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ft

나의 가치관에 대한 스케치

by Hermann

태어난 지 태어난 지 21년이다. '21'이라는 숫자에 대해 크게 신경을 쓰지는 않는다. 태어났을 때의 기억은 휘발된 지 오래이며, 죽음이 언제 찾아올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타고난 성향이 무심해서인 것도 같다. 다만, 최근 가치관의 변화가 크게 찾아와, 이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속에서 내가 느껴온 것 들을 글로 정리해보려 한다.



먼저, 나는 사람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사람을 잘 믿는 편은 아니다. 누구나 이기적이고 모순적인 면들이 있기 때문이다. 아마 살아오며 그런 부조리함들과 마주하며 경험적으로 각인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의심 많은 성격은 나름 긍정적인 면이 크다. 정말 친하게 지내는 주위 사람들을 생각해보면, 하나같이 다들 열정이 가득하고 똑똑하되 비열하지 않다. 그들에 대해 조금 더 깊이 떠올려보면 내가 어떤 일에 실패를 겪더라도 '그게 별 일이야? 괜찮아. 이상한 일이 아니야'라고 얘기할 사람들이다. 그들을 통해 한 걸음 더 나아가 생각해보면, 나는 그들이 좋다. 그 사람들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과 영향력이 나를 다시 이끌어 준다. 정말 고마운 일이다. 그런데 최근까지 나는 그들에게 마저 차가운 사람이 되려했다. 그들이 내 삶에 크게 영향을 줄 수 없다고 생각했다. 큰 오산이었다.


난 용감한 어린이였다. 어느 순간엔가, 그런 용기가 많이 옅어졌다. 점점 더 예민한 척, 차가운 사람인 척 자꾸만 '척'을 하게 되었다. 예민하고 차가운 사람으로 비추어 지는 것이 편하다고 느꼈다. 더 방어적인 사람이 되어갔다. '하고 싶은 말을 할 줄 아는 비판적인 사람'이라 포장했으나, 내 감정을 마주하는 것을 회피하고 나의 깊은 속을 보여주는 것이 두려웠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다른사람들의 인정으로 내 자존감을 채웠다. 그러나 남들의 인정보다, 나 스스로 날 인정하게 되었을 때, 내 자아가 보다 더 견고해졌다. 나보다 남들이 더 좋은 말을 많이해주니, 단기적인 보상에 목숨을 걸었다. 그러다 보니 항상 보이는 것만 챙기기에 급급했다. 어느 순간 한 번 씩 번아웃이 찾아왔던 이유였다. 다시금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더 근원적인 동기를 갖고, 스스로를 인정을 하게 되는 장기적인 보상을 받는 과정에 익숙해져야한다.


요근래 여러가지 사건들이 있었다. 그리고 형과 생전 처음으로 깊은 대화를 나누었다. 형과 나는 웃기게도 성격이 놀라울 정도로 정반대이다. 그래서 항상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아픈 손가락처럼 생각했다. 그러나 처음으로 깊게 얘기한 그날, 망치로 머리를 맞은 것 같았다.

"너의 인생은 타협의 역사야."

부정할 수 없었다. 내 멘탈이 좋은 편이었던 이유이자,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준 이유이자, 내 뜻대로 내 삶이 흘러가지 않았던 이유이다. 항상 타협해왔다. 현실적으로 생각하는 능력이 부족했다. 꿈은 크지만 과정에서 많은 순간 충동적으로 행동하고 스스로와 타협했다. 그렇게 거듭 실패했다. 실패에 대해 무겁게 생각하지 않았다. '실패할 수도 있지'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실패들에는 누군가의 심적, 금전적 희생이 동반되었다는 사실을 보지 못했다.


좋아하는 것, 아픈 것에 무감하다. 디자인과에 오고 크게 느낀 점 중에 하나는 아이들의 감수성이 정말 풍부하다는 것이다. 나는 살면서 슬퍼서 운 적이 없고, 무언가를 광적으로 좋아한 적도 없다. 그리고 마음이 아프다는 것이 무엇인지 모를 만큼 감수성이 둔감하다. 이번 기회로 살아오면서 내가 상처를 주었던 사람들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들의 입장이 되어 각각의 상황들을 다시 마주하니 정말 마음이 쓰렸다.

마음이 아프다는 것을 느끼면서 많은 것들이 새롭게 보였다. 이때까지 내가 얼마나 자기 중심적이고, 충동적이며, 그로인해 몇 몇 사람들에게 내가 감히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의 큰 상처를 주었을 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내가 무심하게 던진 말들, 무심코 했던 행동들이 어떤 사람에게는 상처가 되고, 상처를 건드리는 일이었다는 것을 깨달으니, 여태 나의 삶을 구성하던, 옳다고 믿던 가치관에 잘못된 부분이 크게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시차 없이 즉시 고쳐지지는 않겠지만, 조금씩 고쳐 나가야하는 부분이다.



운명을 믿는 편이다. 불교와 헤세에 심취했던 나는 가치관의 기반이 다소 허무주의적이다. 어떤 것에 대한 가치 판단이 의미가 없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런 기반과 생각의 흐름을 통해 '선택에 있어서 좋고 나쁨이 존재하는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이 질문에 대한 나의 답은 '없다'이다. 앞서 말했듯, 운명을 믿는다. 따라서 어떤 선택이든 결과가 좋을 지 나쁠 지는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고 본다. 결과론적으로는 그렇지만, 그 과정을 바라본다면 시사할 점이 있다. 선택이 좋고 나쁨의 성질을 갖는 것이 아닌, 그 선택을 어떻게 수습하느냐가 가치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A라는 사람과 B라는 사람이 있다고 가정하고, 동일한 선택을 한다고 했을 때, 결과도 동일할까? 과학실험이나 수학적인 시뮬레이션 등을 제외하고서, 결과는 개개인이 살아온 삶과 운 등에 의해 달라질 것이다. 각자 자신이 한 선택을 수습해나가는 과정이 다를 것이니.

선택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어떤 선택을 하든 그 선택에 대해 어떤 책임을 지고, 어떤 식으로 다음 단계를 이끌어 나갈 지가 중요하다. 머리와 꼬리에서 의미를 찾는 것이 아닌 몸통에서 의미를 찾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는 말을 하고싶다.



마지막으로, 사람들이 더 낭만적인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너무 급급하게 살고, 과도한 자극을 받고, 많은 것들을 놓지고 있다. 나 또한 마찬가지이다. 세상은 물질이 다가 아닌데, 왜 물질적인 것에만 매몰되어 지내는가. 재밌어 보이는 것을 해보고, 좋은 일을 어딘가 스스로만 볼 수 있는 곳에 기록하고, 어떤 선택을 한다면 후회없이 노력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시시콜콜한 이야기부터 진지한 이야기까지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하는 등 의미를 만들어나가는 삶이 좋은 삶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어디에선가 들었다. 행복은 목적이며 물질은 수단일 뿐이라고. 추구해야하는 것은 돈이 아닌 행복이라는 얘기를. 누군가는 행복을 위한 거의 유일한 수단이 부라고 얘기하겠지만, 그렇다면 행복과 부를 구분해서 생각할 수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짧은 기간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고, 글을 쓰고 싶다는 느낌이 들었다. 비록 충동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지만, 글을 마무리하면서 생각이 정리가 되었다. 언젠가 가치관은 또 바뀌게 되겠지만, 이렇게 근간이 흔들릴 만큼의 변화가 올 지는 모르겠다. 이렇게 큰 마음의 울림을 기억하고자 기록을 시작했고, 잊어버리지 않기를 소망하며 이 글을 매듭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