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한번 해봤어] 전업주부 친구와 1박 2일
'역사상 일을 안 하는 엄마란 존재한 적이 없다. 엄마들은 집에서, 들에서, 밭에서, 공장에서, 가게에서, 시장에서, 언제나 일하고 있었다. 자본주의 체제하의 임금노동에 종사하는 여성에게만 워킹맘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은 여성의 노동을 폄하하는 전형적 언어 수행이다."
한국일보 박선영 기자의 책 <1밀리미터의 희망이라도> '가사노동' 편에 나오는 대목이다. '워킹맘이라는 단어 추방 운동을 벌여 볼까 한다'면서. 이 문장을 읽으면서 자연스레 내 주변에 있는 전업주부 친구들이 떠올랐다. 그중 한 친구가 언젠가 했던 말도.
"얘들이 참 그렇더라. 저들 키우느라 직장도 그만두고 그랬는데, 이제 와서 엄마는 왜 다른 친구 엄마들처럼 회사 안 가냐고 묻는 거야. 속이 얼마나 상하던지. 고학년 되고 중학교 가면 더 하겠지? 나 필요 없다고 하면 어쩌지?"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은 모두 저마다의 고충이 있다. 친구들보다 일찍 결혼한 친구 혜주(가명)도 그랬다. 고등학교를 같이 다닌 혜주는 우리가 결혼하고, 애 낳고, 일하고, 살림하는 바쁜 와중에도 서로의 생일을 챙기는 몇 안 되는 친구다.
전업주부 혜주는 생일 축하 모임에 나올 때마다 대부분 늦었다. 아이들 식사 준비, 간식 준비를 다 하고 나오느라 그렇다고 했다. 어떤 날은 김밥을, 어떤 날은 유부초밥을, 어떤 날은 볶음밥을, 어떤 날은 불고기를.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집에서 내 몸 하나 쏙 빠져나오기 바빴던 나는 "야, 남편에게 좀 맡겨. 하루 한 끼 정도 잘 못 먹으면 어때서"라고, 굳이 안 해도 되는 말을 별생각 없이 건네곤 했다. 혜주라고 그걸 모를까. 그렇게 생각했던 것은 불과 몇 년 전이다. 그렇게 안 되는(?) 저마다의 집안 사정은 있기 마련이라고 이해하기 시작한 게.
집안 사정을 매번 일일이 설명하자면 길고, 다시 반복해서 비슷한 이유를 대기도 겸연쩍었을 세월이 벌써 10년을 훌쩍 넘겼다. 그 사이 혜주의 큰애는 5학년, 내 큰애는 4학년인 학부모가 되었다. 그리고 올해 마지막 생일 모임은 좀 특별하게 보내기로 했다. 바로 호텔에서 하루 놀기다. 근데 뭐지? 약속한 날 전날까지 친구들이 아무런 반응이 없...다. 설마, 취소인 건가?
"우리 내일 만나는 거 맞지?"
"맞아 맞아. 좋당.... 비상식량 컵반에 간식에 먹을 거 대량 구매해둠."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혜주. 그래도 한 단계 발전했다. 밥이며, 반찬이며, 국이며... 홈메이드가 아니니까. 전자레인지에 데워먹는 컵반이라니, 우리 혜주가 달라졌다. 그렇게 지난 주말 수원의 한 호텔에 입성했다. 왜 수원이냐고? 혜주 왈, "우릴 두고 어딜 가냐는 아이들에게, 같은 수원 하늘 아래 있다고 했어." 이 못 말리는 모성애, 정말 어쩔 거야.
"그런데 애들한테는 뭐라고 하고 왔어?"
"엄마도 파자마 파티 간다고 했더니 한 번에 알아듣던데? 먹을 거 잔뜩 사다 놨으니 엄마 올 때까지 전화도 하지 말라고 했어. 흥 깨질까 봐."
깔깔깔. 5시 반 무렵 만나 새벽 3시까지 쉼 없이 이야기하고 놀았다. 어떻게 매번 3, 4시간 만나고 헤어졌는지 신기할 만큼 이야기 주제는 끝도 없이 이어졌다. 친구들 이야기, 가족이야기, 직장이야기, 애들 이야기,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살지 우리들 이야기까지. 사실 혜주와의 1박 2일은 고등학교때 수학여행 간 후로는 처음이다.
"너희들은 친구들이랑 가끔 여행도 갔지만, 난 가족 두고 외박을 한 게 오늘이 처음이야. 밤 새서 놀 거니까 각오해."
