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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페로망 Sep 15. 2022

기숙사에서 발견한 음악이란 취미

집 떠나 어느 촌구석 기숙사 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된 이야기

"ΔΔ야, 니 집에서 학교 다니기 싫제? 집 나와서 고등학교 다녀볼래?"


성적이 나쁘지 않았고, 딱히 큰 사고도 치지 않았지만 품행이 단정하다고는 할 수 없었던 중학교 3학년 즈음, 집을 떠나 뭔가 새로운 삶을 갈망하던 저의 마음을 읽기라도 하셨는지 중 1 때 담임선생님이자 국어를 가르치시던 선생님께서 갑자기 밑도 끝도 없이 저에게 기숙사가 있는 고등학교에 가볼 생각 없냐는 제안을 하셨습니다. 이에 저는 "중대한 결정이니 만큼 심사숙고해본 뒤에 결정하겠습니다..."라고 말하기는커녕 그 자리에서 바로 그 제안을 덥석 받아들였습니다.


"좋아요, 가고 싶어요, 근데 거기가 어디에요?"
"ㄱㅊ고등학교라는 기숙사 생활하는 고등학교야, 너 여기 가면 재밌을 거야. 이거 부모님한테 가져가서 지원서 보내"


도대체 어떤 근거로 제자를 외지로 보내려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집 떠나 하는 고등학교 생활은 뭔가 매일 수학여행하는 기분일 것 같다는 터무니없는 생각에 부모님께 입학원서를 전달드렸습니다.


"엄마, ΘΘΘ선생님이 여기 고등학교 가보는 게 어떻냐는데?"
"학교 이름이 뭔데?"
"... 몰라 들었는데 까먹었어, 원서에 써 있지 않나?"


당시 인터넷이 활성화되어 있지 않던 시절이라 학교에 대한 정보를 찾아볼 수 없었지만 어찌어찌 수소문한 끝에 그 기숙사 학교가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 중앙리에 있는 거창고등학교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가게 될 학교가 남녀공학이라는 점은 매력적이었지만 경상남도까지 가면 지금 중학교 친구들과 이별해야 한다는 사실에 대책 없는 자신의 결정에 급 후회가 밀려왔습니다. 며칠 뒤 고민 끝에 부모님께 이 고등학교를 갈 것인가에 대한 논의를 하고자 물었습니다.


"엄마, 그때 그... (여전히 학교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기숙사 고등학교... 가는 문제 말인데..."
"어, 그거, 원서 써서 보냈어."
"어, 어????"


고민도 안 하고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고등학교를 가겠다는 제 자신도 문제였지만 부모님께서는 한발 더 나아가서 바로 입학지원서를 보내버리셨습니다. 뒤에 알게 된 이야기지만 부모님께서 이 고등학교가 어떤 곳인지 가까운 목사님께 물었더니 그 학교가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대안적인 교육을 하는 좋은 학교라는 추천을 받아 바로 원서를 써서 보내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당시 교회에 대해 비판적이고 열심히 예배를 드리러 가지 않던 제가 거기 가면 인간이 되겠구나 라는 바람이 크셨나 봅니다.) 그렇게 빼도 박도 못하게 원서를 넣은 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되고 한 호실에 11명이 들어가는 막사형 기숙사에서 고등학교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전원 기숙사 생활을 하는 이 고등학교는 시골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국 각지에서 학생들이 다양하게 모였는데, 신입생은 해당 지역을 중심으로 기숙사 호실에 배치되었습니다. 저는 서울에서 온 학생 11명이 모인 12호실에 배정되었는데 같은 호실 친구 중 하나가 일렉기타를 가지고 입소한 것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그 기타가 12호실의 유일한 기타였습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일렉기타라는 것을 만져 본 순간이었습니다. 반면 옆 호실에는 통기타와 클래식 기타 등이 다양하게 있었는데, 이 때문에 참새가 방앗간에 들르듯 기타 구경을 하러, 기회가 되면 깔짝깔짝 기타를 쳐보려고 놀러 가곤 했습니다.


당시 기숙사생들은 개인 PC도 없었고, 일부는 휴대폰이 있었지만 통화 외에는 40자의 문자전송 정도만 가능하던 시절인지라 주말이 되면 운동장에 나가 운동을 하거나 기숙사 캐비닛에 쟁여둘 간식(컵라면, 캔커피, 초코파이)을 사러 읍내에 나가는 것 외에 딱히 할 것이 없는 무료한 환경이었습니다. 특히 저는 운동을 즐겨하는 편도 아니었던지라 주말이 되면 기숙사에 멍하니 처박혀서 옆 호실들을 기웃거리며 기타를 빌려 치는 것이 저에게는 유일한 낙이었습니다.


뜬금없이 고등학교 이야기를 꺼낸 것은 그렇게 군대 막사와 같은 기숙사에서 그 시절을 보내게 된 것이 제게는 어깨너머로 악기를 배우고 음악을 보다 진지하게 생각하고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곳은 기독교학교인 탓인지 교회에서 온갖 악기들을 섭렵한 속칭 교회 오빠들이 많았고 덕분에 드럼 치러 교회 가고, 기타 치러 교회 가는 다분히 목적지향적인 교제가 가능한 환경이었습니다.


그렇게 '심심한데 (기숙사) 호실에서 기타나 칠까?''심심한데 교회에 드럼이나 치러갈까?'의 삶의 패턴은 음악이라는 존재가 저에게 깊이 다가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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