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일기장

♣ 창작동화 ♣

by 겨울나무


늦은 저녁 시간입니다. 하루의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고 있는 영준이 아빠의 발걸음이 천 근이나 된 듯 무겁기만 합니다.

영준이 이빠와 엄마는 벽지를 붙이는 기술자인 도배장이입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엄마와 아빠는 늘 같이 이 마을 저 마을로 도배 일을 하러 다니곤 하였습니다. 그런데 요즈음은 아빠 혼자 일을 다니고 있습니다. 엄마가 갑자기 심한 몸살로 자리에 누워있기 때문이었습니다.

”후유우~~~ 그놈의 돈이 뭔지 워언…….“

고개를 푹 숙인 채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 놓고 있는 아빠의 입에서는 이따금 땅이 꺼질 듯한 긴 한숨이 흘러나옵니다.

하고 있는 일이 너무 힘이 들어서만은 아닙니다. 요즈음 들어 눈에 띄게 일거리가 부쩍 줄어들어서 집안 살림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런 걱정보다 더 마음이 아프고 힘이 드는 것은 엄마 때문입니다. 엄마가 벌써 여러 날째 심한 몸살로 자리에 누워 앓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지금 형편으로서는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는다는 것은 엄두도 낼 수 없는 일입니다.

고작 병이 심해질 때마다 약국에 가서 겨우 약이나 지어다 먹으면서 그날그날을 힘겹게 버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눈이 온 위에 다시 서리가 내린다더니 게다가 더 큰 걱정거리가 하나 더 있습니다.

지금 월세를 내야 할 날짜가 벌써 열흘이나 지난 것입니다. 그래서 집주인에게 독촉을 받으며 싫은 소리를 들은 것도 벌써 한두 번이 아닙니다.


“여보, 오늘은 좀 어떻소? 주변머리 없는 나 때문에 고생이 너무 많구려. 남편으로서 정말 너무 능력이 없어서 미안하고 면목이 없구려.”

아빠는 집으로 돌아오기가 무섭게 엄마의 손을 꼭 잡고 수심이 가득한 얼굴로 무거운 입을 열었습니다.

"난 괜찮으니까 너무 걱정 마세요. 이렇게 편히 누워서 쉬고 있으니까 곧 일어나게 되겠죠. 그나저나 당신 오늘도 혼자 너무 고생이 많았죠?“

엄마는 오히려 힘없는 목소리로 아빠 걱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애써 웃음을 짓고 있는 엄마의 갈라진 마른 입술은 마치 가뭄에 바짝 말라 버린 논바닥처럼 보기에도 안타깝기 그지없었습니다.

그런 엄마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아빠의 가슴속은 엄마의 입술보다 더 까맣게 타들어가고 있었습니다.

"뭐니뭐니 해도 이게 모두 부족하고 못난 나를 만났기 때문이 아니겠소. 당장은 좀 고통스럽고 힘이 들겠지만 조금만 더 참아 줘요. 우리에겐 그나마 착하고 듬직한 영준이가 있지 않소.“

"이제 그런 소리 좀 그만라라니까요. 난 그래도 당신이 있어서 행복한걸요. 그리고 당신 말마따나 우리 영준이만 한 아이가 세상에 또 어디 있겠어요. 우리에겐 그 어떤 값진 보물보다 더 소중한 아들이 있잖아요."

영준이 이야기가 나오자 엄마는 금세 힘이 솟아날 것처럼 생기가 났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영준이는 정말 보기 드물게 인정이 많고 효성 또한 지극한 아이였습니다.

어린아이답지 않게 늘 저보다는 엄마와 아빠를 먼저 생각하며 챙기곤 하는 기특한 아이였습니다. 그런 영준이의 착하고 고운 마음씨는 엄마가 자리에 눕고 난 뒤부터 더욱 눈에 띄게 행동으로 옮기고 있었습니다.

엄마가 자리에 눕게 되자 여간해서는 밖에 나가 친구들과 같이 어울려 놀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온종일 엄마 곁에 붙어서 잔심부름을 하고, 정성껏 간병을 하느라고 바빴습니다.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비록 어린 나이였지만, 끼니때마다 밥을 짓는 일은 물론 좀 어설프긴 했지만, 반찬까지 손수 만들 줄 아는 기특한 아이였습니다. 그리고 빨래며 웬만한 집안 살림을 모두 혼자 도맡아 하는 갸륵한 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영준인 어딜 갔기에 안 보이는거지?“

아빠는 영준이가 한동안 눈에 보이지 않자 엄마에게 물었습니다.

"글쎄요. 하루종일 집에 있다가 조금 전에 잠깐 나갔다가 온다고 하며 나가더니 생각보다 좀 늦네요."

"아, 그랬군. 그 녀석, 요즈음 당신 때문에 늘 집 안에만 갇혀 지내고 있으니 오죽 답답하겠소.“

그런데 바로 그때였습니다.

