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자주 듣는 말이 있다.
“전문가도 틀리더라.”
“어차피 예측 못 하잖아.”
“유튜브가 더 낫던데요?”
이 말들은 가볍게 던져지지만 사실 꽤 무거운 시대 진단을 품고 있다.
지금 전문가를 불신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전문가가 사라진 게 아니라 전문가라는 직업의 권위가 붕괴한 시대다.
그럼 질문을 다시 해야 한다.
전문가의 시대는 끝난 걸까?
아니면 “전문가”라는 단어를 잘못 쓰고 있는 걸까.
1. 전문가가 틀린 게 아니라 ‘시장’이 바뀌었다
과거의 전문성은 상당 부분 “경험의 축적”이었다.
현장을 오래 겪은 사람이 강했고 축적된 암묵지가 경쟁력이었다.
지금은 어떠한가.
- 변화 속도가 너무 빠르다.
- 산업의 경계가 무너진다.
- 기술이 관점을 바꾼다.
- 데이터가 공개된다.
- 누구나 비슷한 정보를 본다.
예전엔 정보가 희소했기 때문에 “아는 사람”이 이겼다.
지금은 정보가 흔하기 때문에 “해석하는 사람”이 이긴다.
그러니 전문가가 틀리는게 이상한 일이 아니다.
전문가가 정확할 확률이 떨어지는 구조로 판이 바뀐 것이다.
2. ‘전문가’가 아니라 ‘말 잘하는 사람’이 전면에 섰다
불신의 원인을 전문가 탓으로만 돌리면 편하다.
더 불편한 진실이 있다.
지금 “전문가”를 찾는 게 아니라
확신을 주는 사람을 찾는다.
인간은 불확실성을 싫어한다.
복잡한 문제일수록 “명쾌한 결론”을 주는 사람에게 끌린다.
문제는 이 지점이다.
- 명쾌함은 종종 단순화다.
- 단순화는 종종 왜곡이다.
- 왜곡은 종종 신념이 된다.
이 시대의 위험은 전문성이 사라진 게 아니라
전문성의 자리를 확신의 연출이 대체했다는 것이다.
전문가를 불신하면서도
누군가의 “확신”에 중독된다.
3. AI가 전문가를 대체하는가? 아니 ‘중간층’을 먼저 녹인다
AI가 등장하면서 이런 말이 더 강해졌다.
“이제 전문가 필요 없지 않나요?”
이 문장도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AI는 많은 일을 대체할 것이다.
특히
- 요약
- 정리
- 비교
- 패턴 추출
- 문서화
- 초안 작성
즉 “지식 노동의 중간 과정”을 굉장히 빠르게 자동화한다.
그럼 남는 건 무엇인가.
- 어떤 질문을 던질지 결정하는 능력
- 무엇이 중요한지 ‘기준’을 세우는 능력
- 예외와 맥락을 다루는 능력
- 책임지는 결론을 내리는 능력
AI가 대체하지 못하는 것은 태도에 가깝다.
책임이 붙는 판단은 여전히 인간의 영역이다.
그래서 전문가가 사라진다기보다
전문가의 정의가 바뀐다.
4. 앞으로의 전문가는 ‘판단 프레임’을 판다
예전 전문가의 상품은 지식이었다.
“내가 알고 있다”가 힘이었다.
지금은 누구나 검색하고 AI가 요약한다.
지식은 공기처럼 흔해진다.
그래서 앞으로의 전문가는 이렇게 나뉜다.
살아남는 전문가
- 질문을 설계한다
- 맥락을 제시한다
- 불확실성을 정직하게 다룬다
- 확률과 시나리오로 말한다
- 틀릴 가능성을 공개한다
- 업데이트한다
사라지는 전문가(정확히는 ‘권위형 전문가’)
- 단정한다
- 예외를 무시한다
- 반례를 삭제한다
- 틀려도 해명하지 않는다
- “내가 맞다”로 끝낸다
핵심은 한 줄이다.
판단의 구조를 제공하는 사람이 전문가가 된다.
5. 그래서 전문가를 ‘버려야’ 하는가 ‘재정의’ 해야 하는가
여기서 결론을 내리자.
전문가의 시대는 끝나지 않았다.
다만 “전문가를 맹신하던 시대”가 끝났다.
이 변화는 불편하지만 사실 건강하다.
왜냐하면 이제 우리는
“누구 말을 따를까”가 아니라
“내가 어떻게 판단할까”를 고민해야 하기 때문이다.
전문가는 권위자가 아니라 동료가 된다.
내 판단을 대신해주는 사람이 아니라
내 판단을 더 정교하게 만들어주는 사람
마지막으로 질문을 남기고 싶다.
당신이 찾는 전문가는
당신을 똑똑하게 만드는가 의존하게 만드는가.
전문가의 시대는 끝난 게 아니다.
의존의 시대가 끝나야 한다.
다음 화에서는 더 위험한 믿음을 다룰 것이다.
“데이터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정말 그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