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헬조선은 최악이 아니란 말인가?
근 몇 년간 온 국민을 충격과 공포에 빠지게 했던 일이 참 많았다. 굳이 예를 들지는 않겠지만 대부분 위쪽(?)에서 발단이 되어 생긴 일들과 정말 평범한 사회 일상에서 벌어진 일들로 구분해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가장 최근에 그 중간쯤? 애매한 영역에서 정말 어이없고 화가 나는 일... 어쩌면 현재 우리 사회의 모습을 오마주한 듯한 사건이 발생되었다.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왜 그런 말을 하게 되었을까?
나향욱은 전형적인 고시 엘리트다. 그중에서도 최상위 커리어를 밟아온 사람으로서 50대 후반 나이면 장차관도 충분히 할 수 있을 탄탄대로 위에 있었다. 그런데 대체 왜 그런 말을 뱉었을까? 아무리 사석이었다지만 기자들이 즐비한 자리에서 그렇게 거리낌 없이 그런 말을 했다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
공직 생활의 시작부터 남달리 똑똑하고 인정받았던 이 사람은 이명박 정부에서부터 박근혜 정부까지 교육 관련된 굵직한 일들을 항상 앞서서 처리해오며 나름 스스로가 매우 중요한 사람이라고 생각 들기 충분했을 거다. 내 개인적인 추측이지만 아마도 이 사람이 생각하는 윗선(?)으로부터 긍정적인 메시지를 받았을 것 같다. 그런 메시지를 듣고 자신이 살아온 발자취를 한 번쯤 돌아보지 않았을까? 돌아보니 자기가 생각해도 정말 열심히 잘 달려왔고, 이제 곧 스스로가 생각하고 바라 왔던 1%에 들게 되었다고 생각되어 성취감에 도취되어 있었으리라..
그런 심리상태에서 어쩌다 마련된 술자리에 기분이 좋은 나머지 자신이 살아온 인생, 20여 년의 공직 생활 경험을 통해 굳어진 인생관과 사회관이 아무 거리낌 없이 쏟아져 나온 것이다.
"민중은 개· 돼지 취급을 하면 된다."
"나는 신분제를 공고화 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사회가 나아지려면 어느 정도 인정하는 게 있어야 할 거 아니냐라고 얘기한 거다."
아무리 그래도 이 똑똑한 양반이 대체 왜 그랬을까?
정말로 그렇게 믿었고, 스스로 신분 상승을 위해 노력해서 이 위치까지 온 나향욱 스스로가 매우 자랑스러웠기 때문에... 내용이 신문에 실려도 충분할 만금 본인의 믿음이 확고했기 때문에... 설령 기사가 문제화되더라도 자신에게 피해가 미치지 않을 거라는 "특권"을 이미 확보했다는 생각 때문에?라고 하면 지나친 비약일까?
신분제 사회가 보이시나요?
우리나라 헌법에는 시작부터 이렇게 나와 있다.
"제1조 ①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국이다."
조금 더 가보면 이런 문구도 나온다.
"제11조 ①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② 사회적 특수계급의 제도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어떠한 형태로도 이를 창설할 수 없다."
나향욱 씨의 발언은 대한민국 헌법을 정면으로 부정한다. 그리고 수위를 더해 대한민국 주권의 주체인 국민 99%를 짐승으로 몰았다. 듣고 읽는 순간 화부터 나는 게 인지상정이지만 이상하게 뒤가 구린... 이상하게도 씁쓸한 느낌을 지울 수 없는 그런 무언가가 있다. 지금 이 사회를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와 같은 생각이 들 것이다.(안 든다면 나향욱의 1%에 끼인 거다. 축하한다) 이 씁쓸한 느낌의 정체는 대부분 어렴풋이 느끼며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 부분이 그 씁쓸함을 외면한 채 자신 앞에 놓인 삶의 길만을 바라보며, 또 그 속에서만 의미를 부여하고 있지 않나 싶다.
