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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다은 Oct 24. 2023

깊은 밤을 날아 너에게 갈 수 없어.

우울증이 연애에 미치는 영향.

우울증이 언제부터 심했는지 정확하게 기억은 나지 않는다. 그저 약을 복용한 것이 18년도 여름쯔음이라는 것만 기억이 나고 그전에 심리상담을 받으면서 '위급한 상황'이라고만 들었기 때문에 대충 18년도 즈음인 것 같다. 당시 우울증 때문인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우울증 약을 먹으면서 인간관계에도 크고 작은 문제들이 터져 나오긴 했다. 막연히 편견이 있는 친구들이 대뜸 "약을 먹지 마라"라고 했던 것 같은데 자세히 설명하기도 귀찮고 나도 약 먹는 게 좋은 것은 아니라서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복약에 대한 거부감이 나도 있었고 솔직히 '이거, 낫는 게 아니라 그냥 일단 재우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잠을 많이 잤기 때문에 정신이 일단 멍-하고 모든 감각이 둔해져서 화도 잘 안 났다. 그러다가 한 달? 두 달 정도에 대략 20킬로가 쪘고 세상에 내 인생 최고 몸무게를 찍었지만 이상하리만큼 너무 행복했다. 그 당시 만나던 사람에게 "난 이렇게 내 생애 최고 몸무게가 되었지만 난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행복하다고!" 이렇게 말했는데, 그 사람은 비웃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사람은 그때 쯔음부터 나를 부끄러워했던 것 같다. 내 건강이나 행복보다 예전과 비교하는 말들을 많이 했고 또 계속해서 다이어트를 요구하고 운동을 강요했다. 말은 "같이 하자"라고 했고 나도 기꺼이 따라가서 같이 운동을 했지만 살은 빠지지 않았다. 그렇게 내 인생 최고로 행복한 순간에, 나의 행복을 사랑하던 그 사람과 나누지는 못했고 나는 씁쓸하지만 어쩔 수 없이 '나의 행복'을 선택하면서 그와 이별했다. 내가 유독 많이 먹었다거나 혹은 어떤 나쁜 식습관 때문에 살찐 게 아닌데도, 그저 몸이 달라졌다는 이유로 나에 대한 마음 전체가 그냥 식을 수도 있구나 싶었다. 갑자기 찐 살에 나도 놀랐고 옷도 다시 사야 하는 등 불편함이 많았지만 너무 행복했었는데, 그 행복을 같이 누리지 못하게 되니까 내 마음이 많이 주춤거렸던 것 같다. 슬픔도 기쁨도 함께 나눌 줄 알았는데,


그리고 나는 살을 뺐던 것 같다. 굶어서. 이건 단순히 약 부작용이니까 빨리 빠지겠지? 하는 마음에 다이어트약을 먹고 한 달 동안 굶어서 대략 10킬로 정도를 뺐던 것 같고 그때 즈음 다가온 누군가와 연애라는 것을 시작했다. 당시에 내가 약을 먹은 지 2년이 조금 넘었을 때니까 아무래도 나의 우울감이나 공황, 자살삽화 같은 것은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었기 때문에 특별히 거부감 없이 연애를 시작했던 것 같다. 그렇지만 연애라는 것은 나의 우울감, 불안, 정서적인 문제만 통제한다고 되는 일은 아니었다. 상대방에 대한 정서적 지지도 연애의 큰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그 사람과의 연애가 너무 버거웠다. 또 연애라는 버라이어티 예능+로맨스+액션+코미디 혼합장르에서 '객관성'을 찾기란 거의 불가능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자꾸 서로의 행동을 복기하려고 했다. 우울증 및 정신적인 질환을 갖은 사람들은 자꾸 어떤 상황을 객관화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고 하는데 꼭 내가 그랬다. 내가 저번에 이렇게 했다면, 이랬을까? 저랬을까? 하는 사소한 복기 혹은 후회부터 상대방의 감정이나 기분을 파악하려고 애쓰는 것 등 스스로 갉아먹는 듯한 관계가 이어졌지만 그래도 나는 그 관계를 오랜 시간 놓지 못했는데, 아마도 그때의 나는 내 몸이 달라져도 한결같이 예쁘다고 해주는 그 사람의 눈빛에 중독되었던 것 같다. 그래서일까? 연애를 하면서 치료약의 개수가 늘어갔지만, 나는 그 사람을 놓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러던 중에 내가 눈치가 빠른 것인지 아니면 더 이상 숨기고 싶지 않았던 그 사람의 선택이었는지 상대방이 다른 사람을 만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나는 그렇게, 그 연애를 정리했다. 그러면서도 '역시, 내가 뚱뚱해서 그렇구나.'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보란 듯이 살을 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나는 연인의 바람이라는 큰 일을 겪으면서 약을 늘릴 수밖에 없었다. 


