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아빠를 닮은 아이

♣ 창작동화 ♣

by 겨울나무


금요일 점심 때였습니다.

학교에 갔던 민수가 오늘따라 다른 날보다 일찍 어깨를 축 늘어뜨린 기운 없는 모습으로 대문을 열고 들어섰습니다.

마침 앞마당에서 빨래를 널고 있던 엄마가 놀란 얼굴로 민수에게로 다가서며 물었습니다.

"아니, 너 오늘도 또 조퇴를 하고 왔니? 벌써 학교 공부가 다 끝났을 리는 없을 텐데 말이야.“

”…….”

“너 어디가 아픈 거 아니니?"

”…….”

"그럼, 누구하고 싸운 모양이구나? 그렇지?“

”…….”

그러나 민수는 몇 번이고 물어봐도 대답이 없습니다. 그저 아무 말도 없이 점점 더 일그러진 표정이 된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습니다.

그런 민수를 보자 엄마는 몹시 속이 상한 듯 급히 민수의 이마부터 짚어 봅니다. 그리고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입을 열었습니다.

“그거참, 이마는 열도 없고 멀쩡한 것 같은데 답답해서 못 견디겠네. 너 오늘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니? 엄마한테 어서 말을 줌 해 보렴.”

”…….”

엄마는 답답해서 못견디겠다는 듯, 민수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면서 다그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민수는 대답 대신 고개만 약간 흔들 뿐, 잔뜩 찌푸린 날씨처럼 여전히 우거지상을 하고 있었습니다.

엄마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는 듯 더이상 참지를 못하고 그만 빽 소리를 지르고 말았습니다.

“으이그, 답답해 죽겠네. 무슨 일 때문에 그러는지 엄마한테 어서 말을 해야 알 거 아니니?”

엄마가 그렇게 버럭 소리를 지르는 것도 결코 무리는 아니었습니다. 지금까지 말을 곧잘 하던 민수가 마치 벙어리가 된 듯 입을 다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민수는 워낙 성격이 착해서 지금까지 엄마와 아빠의 속을 썩이는 일이라곤 전혀 없던 아이였습니다. 그리고 공부도 잘하고 마음씨가 착해서 여간해서는 친구들하고 다투거나 싸우는 일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따라 엄마의 물음에도 전혀 대답이 없는 다른 아이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엄마는 도무지 궁금해서 참을 수 없다는 듯 다시 입을 열기 시작하였습니다.


"너 이번 달만 해도 벌써 조퇴를 몇 번이나 했는지 알고 있기나 하니? 벌써 세 번째란 말이야, 세 번째! 아무래도 이대로 가만히 있다가는 안 되겠구나. 엄마가 직접 선생님한테 여쭤봐야 하겠다.“

엄마는 화가 난 표정이 되어 곧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지금까지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이 없던 민수가 큰일이라도 난 듯 펄쩍 뛰면서 소리쳤습니다.

“안 돼! 전화 걸지 마. 그건 안 된단 말이야. 선생님한테는 아프다고 하고 조퇴를 한 거란 말이야!”

더럭 겁에 질린 얼굴로 급히 엄마의 소매를 잡는 민수를 보자 엄마의 눈이 금방 둥그렇게 되고 말았습니다.

“어머머 얘 좀 봐, 뭐야? 선생님한테는 아프다고 하고 조퇴를 했다니 그럼 다른 이유라도 있었단 말이니?”

”…….”

전화를 걸다 말고 엄마가 묻자 민수는 다시 할 말을 잊은 채 조금 전처럼 다시 고개를 푹 숙이더니 다시 입을 다물고 말았습니다. 지금까지 몸이 아프다는 핑계로 번번이 조퇴를 했던 비밀이 그만 들통이 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는 혼자 속으로 중얼거리고 있었습니다.

‘치이, 이게 다 그놈의 음악 시간 때문에 벌어진 일이란 말이야!’

마음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리고 있던 민수는 문득 얼마 전에 창피를 당했던 음악 시간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그날도 오늘처럼 음악 시간이 들어있는 넷째 시간의 일이었습니다.