정리해 보면 이렇겠다.
"분명히 이 사회에 불평등은 존재하며, 그런 불평등은 대부분 가진 자에겐 해당되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그걸 굳이 문제 삼고 싶진 않다. 문제를 삼았다가 이미 불평등한 체제에 의해 불이익을 받거나 심하면 내가 바라보고 있는 길마저 망가질 수도 있다. 그리고 그런 것들...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이 말에 공감한다면 여러분은 지극히 평범하게 "헬조선"을 살아가는 사람 이리라 생각한다. 그 "헬조선" 속에는 벌써 매직(real magic?)으로 그어진 사람들 간의 구분선이 존재하고 있고 그 선은 쉽게 넘을 수도 없으며 심지어 어떤 사람은 그 구분선 조차도 무의미한 현실에 좌절하고 있다.
헬조선과 나향욱의 국민 개돼지론
헬조선이란 말을 대변하는 것이 바로 수저 이론이다. 어찌 보면 금전적인 면만을 부각하여서 말하는 것도 같지만 사실 현재 우리 사회에서는 "금전적인 금수저 = 권력적인 금수저"인지 오래이다. 정경 유착이 심화될 대로 심화되어 어찌 보면 국가 존재의 가장 큰 이유인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일마저도 가진 자들의 이익을 위해 수 없이 나락으로 떨어져 가고 있다. 그런 사건들을 볼 때마다 국민이 국민으로 보이지 않는 것인가 싶기도 하고, 나라가 '전혀'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는 생각도 한다.
그나마 착하다고 알려진 기업들 조차도 사실은 믿을 수 없다. 기업이란 게 태생적으로 이윤만을 목적으로 하는 집단이기에 지나치게 이윤 추구에 몰두한 나머지 중요한 부분을 간과하거나 묵살하기 일수다. 이런 경우 시스템이 관여하여 기업을 바로잡아줘야 하나 관여 주체인 정부는 도리어 시스템을 풀어주는 형국이니 시스템이 무너진 이상 이 사회에서는 사실 아무것도 믿기 어렵다.
확실히 국민이 국민으로서, 이나라 주권을 가진 사람으로서 대접을 못 받고 있으며 이미 불평등과 불공정은 우리가 늘 겪는 일상이 되어 버린 현실이다.
이런 사회분위기 속에서 소위 1%에 근접했다는 나향욱이 저런 말을 하는 것은 상당한 상징성을 갖는다고 볼 수 있다. 그것도 기자들 앞에서 기사화해도 된다며, 똑똑한 엘리트의 입에서 저런 내용이 나온 것은 이 나라 국민으로서는 정말 참담한 일인 거다.
자본주의를 기본 경제구조로 삼는 사회에서는 정경유착이나 정경유착으로 인한 사회적인 문제가 대부분 존재한다. 하지만 정상적인 경우 시스템, 즉 법으로 그런 문제점들을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으며, 그런 것이 바로 사회 '정의'중 하나인 것이다. 그러나 지금 같은 우리 사회 분위기에서, 이른바 '사회 정의'라는 것에 의문문이 달리는 분위기 속에서 저런 위치의 사람에게서 터져 나온 사회 계층에 대한 문제성 발언은 심각한 사회적 문제의 소지가 있다.
어쩌면 지금이 최악이 아닐 수 있음을 암시하는 그의 발언은 사실 두렵기까지 하다.
나는 이번 사건이 한 사람의 단순한 일탈로 치부되어 넘어가는 것은 매우 위험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도리어 내가 쓰는 이 글이 분란을 조성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만약에 소위 말하는 사회 지도층에서 이런 생각이 일반화되어 있다면 가뜩이나 지역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점점 분리되어 가는 우리 사회에 있어서는 매우 위험한 상황인 거다. 대체 어디까지 떨어져야 바닥이란 말이냐...
