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손의 편의가 만든 도시의 무례
지하철 화장실 앞에서 가끔 묘한 장면을 본다.
한 손에는 스마트폰이 들려 있고, 다른 손으로 문을 민다.
볼일을 보는 동안에도 화면은 내려가지 않는다.
나올 때도 화면은 여전히 켜져 있고, 손 씻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이 장면이 불편한 이유는 단순히 위생 때문만은 아니다.
그 장면은 이렇게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나는 지금 이 공간보다, 화면 속 세계가 더 중요하다.”
우리는 보통 위생을 손과 몸의 문제로 생각한다.
요즘 도시에서 더 중요한 것은 다른 종류의 위생이다.
주의력 위생.
위생은 몸만의 문제가 아니다
위생이라는 단어의 본래 의미는 단순히 깨끗함이 아니다.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환경을 관리하는 방식을 뜻한다.
그렇다면 현대 사회에서 가장 오염되기 쉬운 것은 무엇일까.
공기일까.
물일까.
아니면 우리의 주의력일까.
스마트폰은 역사상 가장 강력한 주의력 장치다.
사람의 시선과 생각을 한 지점에 붙잡아 두는 능력은 어떤 기계보다 강하다.
문제는 이 장치가 개인의 집중력만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주변 환경에 대한 감각까지 약화시킨다는 점이다.
그래서 도시에서는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사람은 공공장소에 있지만 공공장소를 인식하지 않는다.
주의력이 사라지면 예절도 사라진다
예절이라는 것은 사실 복잡한 윤리가 아니다.
대부분 아주 단순한 인식에서 시작된다.
“지금 이 공간에는 나 말고도 사람이 있다.”
이 인식이 작동하면 자연스럽게 행동이 따라온다.
- 기침할 때 입을 가린다
- 통로를 막지 않는다
- 목소리를 낮춘다
- 화장실을 깨끗하게 쓴다
- 타인을 불편하게 만들지 않으려 한다
스마트폰에 몰입하는 순간 이 인식이 약해진다.
사람은 공간을 배경처럼 취급하게 된다.
그래서 이런 장면들이 늘어난다.
지하철 출구에서 갑자기 멈춰 서 있는 사람.
에스컬레이터 끝에서 화면을 보며 움직이지 않는 사람.
길 한가운데에서 메시지를 보내는 사람.
공공장소에서 이어폰 없이 영상을 재생하는 사람.
단순한 무례처럼 보이지만 더 근본적인 문제다.
주의력이 개인의 화면으로 완전히 빨려 들어갔다는 증거다.
스마트폰은 환경이 되었다
처음 스마트폰이 등장했을 때 우리는 그것을 도구라고 생각했다.
필요할 때 꺼내 쓰는 기계라고.
지금은 다르다.
스마트폰은 생활 환경이다.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부터 잠들기 직전까지
사람의 시선은 계속 화면으로 돌아간다.
- 이동할 때
- 기다릴 때
- 식사할 때
- 화장실에 있을 때
- 심지어 대화 중에도
이 환경에서 사람의 주의력은 계속 잘게 나뉜다.
주의력이 나뉘면 행동의 질도 떨어진다.
손을 씻는 행위조차 제대로 끝내지 못한다.
공공장소의 상태를 인식하지 못한다.
타인의 존재를 감지하지 못한다.
스마트폰은 손을 더럽히기 전에
주의력을 먼저 더럽힌다.
‘주의력 위생’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위생을 몸의 문제로만 가르쳐 왔다.
손을 씻어라.
양치를 해라.
깨끗하게 살아라.
이제는 새로운 위생이 필요하다.
주의력 위생.
주의력 위생이란 간단하다.
내가 어디에 있고, 무엇을 하고 있으며,
누구와 공간을 공유하고 있는지를
의식적으로 다시 확인하는 습관이다.
예를 들어 이런 것들이다.
- 화장실에서는 스마트폰을 내려놓기
- 길을 걸을 때 화면을 보지 않기
- 공공장소에서는 이어폰을 사용하기
- 대화할 때 화면을 뒤집어 두기
- 손 씻을 때는 화면을 만지지 않기
이것들은 규칙처럼 보이지만 하나의 태도다.
“지금 나는 혼자가 아니다.”
도시의 품격은 ‘주의력’에서 시작된다
많은 사람들은 도시의 품격을 건물이나 인프라에서 찾는다.
깨끗한 거리, 좋은 교통, 화려한 상점들.
실제로 도시의 품격을 결정하는 것은
사람들이 서로를 얼마나 인식하고 있느냐다.
서로를 인식하는 사회에서는
사소한 행동들이 자연스럽게 정돈된다.
- 길을 양보하고
- 소음을 줄이고
- 공공장소를 존중하고
- 기본적인 위생을 지킨다
반대로 서로를 인식하지 않는 사회에서는
규칙이 많아지고 안내문이 늘어난다.
“손 씻으세요.”
“조용히 해주세요.”
“통로를 막지 마세요.”
안내문이 많다는 건
이미 자연스럽지 않다는 뜻이다.
자연스러움을 깨뜨린 가장 강력한 장치가
바로 스마트폰일지도 모른다.
문제는 ‘멈춤의 부재’다
여기서 오해하면 안 된다.
문제는 스마트폰 그 자체가 아니다.
문제는 멈춤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이동 중에 잠깐 멈추는 순간이 있었다.
기다리는 시간, 생각하는 시간, 주변을 보는 시간.
지금은 그 틈이 모두 화면으로 채워졌다.
그래서 사람은 더 이상
“지금 내가 어디에 있는지”를 확인하지 않는다.
멈춤이 없으면
주의력도 돌아오지 않는다.
주의력이 돌아오지 않으면
예절도 돌아오지 않는다.
스마트폰 시대의 위생은 ‘주의력’이다
위생을 손 씻기와 청결의 문제로만 생각해 왔다.
스마트폰 시대에는 먼저 관리해야 할 것이 있다.
주의력.
내 시선이 어디에 있는지,
내 행동이 어떤 공간에서 이루어지는지,
내 주변에 누가 있는지.
이 세 가지를 다시 인식하는 순간
많은 무례와 더러움은 자연스럽게 줄어든다.
도시의 품격은 거대한 정책으로만 만들어지지 않는다.
작은 순간의 주의력에서 시작된다.
어쩌면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주변을 바라보는 능력인지도 모른다.
오늘의 질문
여러분은 하루 중
스마트폰을 보지 않고 주변을 보는 시간이 얼마나 되나요?
공공장소에서
“이건 조금 심하다”라고 느꼈던 스마트폰 행동이 있다면
어떤 장면이었나요?
5화 예고
손을 씻지 않는 사람들의 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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