선생님은 피아노 반주를 하면서 한창 ‘푸른 잔디’라는 동요를 열심히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늘 그랬듯 한 사람씩 독창을 시킬 순서가 되었습니다.


“저요! 저요! 제가 먼저 불러볼래요!”

“저요! 저 좀 시켜 주세요!”

신바람이 난 아이들이 저마다 손을 번씩 들고 소리치고 있었습니다. 그럴 때의 모습은 마치 먹이를 물고 온 엄마 제비한테 먹을 것을 달라고 소리소리 지르는 아기제비들의 아우성 피는 모습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선생님은 손을 든 아이들을 이리저리 둘러보면서 한 명씩 피아노 옆으로 나오게 한 다음 노래를 부르게 하였습니다.

♬ 풀~냄새 피어나는 잔디에 누워~

새~파란 하늘가 흰구름 보면~ ♬

피아노 옆에 서서 열심히 독창을 하고 있는 아이들의 노랫소리는 선생님의 피아노 반주와 한데 어울려 하모니를 이루면서 아름답고도 멋지게 교실 안에 울려 퍼지고 있었습니다.

마치 텔레비전에 나오는 가수들처럼 손을 앞으로 모으고 예쁜 모습으로 박자까지 맞추면서 그렇게 잘 부를 수가 없었습니다.

“우와, 정말 잘 부른다! 어쩌면 저렇게 잘 부르니?”

“당장 방송국에 나가서 불러도 되겠다!”

한 사람씩 노래를 부를 때마다 반 아이들은 모두 손바닥이 아플 정도로 힘차게 박수를 쳐주곤 하였습니다.

민수도 부러운 눈으로 노래를 부르는 아이들의 모습을 열심히 바라보면서 아이들을 따라 손뼉을 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뒤의 일이었습니다. 마침내 뜻밖의 일이 벌어지고야 만 것입니다.

"자, 이제 노래를 부르고 싶은 어린이들은 대부분 다 부른 것 같은데 이번에는 민수의 노래솜씨를 한번 들어 보는 게 어때요?“

선생님은 이렇게 말하고는 아이들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아이들은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민수를 향해 다시 손바닥이 아플 정도로 손뼉을 치며 좋아하고 야단법석을 떨고 있었습니다.

”네, 좋아요. 전 아직까지 민수가 노래하는 걸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거든요.“

”저도 민수의 노래를 꼭 한번 들어보고 싶었어요.“

”그래. 민수야, 어서 나가서 불러보라니까.“

민수는 금세 얼굴색이 홍당무가 된 채, 고개를 푹 숙이고 말았습니다. 갑자기 가슴이 두근거려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민수의 모습을 보자 아이들은 더 재미있다는 듯 어서 나가라고 성화를 부리며 보채고 있었습니다.

민수는 순간, 눈앞이 캄캄해지는 곧 숨이 막힐 것만 같았습니다. 다른 일이라면 몰라도 노래를 부르는 일이 그렇게 자신이 없고 고통스러울 수가 없었습니다.

“자아, 친구들 모두가 그토록 원하는 일이니 한번 나와서 불러보렴!”

이번에는 선생님까지 덩달아 재촉을 하는 바람에 민수는 별 도리없이 마치 죄를 지은 사람처럼 피아노 앞으로 마지못해 나갔습니다. 그리고는 선생님의 반주에 맞추어 마지못해 잔뜩 일그러진 표정으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 풀~냄새 피어나는 잔디에 누워~~ ♬

민수가 첫 소절을 끝내기도 전에 아이들은 우스워 죽겠다는 듯 배꼽을 쥐고 야단들이었습니다.

"호호호……. 쟤가 지금 노래를 하는 거냐, 아니면 술 마시고 타령을 부르는 거냐?”

”으하하핫, 아이고 내 배꼽이야!”

어찌나 심하게 깔깔거리며 웃는지 흘러내리는 눈물을 연신 닦아내고 있는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노래를 부르고 있는 민수의 모습이 그 정도로 우스꽝스러웠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니 그보다는 그건 노래가 아니었습니다. 박자와 음정도 모두 엉망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하하. 아이고오, 내 배꼽이야! 으하하…….”