혜주는 정말 하나도 피곤해 보이지 않았다. 나는 아니었다. 내가 먼저 잠들었고, 눈을 떴을 때 혜주는 소파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혜주야, 왜 거기서 자. 여기 올라와 자. 춥고 불편하지 않아?"
"너무 많이 먹었나봐. 배가 너무 더부룩해서 똑바로 눕기가 더 불편해. 이렇게 기대고 자는 게 더 좋아."
결혼한 지 10여 년. 오랜만에 하루쯤, 가족들에게 벗어나 푹신한 호텔 침대에서 편히 자서 좋겠다 싶었는데 뭐야 소파에서 저 모습은. 괜히 울컥했다. 그동안 가족들 챙기며 종종 거리며 살았을 혜주의 결혼 생활이 스쳐가는 것 같았다. 거듭 올라와 자라고 해도 괜찮다는 혜주는 결국 퇴실할 때까지 한번도 침대에 눕지 않았다. 눈 뜨자마자 다시 이어진 수다는 점심 먹고 차를 마실 때까지 이어졌다. '애들이 엄마를 찾으면 어쩌나' 걱정했던 혜주 핸드폰은 아침에 한번, 점심 먹을 무렵 한번 문자 알람 정도 울렸을 뿐이었다.
"애들이 아침에 엄마 언제 오냐?고 문자로 묻던데... 빨리 오라는 느낌은 아니었거든. 근데 이번에는 천천히 2시까지 오라고 하네. 와, 진짜 애들 이제 나 없이도 되나봐. 진작 좀 두고 다닐 걸 그랬나."
"그래... 한번씩 엄마가 없는 것도 괜찮아. 엄마의 소중함을 알게 된다니까."
여행을 오기 전, 일어나자마자 호텔 체크아웃 시간이 되기 전에 가야할 줄 알았다. 혜주는 그럴 줄 알았다. 느지막이 일어나, 점심을 먹고 커피까지 한 잔 한 다음에 이토록 천천히 헤어질 줄 몰랐다. 그런 혜주가 좋아 보였다. 오후 2시가 다 되어서야 아쉬움을 가득 남긴 채 집에 도착했을 무렵 혜주가 사진 한 장을 보냈다. 싱크대에 차곡차곡 쌓여있는 컵반의 흔적들이었다.
"분리수거 상태로 깔끔한 정리."
"와, 다 키웠네."
"그래, 우리 신랑 다 컸다."
헉. 반전이다. 5학년 딸이 정리했다고 자랑한 줄 알았는데... 우리가 '조선시대 양반 가부장'이라고 놀렸던 그 남편 솜씨라니. 혜주 말대로 (아니 사실 아직 멀었지만,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니까) '다 컸다'. 그리고 이어진 또 하나의 사진 한 장. 이번에는 크리스마스 장식이다.
"집안 곳곳에 엄마를 위한 이벤트 장식... 애들이 이거 만든다고 늦게 오라고 했음. 만족스러운 1박2일이었네."
"올, 가끔 나갈 필요 있겠네."
"나가야겠어. (연락이 없어서) 어젠 약간 서운하더만 오늘부로 감동받고 기특했다는. 나와 시간 보내준 니들 덕분에 좋은 경험 했다."
언젠가 '퇴근 후에 보상이 필요한 이유는, 나의 하루가 내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녁에 얼마 만이라도 내 시간을 갖고 싶은 것이다. 나의 하루가 내 것이 아닌 이유는, 진정으로 원하는 삶을 살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 모든 문제는 결국 이 하나의 문제에서 출발한 것이다'(책 <일찍 일어나는 기술> 서평 '퇴근 후 나만의 시간을 갖고 싶은 이유' 중에서)라는 기사를 본 적 있다. 어디 직장이 있는 사람만 그럴까.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전업주부도 마찬가지다.
다시 박선영 기자의 글을 인용하며 이 글을 마무리할까 한다.
'직장에 다니는 여성만 노동하고 있다는 이 낡아빠진 마르크스주의적 개념부터 우리는 폐기할 필요가 있다. 아내와 엄마들이 집에서 얼마나 과중하게 워킹하고 있는데! 그 워킹이 얼마나 힘든 워킹인데! 그 워킹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주제에!'
그러니 혜주를 비롯한 모든 엄마들이여, 힘내시라. 그대들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들을 그대들이 먹여 살리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가끔은 그들끼리 내버려두셔도 괜찮습니다. 제가 좀 해봤는데요. 처음이 어렵지, 한 번만 하고 마는 사람은 없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