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이책어때

생후 6개월에 세계여행 떠난 아이

미루네 가족 여행이야기 최승연 글·사진 <노마드 베이비 미루>

by 은경

첫 해외여행의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다. 계절은 봄이었고 회사에 사표를 낸 지 얼마 안 된 때였다. 이직한 회사에 출근하기로 한 날까지는 약 2주가 남은 터. 계획에 없는 이직. 여행은 사표를 내기 전부터 예정돼 있었다.


떠나는 날. 하필 비가 왔고 인천공항까지 가는 리무진 버스에는 나 말고 한 명의 승객이 더 있을 뿐이었다. 내 인생 전반기, 까짓 힘들었던 기억을 몽땅 버리고 오자, 그랬던 것 같다. 그렇게 낯선 땅 독일로 내 생애 첫 해외여행을 떠났다. 내 나이 스물여섯에. 그런데 여기, 놀랍게도 태어난 지 6개월 만에 세계여행을 떠난 아이가 있다. 바로 미루라는 이름의 아이.

'2012년 4월 아프리카 케냐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한 생명이 잉태되었습니다.'

미루 엄마 최승연이 글을 쓰고 사진 찍은 '정착지 찾아 떠난 미루네 가족 여행이야기' <노마드 베이비 미루>는 이렇게 시작한다. 미루 엄마는 큰 NGO 단체에 속하지 않고 독립적인 자원봉사를 하는 '채리티 트래블'이란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중에 네덜란드 남자 카밀을 만나 결혼했다. 이들 부부는 '자급자족을 하는 소규모의 공동체 생활이 환경 오염, 가난, 기아 등 세상의 여러 문제를 풀 하나의 실마리가 될 수 있다' 생각하고 그런 삶을 꿈꾸었다.

노마드 베이비 미루 ⓒ 피그마리온

이런 삶을 꿈꾸는 '별난(이라 쓰고 '특별한'이라 읽는다) 부모를 만난 탓에' 생후 6개월 만에 긴 여행길에 오르게 된다. 주변에서 '애가 무슨 죄로 그리 고생해야 하느냐'는 질타도 받았다.


그래도 미루 엄마는 흔들리지 않았다. '결국 이 모든 건 우리보다 더 오래 살 미루를 위한 것'이라고 믿었으니까.


2014년 그렇게 시작된 '정착을 위한 여행'은 아직도 진행중이다. 미루 엄마는 이 대단한 여정을 '소박한 기록'이라고 소개했지만 내가 보기엔 오, 이런 고행이 따로 없다.


베를린을 시작으로 네덜란드, 브뤼셀, 프랑스, 스페인, 한국, 다시 폴란드 독일의 긴 여정. 베를린에서는 서블렛(원 세입자가 사정에 의해 장단기간 집을 비울 경우 그 기간에 제 3자에게 세를 주는 시스템)을 이용했고, 지인의 집에서도 머물렀다.


프랑스에서는 우핑과 핼프엑스(도움이 필요한 농장이나 가정 혹은 게스트하우스에서 정해진 시간만큼 노동을 제공한 후 숙식을 받는 프로그램)이나 카우칭서핑을 이용하기도 했다. 뿐인가. 유럽에서는 흔한 일이라고 하는, 빈집이나 땅에 불법으로 들어가서 사는 스쾃팅 등의 공동체 집을 찾아가기도 했다. 히피들의 마을까지.


이들 부부가 원하는 삶을 찾아가는 모습이 나름 흥미진진하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다. 아직도 미루네 가족은 정착해야 할 곳을 찾는 중이다. 미루야, 네 가족의 집은 대체 어디인 거니? 정해지면 꼭 알려줘.


"여행하며 미루가 자라는 모습을 보면 새삼 인생은 기나긴 여행이라는 걸 느낀다. 고로 급하지 않아도 된다. 미루가 자기만의 속도로 천천히 세상을 배우듯 우리의 인생 여행도 우리만의 속도로 천천히 달릴 거니까. 쉽지 않은 길이지만 결국 우리가 선택한 길. 중요한 건 힘든 고민을 하는 이순간에도 우린 행복하다는 거다. 집이 없어도, 넉넉하지 않아도, 의견이 맞지 않아 투닥거려도, 차 시동을 걸고 핸들을 돌려 새로운 곳으로 떠날 수 있는 바로 이 순간. 우린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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