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 뚫겠다"는 딸 말리지 않은 아빠의 속마음

[엄마가 한번 해봤어] 딸아이 처음 귀 뚫으면서 알게 된 것들

by 은경

"엄마는 귀 언제 뚫었어?"

"고등학교 수능 끝나고 뚫었나... 여하튼 대학 갈 때 뚫었지. 그때만 해도 귀 뚫는 건 중고등학교 교칙에 어긋나는 행동이었어. 그런데 왜?"

"응, 친구들이 요즘 많이 뚫어서..."

"그렇구나... 너도 하고 싶어?"

"응!"

"그래, 그럼 하면 되지 뭐."


화장은 왜 하는지 모르겠다는 열세 살 진이가 귀는 뚫고 싶다니. 내가 제대로 들은 게 맞나 싶을 만큼 의외였다. 그날 이후로 귀 뚫기에 대한 질문이 더 많아진 아이. 귀는 뭘로 뚫는지(엄마 어렸을 땐 총으로 뚫었는데), 얼마나 아픈지(아프면 안 할 거냐?), 한번 뚫은 귀는 언제 막히는지, 엄마는 귀걸이도 안 하는데 왜 안 막히는지, 피어싱은 왜 하는지, 귀걸이랑 피어싱은 뭐가 다른지 등등. 참 궁금한 것이 많았다. 그냥 한번 해보면 될 텐데 왜 자꾸 물어보는 건데...


"진아, 그렇게 궁금해하지 말고 일단 해 봐."

"음... 언제?"

"내일 해, 그냥."

"그럴까? 그래, 그럼 내일 할게."


남편에게 말했더니 이미 알고 있단다. 심지어 진이가 손톱 크기만 한 이어링이 하고 싶다고 했다고. 언제 또 아빠한테 그런 이야기는 한 건지. 하지만 내가 정말 궁금했던 건, 딸에게 귀를 뚫고 싶다는 이야기를 듣고도 크게 감정 변화가 없는 남편의 속마음이었다. 친구들에게 들은 이야기가 있어서다.


친구는 열네 살 딸아이가 여름에 무릎이 드러나는 짧은 반바지를 입는 것도, 가볍게 틴트 정도를 입술에 바르는 것도 마땅치 않아하는 남편 때문에 아이와 갈등이 잦다고 했다. 아빠와 딸 사이를 중재하느라 곤란할 때가 많다고 친구는 하소연했다. 그맘때 여자아이들이 한창 외모에 관심 있어서 그러는 것을 남편은 왜 이해 못하는지 모르겠다는 친구의 말이었다. 그런데 친구의 남편만 그런 건 아닌 듯했다. 미디어 속에서도 그런 아빠들의 모습은 자주 등장하니까.


KBS2TV '살림하는 남자들2'에서 본 아빠 김성수도 그랬다. 염색하고 싶은 딸 혜빈이에게 김성수는 "지금은 안된다"며 딱 잘라 말한다. 그런데도 아빠 몰래 염색을 하고 나타난 딸에게 김성수는 "이렇게 염색하고 짧은 치마 입고 다니면 사람들이 손가락질한다"라고 화를 낸다. 원데이 염색을 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김성수의 화가 다소 풀어지긴 했지만. '(겨울방학 때) 귀를 뚫고 싶다'는 혜빈의 말에 한숨을 쉬는 아빠의 김성수의 모습이 그리 낯선 것만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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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도 이게 아이에게 화를 내거나 한숨을 푹푹 쉴 만한 일인가 싶어 포털에 '귀 뚫기'를 검색해 봤다(뜻밖에 '영어 귀 뚫기'가 나와 크게 한번 웃었다). 아니나 다를까. '귀 뚫기를 아빠가 허락하지 않아서 고민'이라는 사뭇 진지한 글이 눈에 띄었다. 그래서다. 내가 남편의 속마음이 궁금했던 것은.


지난 주말 남편과 나, 아홉 살 윤이까지 네 식구가 모두 이어링 숍에 갔다. 귀를 뚫으러 간 곳은 피어싱 숍을 겸한 이어링 숍이었다. 가게 안에 '넌 안 해도 예뻐, 근데 하면 더 예뻐'라는 인이 눈에 띄었다. 주인장 센스에 큭큭 웃음이 났다. 그런데 런, 귀를 뚫는 데는 두 가지 종류가 있었다. 피어싱과 일반 귀 뚫기. 귀만 뚫으면 되는 줄 알았는데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니 미처 생각 못한 진이도 당황한 듯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때 남편이 직원에게 물었다.


"피어싱이랑 일반적으로 귀를 뚫는 거랑 뭐가 다르죠?"

"아... 일단 핀 두께 차이가 있고요. 뒤에 실리콘으로 마감하는 거랑 볼로 마감하는 게 다른데요. 귀 뚫기를 하고 실리콘으로 막는 경우, 잠버릇이 심하면 빠질 수 있어요. 피어싱은 그럴 일이 별로 없고요. 피어싱을 해도 일반 귀걸이를 할 수 있고, 물론 그 반대도 가능해요."


'잠버릇이 심하면 빠질 수 있다'는 말에 아이는 피어싱을 하겠다고 했다. 그리고는 잠시 안으로 들어가더니 귀를 뚫고 나왔다. 5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나오는 아이. 직원은 이후 관리 방법을 설명했다. 남편은 신기하리만큼 직원에게 많은 걸 물었다.


귀 뚫는 건 뭐로 뚫은 건지, 지금 한 귀걸이는 언제 교체할 수 있는 건지, 붓고 빠지고를 자연스럽게 반복하도록 내버려두라고 했는데 혹시나 염증이 나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등. 가만히 들어보니 귀 뚫기 전에 진이가 다 궁금했던 내용들이었다. 뭐지? 남편은 왜 다른 아빠들이랑 다른 거지?직접 물어봤다.


"자긴 진이 귀 뚫는 거 안 싫어?"

"응. 안 싫어."

"친구 남편 딸애가 짧은 반바지 입는 거, 화장하는 거, 귀 뚫는 거 등등 다 싫어한다는데 자긴 좀 달라서 속마음이 궁금했어. 혹시 불편한데 참고 있는 것 어닌가 싶어서."

"난 진이가 좀 내성적이니깐... 그렇게 친구들하고 어울리고 이것저것 해 보는 거는 괜찮다고 생각해. 진이는 또 싫은 건 안 하니까."


묻길 잘했다. 묻지 않았으면 남편의 깊은 마음을 모를 뻔했다. 아이들에게는 간섭보다 관심이 중요하다더니 남편이 이렇게 행동으로 보여줄 줄이야. 그런데 이거 역시 남편만의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 딸애 말을 들으니 최근 귀를 뚫은 친구 중에(3명이나 되는데!) 부모님이 반대한 경우는 한 명도 없었단다.

귀를 뚫고 나온 진이는 해보고 싶은 거 해봐서 좋단다. 친구들 말 듣고 긴장 좀 했는데 별거 아니라고 말하는 아이 표정이 더 씩씩하고 당당해졌다! 나까지 기분이 좋았다. 빨리 한 달 정도가 지나서 귀가 잘 아물면 마음에 드는 귀걸이로 바꿀 거라는 아이 앞에서 딱 한소리만 했다.

"귀는 뚫어줬으니 귀걸이는 네 용돈 모아서 사라~비싸더라(큭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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