"전쟁은 평화. 자유는 예속. 무지는 힘."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년'에 보면 극도로 통제된 사회가 묘사된다. 주인공은 지극히 제한된 삶 속에 의문이 들고, 지도층인 '당'을 의심하고 급기야 반당 세력에 합세하며 벌어지는 일들을 그리는 소설인데, 그 지도층에서 내세우는 대국민 선동 문구가 바로 "전쟁은 평화. 자유는 예속. 무지는 힘."이라는 말이다.
이 소설 속에서 '대형(big brother)'이라는 상징적인 인물로 대변되는 지도층인 '당'은 국민을 완벽한 통제하에 두기 위해 모든 국민을 철저하게 계급화하여 내부 당원(지도층), 외부 당원(중간층), 노동자층(완벽한 피 지배계층)으로 나눈다. 그렇게 나뉜 계급 하에서 완벽하게 통제된 정보만을 제공하고, 현재와 과거의 모든 기록을 조작하며, 모든 사회적인 관심을 전쟁과 적에게 쏠리게끔 지속적으로 선동하며 감시한다. 특히나 노동자층 사람들은 완벽하게 예속되고, 사회에 대해 알지 못하며 오로지 전쟁 상대인 적국과 반 '당'의 대표적인 인물인'골드슈타인'과 그 일당들에 대한 무조건 적인 증오를 표출하며 여타의 감정은 지극히 제한된 환경에서 살아간다.
이 소설의 시대적 배경은 1940~50년대이며, 전체주의에 의해 세상이 통일되고 그 세력에 의해 나라가 다스려지는 상황을 극단적인 배경과 그 속에서 진짜 '사람'으로서 "나는 왜? 우리는 왜?"라는 의문을 가지게 된 주인공의 이야기를 통해 여러 가지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계급화되고 통제되는 사회의 무서움과 비인간성이다.
물론 지금 우리 사회를 "1984년"의 사회와 대칭시키는 건 말도 안 되는 비약이다. 적어도 우리는 자유 민주주의를 표방하고 법 앞에 평등하다는 법치주의 사회이며, 나름 인권적으로도 훌륭한 헌법을 가지고 있는 나라다.
하지만 생각해 보자.
그런 원칙적으로 민주적이고 자유로운 사회이지만 사실 속을 들여다보면 이미 세습 구조가 공고히 다져진 편인 소위 '가진 자들'과 그들과 한통속이 된 권력가들, 그런 권력가들이 기본적으로 "이미 이 사회는 계급화되어 있어서 깰 수 없어. 아무리 밑에서 뭐라고 지껄여도 조금만 통제하면 금방 잊히고 결국 이 사회는 우리 생각대로 돌아갈 수밖에 없어."라는 마인드를 갖고 있다면 말이다.
괜찮겠는가?
"언제까지고 나한텐 상관없는 남의 일이야"라고 생각하는가?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거야.."라고 생각하는가?
정말 "이미 Hell이어서 더 나빠질 것도 없어.."라고 생각하는가?
이 글을 쓰는 와중에 이미 이 질문들에 대한 대답이 될 만한 일이 발생했다.
스트레스 공화국 대한민국
우리나라 사람들은 스트레스가 많다. 이걸 수치화해서 나라별로 수치화할 수 없지만 행복지수라는 정반대의 지수는 이미 조사되어 우리나라는 수 년째 OECD 국가 중에서 최 하위를 못 면하고 있다.
우리는 그럼 왜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살고 있을까? 이미 국민 소득은 3만 불을 목전에 두고 있고 나름 OECD내에서도 풍족한 나라라는 소리를 듣는 우리인데 말이다.
