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문화기행 2 화
2화 아라가야 下
산을 오른 지 두어 시간쯤 지났을까. 1천5백 년 전 아라가야로 들어가는 길은 늦여름 기운이 완연했다. 가파른 나무 계단과 완만한 흙길, 그리고 잘 다듬어진 잔디밭이 번갈아 이어진다.
연인이나 아이들과 손잡고 걷기에도 좋은, 환상적인 산책 코스다.
✧ 하늘의 문을 새긴 사람들
10호분부터 13호분까지는 봉분 자체가 또 하나의 산봉우리 같은, ‘산 위의 산’이라 할 정도의 대형분이다. 왕이나 왕족, 혹은 수장급의 능으로 추정되는 무덤들이다. 특히 13호분은 말이산 고분군에서 가장 규모가 큰 무덤으로, 고분군 중앙 정상부에 자리 잡고 있다. 아라가야 최고 지배자의 무덤으로 보고 있다.
13호분은 과거 일본 학자들에 의해 도굴에 가까운 조사가 이루어졌다. 그로부터 100년 만인 2018년, ‘동아세아 연구원’의 재조사에서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다. 무덤의 덮개돌에서 옛 가야인의 천문사상을 엿볼 수 있는 성혈(星穴), 즉 별자리가 발견된 것이다.
그들은 왜 무덤 천장에 별자리를 새겼을까.
▶ 아라가야 최고 지배자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13호분 덮개돌에 새겨진 별자리
당시 문화재청은 경남 함안군 가야읍 도항리 936번지, ‘사적 제515호 함안 말이산 13호분’의 구덩식 돌덧널무덤 덮개돌에서 총 125개의 별자리를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그중에는 궁수자리와 전갈자리도 뚜렷이 나타난다.
궁수자리는 2세기 프톨레마이오스가 정리한 48개 별자리 가운데 하나로, 은하의 중심부를 밝히는 주전자 모양의 별자리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현자 케이론, 수많은 영웅을 길러낸 켄타우로스의 스승이 바로 그 별자리의 주인공이다.
13호분은 지름 40.1m, 높이 7.5m에 달하는 아라가야 최대급 고분이다. 일제강점기인 1918년 야쓰이 세이이쓰(谷井濟一)가 한 차례 조사했으나, 그때의 조사는 단순한 유물 수습에 그쳤다. 100년 만에 재개된 조사에서는 13호분이 붉은 물감으로 채색된, 이른바 주칠(朱漆) 고분임이 밝혀졌다. 무덤방 내부 사방 벽면에는 점토를 바르고, 그 위를 붉은 물감으로 칠했다. 돌방무덤에서는 종종 보이는 붉은 채색이지만, 이처럼 시기적으로 앞선 돌덧널무덤에서 확인된 것은 처음이다.
무덤방의 규모도 길이 9.1m, 폭 2.1m, 높이 1.8m로 최대급이며, 5세기 후반대에 축조된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중앙 덮개돌 아랫면에서 발견된 125개의 별자리는 성혈의 크기와 깊이로 별의 밝기를 구분한 것으로 추정된다.
13호분에서 37호분으로 향하는 길은 내리막을 내려갔다가 다시 오르는 또 하나의 구릉길이었다. 숨이 조금 차오를 즈음, 아름드리 느티나무 한 그루가 잠시 쉬어가라며 깊은 그늘을 내어주었다. 들판에서 불어오는 푸른 바람이 땀을 식혀 주었다.
내려오는 길은 고분 능선 중간쯤에서 대숲을 지나 삼기마을의 고샅길로 이어졌다. 언뜻 보기에도 꽤 오래된 마을이었다. 흙담 길을 지나며 이 집 저 집 기웃거렸다. 혹시 개밥그릇으로 굴러다니는 이 빠진 사발이라도 눈에 띄지 않을까 해서였다. 깨진 기왓장에 박힌 무늬나 발길에 차이는 돌멩이 하나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습관 때문이다.
이번 답사에서는 휴관일과 겹쳐 관계자를 만나지 못했지만, 6년 전 첫 답사 때는 친절한 안내와 풍부한 자료를 받을 수 있었다. 당시 함안군청 문화재 담당자는 ‘잃어버린 가야사 바로 알기’ 홍보활동에 열중하고 있었고, 그의 얼굴에서는 ‘말이산고분군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대한 확고한 의지가 읽혔었다. 여자 담당자는 휴관 중인 박물관의 학예사 한 분을 소개해 주었고, 덕분에 밤늦게까지 흥미로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아라가야의 성립과 멸망, 포상팔국, 아라가야의 계보, 그 학예사가 전공했다는 순장 무덤의 비밀까지 — 그 젊은 학예사의 눈빛은 밤새도록 반짝였다.
