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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독임 Dec 08. 2024

나는 기독교인이다

창피하고 부끄러운 고백

고등학교  친구의 전도로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다. 사람도 많고 낯선 분위기였지만, 설교하는 전도사님이 잘 생긴 청년인 데다 유머러스하고 말씀도 귀에 쏙쏙 들어와 매주 기다려지고 즐거웠던 기억이 난다. 이런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건가. 성가대를 하자는 친구의 말에 덥석 성가대 봉사도 시작하며 열심히 다녔. 각종 행사와 시스템도 잘 갖추어진, 멋지고 좋은 곳이었다.


교회는 즐거웠다. 뜨거운 신앙생활로 20대를 보냈다. 여중, 여고도 모자라 여대로 이어진 학창 생활은 자발적 아웃사이더로 지냈지만 교회에선 누구보다 열심이었다. 다재다능하며 멋지고 근사한 언니, 오빠들, 동기들을 만난 그곳은 성인이 되어 처음 접한 오롯한 사회였다. 그곳에서 남편을 만나 결혼을 했으며 아이들이 나고 자라며 유아세례까지 받았으니, 우리 부부에게는 영적 고향이나 다름없는 곳이었다. 7년 전, 우리는 왜 그 교회를 떠났을까.


그 교회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장로교회이자 몇 년 전엔 불법적인 부자 세습으로 떠들썩했던 곳이다. 선거철만 되면 보수 쪽 후보들이 반드시 방문했으며, 임기 중인 대통령들도 한 번씩 다녀가는 곳이기도 하다. 우물 속 개구리가 아는 곳은 동그란 하늘이 전부라 하지 않은가. 어린 마음에 그때는 교회가 마냥 대단해 보였다.


십여 년 전, 성탄절을 앞두고 방문한 전두환을 향해 목사와 성도들은 환대했. 이명박 장로는 대한민국 경제에 크게 이바지한 세상 훌륭한 믿음을 가진 분이라며 칭찬했다. 우리라도 박근혜를 감싸주어야 한다는 목사의 말을 들었다. 그제야 우리는 미련 없이 정든 교회를 떠날 수 있었다. 그 후로도 부자세습과 비리로 떠들썩했지만, 막강한 돈과 권력으로 둘러싸인 그 교회는 여전히 굳건하며, 기독교를 기득권들의 집단으로 만드는데 일조하고 있다. 오히려 나와 같이 교회를 떠나고 비판하는 성도들을 향해서는 불쌍하고 무지한 자들, 혹은 악의 세력으로 바라본다.


이 교회, 저 교회 방황하다 우연히 찾은 교회는 예배당이 없었다. 주일이면 학교를 빌려 강당에 의자를 놓고 예배하는 곳이었다. 화려하고 따뜻하며 아름다운 교회에 익숙했기에 처음에는 체육관 같은 예배실이 불편하고 이상했다.

전동 휠체어로 이동하는 많은 장애인들, 큰 덩치인데 노약한 부모의 손을 의지해 어린아이처럼 걸어가는 청년, 조용한 예배 중에 돌발 행동하는 장애인들에게 따가운 시선을 주지 않는 생경한 모습들이었다. 몇 주 지나 보니 여기는 장애인과 함께하는, 장애인 재활과 자립에 앞장서는 교회였다. 번듯한 교회를 세우는 대신 장애인들을 위한 학교를 세워 그곳에서 예배를 드렸고, 주보에 매주 헌금액이 명시되는 투명한 교회였다.


올해로 등록한 지 곧 8년 차가 되어간다. 하지만 우리 교회도 서울 강남에 위치한 큰 교회이고 5,60대가 주축인 만큼 보수적 성향이 강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사회적 약자를 돕는 그 일만큼은 누구보다 앞장서는 교회가 자랑스러웠다.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고자 앞장서는 모습이 자랑스럽고, 여전히 뒷자리만 지키는 소극적인 나는 늘 회개한다.


오늘도 심란한 마음에 예배에 참석했다. 대표기도 순서에 아니나 다를까, 대통령과 정치인들이 나라를 잘 다스리게 해 달라는 기도문에 눈이 번쩍 떠졌다. 그 뒤로는 좀처럼 설교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사실 고백하자면 평소에도 그랬다. 삶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 공허한 울림 같아서다.  


이번 사태에 대해

교회로 하여금 깨어 기도하라는데

나라를 위해 기도하라는데

미래 세대를 위해 기도하라는데

명확한 메시지는 없다. 성도들이 듣기 싫어하는 메시지는 대놓고 피한다.


비단 우리 교회만의 문제만 아닐 것이다. 

오늘 설교 중, 최근 종교에 상관없이 사람들에게 종교 호감도를 조사했다는 내용을 들었다. 불교와 천주교는 절반 이상의 호감도를 차지했지만 개신교는 33%(사실 더 낮을 거라 생각함), 원불교 29%였다고 한다. 교회는 배타적, 물질적, 이기적. 세속적이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맞다. 모든 종교가 시국 선언을 하며 들고일어나는데, 여전히 기독교는 조용하게 입 다물고 있다는 현실에 절망감을 느끼던 차에 당연한 결과다 싶었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에 누구보다 앞장섰던 교회와 기독교인들은 어디 갔는가.

나는 기도하고 있으니 됐다, 스스로 속이고 있지는 않은가.

예수님이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의 삶과 행위는 어떠해야 할까.


오늘의 설교 말씀 본문이다.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들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태복음 5:16)


말씀 속 착한 행실이 무엇인지
우리는 생각해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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