나는 제일 먼저 생각하는 것이 일렬로 놓인 서열식 제도권 교육만으로 머릿속을 채우고 이 복잡해진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는 점이다.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한 명쾌한 대답도 없이 공부 잘해야 잘 산다는 식의 단순한 논리만을 강요당하면서 8세 때부터 최소 19세 때까지 똑같은 지식들을 지겹게 배우며 사회에 나왔다. 하지만 사회에 나와보면 이때 배운 지식들이 대부분 의미를 잃는다. 우리는 대부분 주입식 교육으로 넣어둔 지식들을 치우고 생계를 위해 필요한 지식들을 전문성이란 이름하에 다시 채워 넣는다.
우리가 배워온 제도권 교육에서 융통성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었다. 이렇게 복잡해진 세상을 살아가려면 융통성과 새로운 것에 대해 지속적으로 배우고 알아가는 학습 적응력이 필수적으로 요구되는데 우리는 이미 어린 시절 '서열화 주입식 교육'을 매우 많은 스트레스를 견뎌가며 경험해온 터라 '공부 = 스트레스'라는 공식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참'으로 작용하게 되었다. 이런 상황이라면 뻔하다. 당연히 대부분의 사람들은 '살아가는 것 = 스트레스'라는 공식을 세울 수밖에...
두 번째는 희망이 보이지도 않은 채 생계의 위협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70~80년대 열심히만 하면 잘 살 수 있단 희망만으로 근성과 끈기만을 강조하며 오직 한 방향만 보고 달려왔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어느 정도 삶의 질이 높아진 마당에 더 이상 같은 논리만으로는 채울 수 없고 또 무언가 희망을 이야기하기 어려워진 현재를 느끼고 있다.
'헬조선'이란 말로 대변되는 현재의 사회 분위기가 또 그렇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현재 자신이 하고 있는 일, 종사하고 있는 회사에서 도태되면 생계마저 위협받을 벼랑에 몰린 삶을 살아가고 있다면 어떨까? 아직까진 피부로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삶의 위협을 받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 사회적으로 일자리도 모자라고, 특히나 비정규직 등만 양산해 내는 현재 사회 분위기 속에서 그런 일자리들 조차 잃을까 전전긍긍하는 분들... 의외로 많다. 하지만 이런 사회적인 분위기를 피부로 느끼기 시작한 것은 불과 몇 년이 되지 않았다. 물론 내재되어 있던 사회적인 문제들이 터져 나와서 만들어진 분위기지만 이 모든 것들이 불거지기 시작한 이유는 결국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생존'이 위협받기 시작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통제되는 사회. 그것이 가능하다고 믿는 그들
현재 우리 사회에서는 여기저기서 정말 다양한 문제들이 터져 나오고 있다. 근데 사실 원인은 한 가지다.
그건 바로 원칙이 무너졌거나 원칙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원칙을 지키고 최소한의 노력만이라도 했다면 지금의 사회분위기 우리가 받는 스트레스들은 상당히 덜어졌을 거다. 하지만 책임자들은 어떻게든 묻어버리고, 잊히게끔 하고 넘어가려만 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그런 와중에 나향욱 사건이 터져 나왔다. 앞서 설명한 대로 잘못된 시스템을 바로 잡고 원칙을 지키며 국민들을 지켜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는 계층에서 말이다. 지금 분위기로 보아서는 단 한 사람의 개인적인 일탈이 아니다. 저들은 기본적인 마인드가 그런 것 같다.
단 1% 만을 위해 정책을 뜯어고치고,
단 1%만을 위해 99%를 획일화시키려 들고,
단 1%만을 위해 99%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그런 식의 사고방식인 거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이 가능하다고 그들이 믿는 그 자체인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꿈꾸는 것이 무엇일까 상상해 보면 정말 끔찍해진다. 정말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년"에 묘사되는 사회. 나는 그 모습이 충분히 오버랩이 된다. 지금 현재만 바라봐도 정말 북한 공산당에서 선전하고 선동하는 행위들, 그런 획일화된 분위기의 사회를 만들려고 기도하는 정부의 위정자들의 의도들이 눈에 보이고 있다. 어떻게 그들이 하는 방식과도 그리도 비슷한 것인지... 국론 통일이라는 명목 하에 하더라도 그렇게 창의성도 없는 것인지...
