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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카르트 Dec 09. 2019

[창업가의 오답노트] 혼자서도 잘해요?

문외한 아싸도 창업가가 될 수 있다.

나는 이런저런 공부를 거쳐 종국엔 사회학과를 전공했다. 사회학과는 한 마디로 정의하기 좀 난감한 학과지만 굳이 시도해보자면 사회의 관점에서 인간 군상을 해석하고 어떨 때는 이를 바탕으로 뭔가 세상에 보탬이 되려는 학문이다. 어쨌든 사회학을 공부한 나는 어쩌다 창업가가 되었다. 경영학 수업도 좀 들어둘 걸, 나중에 후회하긴 했다.


어찌 보면 창업이나 경영과 무관한 공부를 했고 회사도 인턴 외에 다녀본 적이 없고, 인생의 대부분을 아싸로 산 나 같은 사람도 창업을 하고 팀을 아직까지는 무사히 이끌어나가고 있다는 것이 콩알만 한 용기가 되길 바라며, 나와 비슷한 고민을 가진 사람이 혹시 있을까 해서 맥주 한 잔의 용기를 빌려 끄적여본다.



익숙한 아싸


난 나름 아싸 부심이 있다. 창업하고 1년 간은 거의 혼자 모든 일을 도맡아 했는데, 남들은 힘들겠다고 했지만 난 사실 혼자서 일하는 게, 아니 혼자 하는 모든 것이 익숙했다. 집이 자주 이사하는 바람에 초등학교를 다섯 군데 다녔고(그중 1년은 일본에서 살았다), 엄마 아빠는 바쁜 맞벌이라서 집에서 보기 어려웠다. 그러다 초등학교 졸업 후 혼자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홀로서기 비슷한 것을 일찍이 깨우쳤다. 홀로서기를 잘했다는 건 아니고 어떻게든 혼자 버티기는 했다.



아싸로서 놀랍지 않게도, 나는 딱히 팀플레이어가 아니었다. 팀플레이어는 개뿔, 오히려 팀원들을 무시하고 제갈길 가기 바쁜 재수탱이였다. 조금이라도 내가 보기에 비효율적으로 일하거나 비논리적인 말을 하면 따박따박 쏘아붙이기 일쑤였다.


넌 틀렸어, 왜냐하면 1, 2, 3의 이유 때문이야.


그때의 난 내가 하는 말이 옳은지만 중요했고(그렇다고 옳은 말만 한 것도 아니지만), 다른 사람의 감정이라던지, 조직의 효율을 위해 내가 취해야 할 자세 따위엔 관심이 없었다. 뒤쳐지는 이가 있으면 가차 없이 버리고 내가 혼자 마구 폭주해서 좋은 성적을 받으면 그만이었다.


지금 돌아보면 그때의 나는 내가 남의 잘못이나 부족함뿐만 아니라 나 스스로의 결함조차도 건강하게 받아들일 수 없는 자아 상태였다. 남을 위한 마음의 여유는커녕, 나 자신을 위한 것조차 턱없이 부족했다.



늦은 깨달음


여기까지만 들으면 내가 성격파탄자로 보일 것이다. 내가 왜 그랬을까? 궁색하게 변명하자면 끝이 없지만 거의 초등학교 내내 왕따를 당한 경험이 나에게 큰 영향을 끼친 것 같다. 그땐 억울하거나 속상할 때가 많았다. '왜 나만 괴롭혀? 내가 뭘 했는데?' 그리고 종종 생각했다.



쟤네가 나랑 안 노는 게 아니고, 내가 쟤네랑 안 노는 거야



그리고 또 자주 생각한 게, '난 문제없어, 쟤네들이 잘못하는 거야'였다. 지금 돌아보면 유치하고도 찌질하지만 어린 시절의 경험은 생각보다 자아에 깊은 자국을 남긴다. 또 자주 하는 생각은 사고회로가 되어, 그 궤도를 억지로 벗어나는 일이 매우 어려워진다.


나는 본투비 아싸는 아니었지만(믿거나 말거나 엄빠에 따르면 어릴 때 난 어디서든 1분 만에 친구를 만들곤 했다고 한다) 어쩌다 왕따가 된 후 혼자 플레이하며 애써 남들을 무시함으로써 내 자존감을, 아니 마지막 남은 실낱 같은 자존심을 겨우 지키고 있었던 것 같다. 내 안에서 남들을 미리 거절함으로써 나는 거절당하지 않았다는 거짓 위로로 버텼던 것이다. 거절에 대한 공포, 되돌아보니 그 시절 나를 지배했던 것은 그것이었다. 그렇게 나는 남의 시선을 무시하고 나만의 규칙을 만들어 노는 것의 달인이 되었다.


그러다 20대 중반, 가족의 곁에 돌아와 자아가 안정되면서 조금씩 자아를 탁하게 가렸던 어두운 안개가 걷히면서 보였다. 어느 순간 '이건 아니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해서 나에게 남는 게 뭐지? 내 삶,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이게 내가 원하는 나의 모습인가?


'이건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니야, 나도 사실 사람들과 잘 지내고 싶고, 사람들과 함께 웃고 떠들고 행복하고 싶고,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라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의 외침이 그제야 들렸다. 그제야 나 자신이 쓰고 있던 타인과 사회에 대한 무관심과 무시의 가면을 벗어던질 용기가 생겼다. 그리고 그동안 어떻게든 무시하고, 귀를 닫고 살아왔던 세상과 사회에 마음을 열기로 했다.



결국 나도 사회적 동물


되돌아보면 세상에서 가장 나를 사랑하고 받아주는 작은 사회, 가족 안에서 자아가 안정되면서 사회와 화해할 마음이 들기 시작한 것 같다. 초등학교 때 이후 가족과 다시 함께 살기 시작한 20대 중반, 딱 그때부터였다. 그런데 아뿔싸! 남들보다 훨씬 늦은(?) 사회화 과정 입문 때문에 넘어야  산은   개가 아니었다. 넌씨눈이 따로 없었달까. 물론 타고나길 둔하긴 하다. 



지금은 다행히 이런저런 공부를 하며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리고 부딪히면서, 또 무엇보다 사업을 하며 나 혼자선 제대로 해내기 어려운 것들을 마주하면서 자연스레 이 산들을 조금씩 넘을 수 있게 되었다. 아직도 갈 길은 멀었지만.


결국 사업을 하면서 가장 크게 느낀 건 혼자서도 무언가는   있지만, 다른 이들과 함께하면  나은 무언가를   있다는 것이었다. 해보니까 사업은 공부처럼 나 혼자 열심히 잘해서 될 일이 아니었다. 아니, 나 혼자선 창업 이후 지금까지 한 것들 중 제대로 이룰 수 있는 게 별로 없었을 것이다.


보라, 나 같은 문외한 아싸에 초짜 창업가도 배우며, 성장하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때론 뒷걸음도 치지만 댓츠 오케이. 그러니



이 세상의 모든 아싸들이여, 용기를 가져라!



다카르트 소속 나울나울 직업 크리에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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