사실 오래 지난 두 연애가 잘 기억나는 것은 아니다. 대략 내 기억에 의존한 이야기고 각각의 연애를 정리하면서 '우울해서 그런가?' 혹은 '살이 쪄서 그런가?'라는 생각이 많았기에 이런 식으로 기억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어제, 아니 오늘로 넘어오는 그 시간대에 이번 연애가 마무리되었다. 이번연애는 그동안의 연애와 다르게 내가 먼저 호감이 생겼고, 또 상당히 짧은 기간을 만난 것에 비해 상당히 많은 생각을 하게 된 것 같다. 또 '우울증이 연애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많이 고찰하게 되었기 때문에 생각이 꽤나 복잡했는데 우연하고도 운명 같은 어떤 계기로 이렇게 정리하게 되었다. 분명 내가 먼저 호감을 갖게 되었고, 나름 '행복'을 위해 달려온 내 인생에서 이토록 괴로운 연애가 있었나? 싶은 순간들이 참 많았다. 내가 먼저 좋아했다는 사실 하나가 이렇게 나를 모욕적으로 만들 줄은 상상도 못 했고 또 연애를 하면서 '돈'이 이렇게 큰 문제였구나 싶은 생각에 맘고생을 하기도 했다. 


물론 모든 우울증이 나와 같은 것은 아니고 INTJ라는 내 성향도 분명 있겠지만, 상대방의 다채로운 감정과 기분변화는 너무 괴로웠다. 어떤 대답을 해도 파국으로 치닫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고, 지난 경험을 토대로 적절히 대처하면 로봇 같다는 평이 돌아왔다. 연애에도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충분히 알지만 인간적으로 서로 배려하고 신뢰를 쌓는 노력이 아닌, 상대방의 감정을 케어하는 노력이 필요한 줄은 몰랐다. 정서적 지지라는 큰 틀에서만 생각했지 아침에는 아침이라서 밝게, 점심은 점심이라서 밝게, 퇴근길에는 퇴근길이니 밝게 전화를 받아야 하는 줄은 몰랐다. 그러나 어떻게든 시작한 관계에 섣불리 끝맺음을 하고 싶지는 않았기에 어떻게든 내 나름대로 노력을 해왔고, 또 2-3개월이면 서로의 다름에 싸우고 맞춰가는 시간이라고 생각해서 계속 참아왔다. 하지만, 나는 이상하게 무시당하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왜 나를 무시할까? 왜 내가 하는 말마다 자꾸 묵살당하는 기분이 반복되었다. 솔직히 지금 생각하면 그럴 때 바로 화를 내고 싸웠어야 하는데, 나는 솔직히 내가 우울증 때문에 아니 내가 우울증 약을 끊었기 때문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거라고 생각하고 일방적으로 참아왔다. 그럴 수도 있지. 다른 의견을 제시한 것뿐이지 나를 무시한 게 아닐 거야, 이렇게 나 스스로를 다독였다. 나는 이 부분이, 그러니까 내 기분과 내 감정을 나 스스로 존중하지 못한 것이 제일 잘못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울증이 연애에 미치는 제일 크고 나쁜 영향이었다고 생각한다. 기분이 나쁘면 나쁘다고 말했어야 했다. 그것이 우울증에 기반했든 뭐든 큰소리를 내거나 소리를 지르거나 우기는 등 상식을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분명 내 의사를 밝혔어야 했다. 무조건 참는다고 능사가 아닌데 내가 잘못했던 것 같다. 세세하게 다 적을 수는 없지만, 연애를 하면서 이런 식으로 소심해지다 보니 상대방에게 나는 자꾸 만만한 사람이 되어갔던 것 같다. 근데 그걸 다 얘기할 수 없어 참아두었는데 어제는 그냥 조용히 이별을 말했다. 상대방은 자꾸 다시 기회를 달라고 하지만 나는 굳이 인내와 고통의 관계를 이어가고 싶지 않다.


연애를 왜 하는 걸까? 어떤 연애가 좋은 연애일까? 최소한 나는 서로에게, 서로가 안 좋은 영향을 주고받지는 않았으면 좋겠고 또 가능하다면 서로 좋아지는 성숙하고 발전적인 관계가 되기를 바라는데, 그런 배려가 이렇게 돌아오는 것을 보니 나는 이제 연애 같은 것은 그만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울한 사람이 사랑을 할 자격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사랑을 하고 연애를 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감정을 충분히 이해하고 보듬어주었으면 좋겠다. 우울한 사람이 '다소 이기적으로 이래도 될까?' 하는 마음이 든다고 해도 괜찮은 것 같다. 왜냐면 우울하지 않은 사람들은 그런 마음, 그런 죄책감 없이도 대놓고 이기적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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