"여보세요. 안에 계십니까? 경찰입니다!“

그때 느닷없이 밖에서 경찰이 부르는 소리에 이빠와 엄마의 눈이 휘둥그렇게 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경찰이란 말에 깜짝 놀란 얼굴로 한동안 서로 물끄러미 바라보고만 있었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로 경찰이……?“

아빠가 알 수 없는 일이라는 듯 조금 불안해진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리며 일단 현관 밖으로 나갔습니다.

대문 밖에는 경찰관 두 명이 떡 버티고 서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뜻밖에도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영준이의 모습도 보였습니다.

아빠가 깜짝 놀란 얼굴로 먼저 경찰관에게 드듬거리며 물었습니다.

"아니 도대체 무슨 일로……?“

”이 학생이 댁의 아드님 맞습니까?“

"네, 네, 그렇습니다만……?“

"이 녀석이 글쎄 마트에서 과일을 훔치다가 그만 붙잡히고 말았지 뭡니까.”

"네에? 그럴 리기 없는데 우리 아이가요?“

순간, 아빠는 눈앞이 캄캄해지고 말았습니다. 곧 숨이 막힐 것처럼 답답하기도 하였습니다. 그건 거짓말이었습니다. 절대로 그럴 아이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경찰관의 자세한 설명을 듣고 보니 그게 아니었습니다.

조금 전에 영준이가 집에서 조금 떨어진 어느 마트에서 분명히 과일 몇 개를 몰래 훔훔쳤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주인에게 들켜 파출소로 오게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나마 가게 주인이 용서해 주었기에 다행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날 밤이었습니다.

"영준아, 아빠가 이 세상에서 가장 나쁜 짓이 뭐라고 그랬지?"

"남의 물건을 훔치는 일이요.“

영준이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작은 소리로 겨우 대답하였습니다.

"그래, 맞았다. 그걸 잘 아는 녀석이 그까짓 과일이 그렇게 먹고 싶어서 남의 물건에 함부로 손을 대?“

"……."

영준이는 이빠의 무서운 꾸지람에 그다음에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습니다. 입을 굳게 다문 채 여전히 훌쩍거리고만 있었습니다.

아빠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영준이의 종아리에 매질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얼마나 심하게 맞았는지 영준이의 종아리에서는 어느새 새빨간 피가 맺혀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계속 매질을 멈추지 않고 있는 아빠의 두 눈에서도 어느새 종아리에서 흘러내리는 피보다 더 진한 피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그날 늦은 밤이었습니다.

이빠는 좀처럼 잠을 이를 수가 없었습니다.

영준이가 새삼 가엾고 불쌍하다는 생각에 가슴속이 미어지는 것처럼 고통스럽고 괴로웠습니다. 남들처럼 넉넉지 못한 집안에 태어난 영준이에게 늘 미안하고 죄스러웠던 아빠였습니다.

배가 고파 겨우 그 흔한 과일 몇 개를 훔친 아이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아이에게 다른 집 아이들처럼 호강을 시켜주지는 못할망정 심한 매질까지 하게 된 아빠의 가슴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괴롭기 그지없었습니다.

한동안 이리저리 뒤척거리며 잠을 이루지 못하던 아빠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 자리에서 슬며시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영준이의 방으로 가서 슬며시 방문을 열었습니다.

영준이는 조금 전까지 일기를 쓰다가 깜빡 잠이 든 모양입니다. 책상 위에 엎드린 채 그냥 잠이 들어있었습니다. 영준이의 얼굴은 퉁퉁 부운 채 아직도 눈물 자국으로 얼룩져 있었습니다.

아빠의 시선이 자신도 모르게 책상 위에 펼쳐진 영준이의 일기장으로 쏠렸습니다. 그리고 일기장을 읽어 내려가고 있던 아빠의 두 눈이 갑자기 휘둥그렇게 되어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습니다.

"오늘 난 처음으로 나쁜 일을 하다가 그만 주인아저씨한테 들키고 말았다.그래서 지구대까지 끌려갔다가 왔다. 그래서 몹시 화가 난 아빠한테 매를 맞았다. 너무나 아팠다.

사실 내가 과일을 훔치게 된 것은 내가 먹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며칠 전 엄마가 과일을 먹고 싶다는 말을 하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아마 우리 집이 가난하지만 않았어도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아빠의 말대로 도둑질이 나쁘다는 것은 나도 잘 알고 있다.

앞으로는 아무리 가난해도 절대로 두 번 다시 이런 나쁜 짓은 하지 말아야 하겠다고 다짐하였다."

"아하, 그랬었구나! 난 그런 줄도 모르고 그만…….“

순간 아빠는 영준이를 힘주어 꼭 껴안았습니다. 그리고 어깨를 들먹이며 흐느끼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자 무슨 일인지 그때, 잠이 든 영준이의 얼굴에 갑자기 빙그레 미소가 번져나가고 있었습니다.

아마 영준이는 지금쯤 엄마 아빠와 함께 놀이동산에 가서 단란하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달콤한 꿈을 꾸고 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아빠는 그런 영준이를 더욱 힘껏 꼭 껴안은 채 좀처럼 떨어질 줄을 모릅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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