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파란 거북이 May 18. 2021

‘하얀 풍차’와 ‘S제과’

 어릴 적 ‘하얀 풍차’와 ‘S제과’라는 빵집이 나란히 우리 동네 한 귀퉁이에 있었다. 두 빵집 모두 맛있는 빵을 만들어 팔았고, 사람들은 줄을 서서 빵을 샀었다. 두 집 모두 이른 새벽부터 빵을 구워 냈고, 아침에 사람들이 출근할 시간이면, 갓 구운 빵들이 아주 맛있는 냄새를 풍기며, 바쁘게 오븐에서 진열대로 자리를 옮기고 있었다.


이른 아침에 등교하면서 그 빵 냄새를 맡으면, 하루 종일 머리 속에서 빵을 먹고 싶다는 생각이 떨쳐지지 않았다. 당연하겠지만 내 용돈의 상당 부분은 이 두 빵집의 빵을 사는데 쓰였다. 우리집 앵겔지수를 높이는 데에도 이 두 빵집의 역할이 컸다.


시장경제의 핵심은 공정한 경쟁에 있다고 생각하는데, 내가 볼 때, 이 두 빵집은 너무나도 완벽한 선의의 경쟁자였고, 정확히 우리 동네 빵시장을 양분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어느 집 빵이 더 맛있는지에 대한 토론도 자주 하였으며, 우리 동네의 자랑거리로 여기고 있었다.


물론, 우리 동네에 다른 빵집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 1~2년을 버티지 못하고, 문을 닫곤 하였다. 맛으로도 ‘하얀 풍차’와 ‘S제과’를 넘어서는 곳이 없었고, 매일 이른 새벽부터 빵을 오븐에서 쏟아내는 열정을 이기는 곳도 없었다.


두 빵집 외에는 경쟁자가 없었기에, 가격을 올려도, 또는, 힘들게 새벽부터 업무를 시작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두 집 모두 그러지 않았다. 사장님들의 열정과 신념이 있었기 때문이다. 자유시장경제에서 우월한 위치에 있어도, 전혀 내색하지 않았고, 자기 할 일에만 집중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비겁하게 상대를 깎아내리거나 비방하는 일도 없었다.


당연하겠지만, 두 빵집 모두 사업이 번창해갔고, 빵집 사장님들이 동네에서 손꼽히는 부자가 되었지만, 아무도 시기하거나, 질투하지 않았다. 당연하게 생각했었다.


세월은 점점 흘렀고, 어느덧, 두 집 사장님들도 이젠 꽤나 나이가 드셔서, 슬슬 후계자를 양성하였다. 사장님들이 직접 새벽에 일어나서 빵을 만드는 모습은 볼 수 없었지만, 아침에 맛있는 빵 냄새도 그대로이고, 빵 맛도 그대로 훌륭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하얀 풍차’ 사장님이 교통사고로 돌아가시게 되었다. 연세가 있으셔서, 사고가 있기 몇 년 전부터, 며칠에 한 번씩 직원들이 빵 만드는 것을 점검하는 정도의 일만 하셨는데, 이상하게도 사장님이 돌아가신 이후, ‘하얀 풍차’의 빵 맛은 평범 해졌다. 사람들의 발길은 점점 ‘S제과’로 돌아섰고, ‘하얀 풍차’는 어느 날 사라져버렸다.



 ‘하얀 풍차’를 잃고, 이제 홀로 남은 ‘S제과’는 사실상 우리 동네에 하나 남은 빵집이 되었다. 생각지도 못하게 독과점을 하게 된 ‘S제과’는 더 사업이 잘 되었다. 한 동안만 말이다. 얼마 후, 사위와 딸이 사업을 물려 받았는데, 빵 맛은 그대로 유지하였으나, 예전엔 빵이 늦어도 아침 6시에는 다 진열되었는데, 이제는 빨라도 아침 10시에 진열되기 시작하였다.


경쟁자가 없어졌기에 나태해진 것인지, 또는 다른 이유가 있는지, 아무튼 우리는 이른 아침 상쾌한 공기에 실린 갓 구운 빵 냄새가 아닌, 한 낮에 다른 여러 냄새에 섞인 희미한 빵 냄새를 맡게 되었다. 몇 년 지나지 않아 ‘S제과’도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지게 되었고, 예전엔 상대도 안 될 것 같았던 수준의 새로운 빵집들에게 점점 시장을 뺐겨갔다.


사회주의가 실패한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나는 건전한 경쟁이 없는 것이 가장 큰 원인이라 생각한다. ‘하얀 풍차’의 경우, 경쟁력을 잃은 확실한 이유가 있었지만, ‘S제과’의 경우, 강력한 경쟁자가 사라지자, 초심을 잃어버렸고, 결국, ‘보이지 않는 빵 냄새’가 사라지며, 고객들의 마음을 돌리게 만들어버렸다.


빵의 가치는 맛 하나만이 아니다. 그 빵에 담긴 땀방울과 열정, 노력 또한 중요한 가치이다. ‘S제과’는 예전보다는 못하지만, 그래도 지금도 꽤나 장사가 잘 되는 편이긴 하다. 단, 아주 젊은 사람들이나 외지 사람들이 주요 고객이다. 예전의 ‘하얀 풍차’와 ‘S제과’를 추억하는 나와 같은 사람들은 쉬이 가기 싫은 곳이기 때문이다.



                                                                                        - 제25회 시장경제 칼럼 공모전 우수상 -

작가의 이전글 엉망진창 첫 해외출장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