묻고 따지고 답하자. 능동적으로!
그래서 나는 우리가 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제일 먼저 변해야 할 것이 국민으로서의 태도라고 생각한다.
국민 대다수가 아직 '정치는 너무 머리 아파'라며 신경을 아예 꺼버리고 살아간다. 정치에 대한 공부가 스트레스이기 때문이란 생각이 들겠지만 그건 우리가 사는 세상을 포기하고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을 망치는 게으름이다.
우리는 반드시 의문이 생기는 일에 대해 "왜?"라고 질문해야 한다.
그리고 그 "왜?"라는 질문에 반드시 답을 구해야 한다. 그것도 납득이 될 때까지.
저들이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거라고? 그렇다면 뭉쳐서라도 해야 한다. 하나의 힘보다 여럿이 '연대'해서 함께 해야 한다. 함께하기 좋은 툴들이 요즘엔 넘쳐난다. 수많은 SNS 툴 중에 하나씩만 선택해서 어떤 문제에 대해 같은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찾아보고 그 그룹에서라도 목소리를 보태야 한다. 목소리를 내고 행동으로 움직이지 않으면 저들도 변하지 않을 거란 것을 이미 우리는 수십 년의 경험, 아니 역사를 통해 알고 있지 않은가? 이런 예를 들어보자. 군 입대를 해야 할 20대 초 청년들 10만여 명이 뭉쳐서 "김일병 구타사건에 대한 납득할 만한 해결책과 실행 없이는 단 한 명도 썩어빠진 군대에 입대할 수 없다!"라고 버틴다고 상상해 보자. 물론 나라에서는 법과 국민의 의무를 들어가며 각개격파를 하려고 들 테지만 그들이 동요 없이 똘똘 뭉쳐 계속 한 목소리를 낸다면? 그때는 정부도 어쩔 수 없이 대화와 타협의 자세를 들고 나올 수밖에 없지 않을까?
저런 식의 특권 의식과 아집으로 뭉친 1%에게 99%가 할 수 있는 일을 작은 것부터 해야 한다. 학교 다닐 때 제대로 해 보지 못했던 "왜?"라는 질문을 지금이라도 던지고, 그 답을 구해야 한다. 아니 원칙에 맞는 답을 들을 때까지 계속 질문을 던져야 한다. 그리고 내가 모르는 부분은 알아내야 한다. 어려운 부분은 또 공부해야 한다. 사실 이런 걸 귀찮아하고 힘들어하게끔 사회 시스템이, 사회 구조가 그렇게 되어 있다. 하지만 만약에 계속 물러서고 미룬다면 자식들에게, 또 후손들에게 이래라저래라 할 자격이 없어진다. 우리의 방관으로 계속 망가져가는 사회에 대해 자식들과 후손들에게 미안해하고, 어른으로 거듭나서 떳떳해지기 위해서라도 그렇게 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더 이상 나이가 많아서 어른이고, 어른 노릇하는 세상이 아니지 않은가?
한 가지 문제라도 자신이 관심 있는 부조리함에 대해 끝까지 관심 갖고 끝까지 의문해하고 답을 얻을 때까지 목소리를 내며 노력해 보자. 그렇게 해야 우리 스스로가 제대로 된 시민으로서 거듭나게 될 수 있을 것이고, 자식들과 후손들에게 떳떳한 어른으로서의 본보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하며, 그런 차원에서 이번 문제는 우리가 경각심을 갖고 정치를 바라봐야만 하는 계기가 될 사건이다. 나향욱으로 대변되는 그릇된 사상을 가진 정치인이 분명히 더 있을 것 같은 현재의 우리 사회이기 때문에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우리는 좀 더 책임감을 갖고 정치권을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