그는 인근 도항리 당산유적과 안라회의 장소, 법수면 우거리와 가야읍 묘사리 일대의 도요지 발굴 계획 등을 설명하며 이 지역이 일본 스에무라 유적과도 연관이 있을 가능성을 언급했다.
아라가야의 영향권이 어디까지 미쳤는지를 밝힐 수 있는 중요한 단서였다.
아라가야라는 이름은 신라 말, 고려 초에 불리기 시작했다. <삼국유사>의 ‘5가야조’에는 아라가야(阿羅伽倻), <일본서기>에는 안라(安羅), 아라(阿羅)로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학계에서는 함안 지역의 가야를 **안라국(安羅國)**으로 보는 견해가 우세하다.
3세기 후반에서 4세기 초, 한반도 남부에는 세 개의 지역 연맹체가 존재했다.
함안의 안라 지역 연맹체, 김해의 남가라 연맹체, 그리고 고성의 고자국을 중심으로 한 포상팔국 연맹체가 그것이다.
포상팔국은 보라(保羅), 고자(古自), 사물(史勿), 초팔(草八), 골포(骨浦), 칠포(柒浦), 가리(加利), 성산(星山) 등을 일컫는다.
안라 연맹체는 함안 분지와 군북 지역 세력이 연합한 것으로, 인구는 약 4~5천 가(家)로 추정하고 있다. 이후 칠원의 칠포국과 마산 지역의 골포국을 병합하며 세력을 키웠고, 진동만을 통해 해외로 진출할 수 있었다.
안라국은 5세기 초 연맹체 단계를 넘어 고대국가로 발전한다. 이 시기 축조된 대형 고분들이 바로 말이산 고분군이다.
따라서 이곳은 안라국 지배층의 묘역으로 확인되고 있다. 지배자 개인이 아닌, 지배계층의 존재를 보여주는 증거다.
‘광개토왕비’의 ‘안라인 수병(安羅人戍兵)’이 안라국을 지칭한다면, 이는 5세기대 안라국의 위상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다.
<일본서기>에 따르면 520~540년대, 안라국은 가야 남부 제국의 실질적 지도국이었다. 특히 529년 열린 ‘안라고당회의(安羅高堂會議)’에서는 백제와 신라, 왜(倭)까지 참석한 국제회의가 진행되었다. 가야의 독립을 외교적으로 지키려는 시도였지만 결국 역사의 흐름은 신라로 향했다.
<삼국사기 지리지 함안군조>에는 “법흥왕이 대병을 일으켜 아시량국(阿尸良國, 아라가야)을 멸망시키고 그 땅을 군으로 삼았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에 따라 아라가야는 법흥왕 재위 기간(514~539년) 중 멸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같은 시기 금관가야나 대가야에는 왕의 이름이 남아 있지만, 아라가야는 수백 년 동안 통치자의 이름조차 전하지 않는다. 그 점이 오히려 이 나라를 더욱 신비롭게 만든다. 언제나 패자는 승자의 그늘에 가려 그 존재마저 지워지는 법이다.
✧ 사라진 제국, 별빛으로 되살아나다
불꽃처럼 타올랐다가 철저히 사라진 불의 제국, 별을 새기고 하늘의 문을 열려 했던
그 신비한 사람들의 베일은 언제쯤 벗겨질 수 있을까.
별의 노래
제국의 노래는 별빛으로 흐른다
그들은 돌 위에 별을 새기며
하늘 문을 두드렸다
죽음은
사라짐이 아니라, 빛으로 건너가는 일
저마다의 이름은
어둠 속에서 붉게 타올랐다
불꽃처럼 살다 간 사람들
밤이 내리면 불씨처럼 깨어난다
천오백 년 적막이
내 안에 스며들고
나는 그대의 별빛을 본다
패자의 이름은 사라졌으나
별은
말이산 하늘에 반짝거린다
돌아오면서, 들른 무진정(無盡亭). 때 늦은 매미 울음이 나를 , 무진무진 상상의 세계로 이끌었다. 불처럼 살다 간 사람들의 숨소리가 들렸다.
함안 무진정(無盡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