫날이었기 때문에 (해 바뀌고 첫 영업일) 정신없고 바빠서 그런 줄로만 알아 기분 탓이겠거니 하였다. 그런데 모든 상황을 종합해 보니 내가 '여자'라서 푸대접하는 게 느껴졌다. 앞으로의 회사 생활이 진심으로 걱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