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味)라는 미(美).
프랑스 미식의 역사는 단순히 '더 복잡하고 맛있는 요리로의 발전 과정'이 아니다. 유럽이라는 거대한 문화의 용광로 속에서, 정치적 격변과 사회적 우연이 맞물려 달성된 인문학적 쾌거이다.
고대 갈리아의 풍요로운 자연은 로마의 합리적인 문명과 조우하여 샤퀴테리와 와인이라는 기초를 다졌다. 로마의 질서를 상실한 중세의 혼란 속에서, 봉건제라는 엄격한 위계는 향신료에 대한 광적인 과시로 표출되었다. 이후 르네상스와 절대 왕정기는 군주들의 경쟁심을 자양분 삼아 포크(Fork)라는 에티켓과 전문화된 조리법을 싹틔웠다. 특히, 토크 블랑슈(Toque Blanche, 높게 솟은 요리사 흰색 모자)의 높이만큼이나 위엄을 떨치던 궁정의 권위가 혁명의 단두대 아래서 절단된 순간은 미식 역사에서의 기적 같은 일이었다. 궁 밖으로 나온 셰프들은 시민 사회 속에서 레스토랑이라는 자유주의를 개화시켰기 때문이다. 19세기 거장들이 정립한 프렌치 미식의 '규칙'은 일국의 조리 체계를 넘어 전 세계가 공유하는 보편적인 '법칙'으로 자리 잡았다.
결국 프랑스 미(美)식은 야만과 문명, 억압과 해방의 역사가 식탁 위에 차려낸 가장 味(맛 미)적인 결과물이라 할 것이다. 그것은 '맛의 진리'가 아니라, 2000년에 걸친 정치·사회·문화적 격변의 산물이다. 중세 귀족이 향신료를 뿌린 것은 맛을 위해서가 아니라 부를 과시하기 위해서였고, 루이 14세가 수십 가지 요리를 차린 것은 단지 맛있는 것을 탐내서가 아니라 절대 권력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오늘날 서양식 고급 레스토랑에서 우리가 마주하는 그 모든 것—코스 요리의 순서, 와인 페어링, 소스의 복잡함, 셰프라는 직업의 권위—은 이 긴 역사의 흔적이다.
따라서 프랑스 미식을 경험할 때, 우리는 그것을 단순히 '어렵고 비싼 음식'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넘어, 하나의 '문화적, 역사적 서사'로 읽을 수 있다. 포크를 사용하는 순서에서 16세기 카트린 드 메디시스를, 코스 중간의 셔벗에서 에스코피에의 러시아식 서비스를, 독창적인 소스에서 68혁명 이후 권위에 대한 질문을 발견할 수 있다면, 그것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행위를 넘어 하나의 인문학적 경험이 된다. 그리고 그 이해는, 우리 자신의 미식 전통—된장찌개의 깊은 감칠맛, 김치의 발효 과학, 한 상 가득 차려진 반찬들의 조화—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미식은 권력의 언어였지만, 동시에 인류가 음식을 통해 도달할 수 있는 예술적·철학적 답변 중 하나를 보여주는 흔적이기도 하다.
2025년 12월 3일.
dad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