“하하하, 저렇게 노래를 웃기게 하는 소리는 처음 들어보겠는걸. 정말 저런 음치는 처음 보겠는걸. 그지? 으하하…….”

민수는 그만 부끄럽고 민망스러움에 더이상 노래를 부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노래를 부르다 말고 도망치듯 자리로 뛰어들어오고 말았습니다. 그리고는 너무나 얼굴이 화끈거리고 창피한 마음에 책상에 푹 엎드린 채 얼굴을 파묻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아이들한테 단단히 창피를 당한 뒤부터 민수는 음악 시간이 들어 있는 금요일이 그렇게 두려울 수가 없었습니다.

3학년 때까지만 해도 음악 시간을 그럭저럭 잘 넘긴 민수였습니다. 그런데 이번에야 말로 민수가 세상에 둘도 없는 음치라는 사실이 그만 들통이 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 뒤부터 민수는 음악 시간이 들은 금요일이 넌덜머리가 날 정도로 두렵고 싫었습니다. 또, 음악 시간마다 독창을 잘 시키는 담임 선생님이 더 미워지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런저런 핑계로 금요일 셋째 시간만 끝이 나면 그따마다 조퇴를 했던 민수였던 것입니다.


* * *

민수의 그런 속마음을 전혀 모르는 엄마가 다시 다그치기 시작했습니다.

"아픈 게 아니라면 이렇게 자주 조퇴를 하는 이유가 도대체 뭐냔 말이야?”

엄마가 여전히 화가 난 목소리로 다그치고 있었지만, 민수는 여전히 고개만 숙이고 있을 뿐 좀처럼 대답할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띠리링~~~ 띠리링~~~”

그때 갑자기 전화벨이 울리는 소리에 놀란 엄마가 들고 있던 휴대폰을 급히 귀로 가져갔습니다. 그런데 마침 놀랍게도 선생님한테서 걸려온 걸려온 전화였습니다.

"아이구, 선생님 안녕하셨어요? 그렇지 않아도 지금 무슨 영문인지를 몰라 궁금해서 닦달을 하고 있던 중이었거든요.“

선생님의 전화를 받고 있던 엄마의 얼굴이 활짝 밝아졌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은 한동안 뭐라고 설명을 하고 있는 모양이었습니다.

"호호호……. 아아, 그런 일이 있었군요. 예, 잘 알겠습니다. 그럼 안녕히 계세요."

통화를 끝낸 엄마는 그제야 모든 궁금증이 풀렸는지 민수를 바라보며 방긋 웃는 낯으로 입을 열었습니다.

"에이, 바보 같은 녀석 같으니라구. 남자 녀석이 그까짓 노래 좀 못 부른다고 조퇴를 해? 너는 노래를 잘 부를 줄 모르는 대신 다른 아이들보다 더 잘하는 것들이 많잖니?“

엄마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선생님은 벌써부터 민수의 마음속을 훤히 꿰뚫어보고 있었나 봅니다. 그런데도 모르는 척하고 번번이 조퇴를 해준 것이 틀림없었습니다.

엄마가 다시 민수를 바라보며 달래주기 시작하였습니다.

“민수야, 너 별것도 아닌 일을 가지고 쓸데없는 걱정을 하고 있었더구나. 그러고 보니 아마 우리 민수가 아빠를 많이 닮은 모양이구나. 호호호…….

아빠도 학교에 다니실 때는 너처럼 노래를 못 부르셨거든, 그런데 지금은 노래도 잘 부르고 이주 훌륭한 분이 되지 않으셨니? 그러니 너도 이제부터는 아무 걱정말고 공부나 더 열심히 하렴. 알았지?”

엄마는 이렇게 달래주면서 몹시 귀여워 못배기겠다는 듯 민수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있었습니다.

"엄마, 알았어. 정말 내가 잘못했어. 다신 안 그럴게.“

이렇게 대답하고 있는 민수의 눈에서는 어느새 기쁨의 눈물이 핑 돌고 있었습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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