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움에 대한 중독

by 다섬

연이어 새벽 두시쯤 일이 끝났다. 목요일 날엔 회사에 차를 가져갔던 터라 차를 타고 집에 왔다. 금요일에는 자전거를 타고 돌아왔다. 반팔을 입고 가로수가 늘어선 새벽 2시의 길을 달리는데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그래도 한참 페달을 밟자니 몸에 온기가 돌고 옷에 조금 땀도 스미는 것 같았다. 다리에 힘이 빠질 때쯤 집에 도착했다. 딱 거기까지, 힘이 다할 때쯤 목표에 이르는 느낌이 좋았다.


반면 어제를 생각해보면. 차에 타고 시동을 건 뒤 텅 빈 새벽 도로로 나오면, 아주 살짝 발끝에 힘을 주는 것만으로 몇 km를 미끄러져 달려갈 수 있었다. 그만큼 가는데 드는 기름값조차 천 원이 안된다. 발끝을 까딱이며 텅 빈 새벽 도로를 달리는데 이것이 너무 부드럽고 쉬운 느낌이 든 나머지 집에 이르러 멈출 수가 없었다. 크게 음악을 틀어놓고 집을 지나쳐 내달렸다. 발끝만 움직이며 손쉽게 앞으로 나아가는 느낌에는 중독성이 있었다. 쉽게 나아가는 만큼 더 차에 머물고 싶었다.



나는 요즘 한 살인자를 탐구하고 있다. 그는 평생 특수절도와 강도, 그리고 강간으로 거의 30년 가까운 세월을 감옥에서 보냈다. 그리고 출소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2명을 죽였다. 한 명은 성관계를 거부해서, 한 명은 돈을 갚으라고 독촉해서 죽였다, 라고 그는 최초 진술했다.


감옥은 자유를 억압하고 틀에 박힌 생활을 원치 않는 사람들과 해야 하는 공간이므로 그에게도 고통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그는 사회에 나올 때마다 누군가를 협박해 물건을 훔치거나 다른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고 자신의 쾌락을 취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돈을 벌지 않고 그저 빌렸고, 갚을 수 없자 빌려준 이를 죽였고, 관계를 만드는 노력 없이 쾌락만 얻고 싶었다. 이 과정에는 우리가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응당 치러야 한다고 믿는 어떤 튼실한 어려움이 없다.


그를 기억하는 주변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던 지난 며칠간, 나는 고민이었다. 수인의 고통을 뻔히 아는 인간이 왜 거듭 수인이 되는 길을 선택하는가. 이것을 사회 시스템과 페미사이드 등 여러 맥락으로 설명할 수 있고 나는 그 점을 주로 내 방송에 담겠지만, 실은 그의 본질적인 동기는 쉬움에 대한 중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발끝만 까딱하면 십 리를 달리는 차처럼. 칼을 들이대고 협박하면 순식간에 수중에 들어오는 돈과 쾌락의 손쉬움. 한번 단타 매매로 수십만 원이 늘어난 잔고를 보며 매일 모니터 앞을 떠날 수 없듯이, 그는 정직하지 않은 그 손쉬움의 세계에 갇혀 자유의 끈을 놓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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