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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 거북이 May 30. 2021

계란으로 바위치기 (외국어 공부)

 ‘변호인’에서 ‘바위는 아무리 강해도 죽은 것이요, 달걀은 아무리 약해도 산 것이니 바위는 부서져 모래가 되지만 달걀은 아무리 약해도 산 것이니 그 바위를 넘는다.’라는 대사가 나온다. 군사독재 시절, 맨주먹으로 공권력에 대항하던 민주화 운동 정신을 잘 표현한 명대사라 생각한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항상 이기고 싶고, 정의롭고 싶고, 멋지게 살고 싶었는데, 순간순간 그렇지 못한 경우가 무척이나 많았다.


실패하고, 좌절하고, 이기적인 결정을 해 버리고, 뜻하지 않게 부끄러운 일들도 많이 했었다. 사람이 태어날 때 선한 존재인지, 악한 존재인지 나는 모르겠다. 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악한 생각이나 행동을 많이 한다는 것은 확실히 알고 있다. 잘못되고, 이기적이기 쉬운 존재인데, 자신이 달걀이 되어, 이기지 못할 싸움을 시작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일 것이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나도 여러 번 계란으로 바위 치는 무모한 일을 많이 했다. 내 청춘의 노력, 시간, 꿈, 열정 이런 것들을 탈탈 털어서 전력으로 이루고자 하는 것에 부딪쳤다. 취업, 결혼, 학업이나 업무성과 등등, 어차피 성공하지 못할 줄 알면서도, 그렇게 하지 않으면 미련이 남을 것 같아서, 지푸라기라도 잡는다는 절박한 상황 때문에, 또는 그저 무모하게 얼마나 내 실력이 형편없는지를 알고 싶어서 등 다양한 이유로 나를 바위에 부딪쳐 보았다.


정말로, 안 될 줄 알면서도 사랑하는 사람에게 고백하고, 안 될 줄 알면서도 어려운 시험이나 입시에 도전하고, 당연히 형편없는 결과를 받아들여야만 할 때, 머리로는 이해되지만, 마음이 너무나 아파서, 밤잠 설쳐가며, 눈물을 흘려야만 했다.


이런 일들을 여러 번 겪어오면서 내가 알게 된 사실이 있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란으로 바위를 쳐 보는 것이 안 치는 것 보다는 훨씬 낫다는 것이다.


직접 부딪쳐서 실패하더라도, 여러가지 유익한 경험을 얻을 수 있게 된다. 중국어 공부를 막 시작하던 시절, 학원도 대충 다니고, 공부도 어영부영 하다가, 일 년 넘게 초급 단계를 못 벗어났는데, 무모하게도 중국어 시험을 치러 갔었다. 필기 시험이었는데, 답안지인 OMR 카드에 주민등록 번호, 수험 번호 등등, 기재해야 하는 항목이 전부 중국어로 적혀 있었다.


당연히 어디에 무엇을 적어야 할 지 몰라서 한참 고민하다가, 시험 감독관에게 물어봤는데, 어이없어 하는 감독관의 표정이 잊혀지지 않는다. 나름 굴욕적인 경험이었는데, 그 이후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성적을 결국 받을 수 있었다. 그 시험 이후, 굴욕을 곱씹으며, 정말 마음을 다잡고 공부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처음 영어를 배울 때는 더 한층 굴욕적인 기억이 있다. 중학교 2학년때, 영어 학원 성인 원어민반을 수강했는데, 부모님이 반강제로 결정하신 일이었다. 나를 제외한 다른 학생들은 모두 대학생, 직장인이었고, 어쩌다 고등학생이 한 명 정도 있었다. 내가 가장 어렸고, 영어도 제일 못했다. 솔직히 심각하게 못하는 수준이었다. 할 수 있는 말이 예스, 노우, 그리고, 긍정도 부정도 아닌 다른 경우에 사용하는 ‘음’이라는 소리, 이거 세 개 밖에 할 수가 없었다.


첫 달은 젊은 20대 여자 강사, 두 번째 달은 50대 정도의 완고한 여자 강사, 두 사람 모두 나를 다른 학생들과 똑같이 대했고, 어려워하는 나를 강하게 질책하였다. 완전히 주눅이 들어서 이젠 할 줄 아는 말도 못하게 될 지경이었다. 같은 반 학생들 중에 나를 비웃는 학생들도 있었다. 고등학교 영어 선생님도 한 분 있었는데, 왜 내가 실력도 안 되면서 여기 있는지 모르겠다는 한심한 웃음과 표정을 여러 번 나에게 보여줬었다.


정말, 끔찍한 경험이었고, 완고해서 벽에 대고 대화하는 것과 다를 게 없는 부모님께, 맞아 죽더라도, 이젠 그만 두겠다. 이젠 그만하자는 생각이 들던 세번째 달, 젊은 유태인 남자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다. 유태인을 만난 건 그 때가 처음이었다. 내 자리는 자신과 가장 가까운 자리로 지정하고는 항상 자기가 말할 때, 입모양을 잘 보고, 발음부터 익히라고 했다. 그리고, 다른 학생들이 다 성인이라, 그때까지 수업주제가 다 취업, 결혼, 정치, 문화 등등의 것이었는데, 쉽게 내 생각을 말할 수 있도록, 스포츠, 청소년 문제, 영화 등등으로 바꾸어 버렸다.


그 한달 동안 내 영어실력은 일취월장해 버렸다. 조리 있게 내 생각을 말하고, 들을 수 있게 되었고, 같은 반 학생들은 갑자기 내가 실력향상이 된 것을 놀랍게 여겼으나, 그 유태인 선생님은 당연하게 생각했다. 여기 이 교실에 있는 사람 중에 아무도 15살 때 영어 잘 한 사람 없다. 무모하지만 성인반에 와서 두 달을 버텼다는 것은 이미 알을 깨고 나올 준비가 된 상태이니 놀랄 일이 아니라고 했다.


‘줄탁동시’라는 말을 나는 성인이 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달걀이 부화하려고 할 때, 어미 닭이 바로 껍질을 쪼아서 병아리가 태어나게 만든다는 뜻의 줄탁동시, 당시 그 한 달의 상황에 가장 잘 맞는 말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아쉽게도 지금껏 살아오면서 그렇게 시기적절하게 나를 도와줄 준비가 된 사람을 만난 경우는 별로 없었다. 그러나, 나 혼자사라도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용기를 잃지 않고, 노력해서 스스로 껍질을 깬 경우도 많이 있다. 나에게는 두 달 내내 계란으로 바위를 치다가, 선생님 잘 만나서, 갑자기 영어를 깨친 것이 그렇게 평생의 자산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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