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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페로망 Aug 22. 2022

욕망의 진화 4 : 지금 이 노래 악보로 그려두고 싶다

나의 노래가 구체적인 산출물로 탄생하는 순간

내가 만든 노래가 있는데 한번 들어볼래?

태어난 지 겨우 20개월 정도가 된 아들이 생긴 입장에서 가능한 표현이겠지만 노래를 만든다는 것은 잘났든 못났든 나에게는 소중하고 자랑스러운 자식이 하나 생기는 경험 같습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기회가 된다면 한 번이라도 들려주고 싶은 마음이 은근한 자식 자랑을 감추지 못하는 마음과 닮아있거든요.


기타와 함께 흥얼거리면서 만들었던 곡은 아직 나의 머릿속에만 존재할 뿐이고, 남에게 이를 선보이기 위해 직접 연주하며 노래를 불러야만 실존하는 창작물이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이 무형의 창작물을 가시적인 무언가로 바꾸었으면 하는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고 학교 음악시간 외에는 써본 적이 없는 오선지 노트를 사서 자작곡의 가사, 멜로디, 코드를 써보기 시작했습니다.


가사와 멜로디까지는 기존에 정규 교육과정 내 음악수업에서 배운 내용만으로도 작성이 가능했지만 각 마디에 해당하는 코드를 적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습니다. 노래에서 표현하고 싶은 화성의 뉘앙스를 기본 코드만 가지고 적기에는 뭔가 다른 이의 해석에 의해 연주된 곡이 다소 단조롭고 심심하게 느껴졌거든요.


그 뉘앙스를 정확히 표현하고자 하는 욕심과 기타를 다루는 기간이 늘어가면서 처음엔 그냥 C 메이저 코드를 C라고 적던 표기를 점차 C, CM7, C/E, Cadd2, C6, Am7/C 로 구체화할 수 있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이 과정에서 정식으로 화성학을 공부했었더라면 더욱 빨리 이러한 원리를 익힐 수 있었겠지만 그 과정은 Trial & Error를 거듭하면서 시행착오 끝에 멀리 돌아온 느낌입니다.


Handwriting, Noteworthy Composer를 거쳐 Musescore로

처음 악보를 그리던 당시에는 악보 프로그램이 있는 줄도 모르고 마냥 오선지에 한 땀 한 땀 악보를 그렸습니다. 그림에는 워낙 소질이 없어 손수 그린 악보들은 콩나물의 길이와 꼬리의 곡선이 들쭉날쭉해서 볼품이 없었지만 악보로 기록되는 느낌은 뭔가 다른 보람을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부를 때마다 달리 부르던 구절이 있더라도 악보에 기보 됨으로 나의 가사와 멜로디를 확정 짓는 기분은 마치 Software의 공식 릴리즈를 찍는 듯한, 기획서의 Final Draft를 제출하는 기분, 전세계약서의 확정일자를 받는 느낌이었습니다. 


노래를 악보에 기록한다는 것은 나의 노래가 단순히 내 기억 속에만 존재하는 창작물이 아닌 타인에게 공유될 수 있고 불리어질 수 있으며 연주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뭔가 Private 한 영역에서 좀 더 Public 한 영역으로 확장되는 과정이었습니다.

Musescore로 그린 악보 : 플랫폼 간 자유롭게 악보를 작성/편집/열람할 수 있어 최근 가장 애용하는 프로그램입니다.

악보를 그리기 위해서 사용하는 도구는 손 채보에서 NoteWorthyComposer(일명 NWC라고 불리는)를 거쳐 지금은 Musescore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물론 요즘에는 곡을 쓰는 과정(가사 > 멜로디 > 녹음 > 악보)에서 다른 사람과 협업을 하는 경우가 아니면 대체로 악보를 그리는 과정을 생략하는 편이지만 처음 나의 노래를 손글씨 악보로 완성했을 때의 감동은 아직까지도 생생합니다.


교회 주일학교 어린이들이 노래로 참여하는 프로젝트 앨범에 작곡으로 참여하면서 불가피하게 요즘은 잘 안그리던 악보를 그리게 되었습니다. 위의 악보가 그 악보의 일부인데요, 내 노래를 악보로 남겨둔다는 것은 여러모로 다른 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 줍니다.


https://youtu.be/npuPp6oRq0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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