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란 자신이 낳은 자식은 물론이고 청소년들의 잘못된 언행이나 비행을 목격할 때마다 바른길로 인도해 주는 것이 도리이며 책임임은 두말 할 필요조차 없는 일이라 하겠다.
그러나 요즘은 그런 어른들의 역할이 차츰 불가능한 시대로 변해가는 것 같아 왠지 안타까우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늘 씁쓸하기 짝이 없다.
요즘 젊은 세대는 예전과 달라 특히 윗사람들의 잔소리 듣기를 싫어하는 것이 사실이다. 싫어하는 정도가 아니라 마음에 들지 않으면 오히려 노골적으로 반항을 하기도 한다.
그러기에 아랫사람들을 타이르기도 겁이 난다. 잔소리로 듣거나 금방 꼰대라는 말을 듣는 것은 물론 자칫하면 오히려 봉변을 당하기가 일쑤인 것이다.
진부한 이야기가 되겠지만, 옛날에는 어른들의 큰기침 소리만 한번 들어도 지레 겁을 먹고 무조건 고개를 숙이며 어른들의 말을 순종하며 따르곤 하였다.
그러나 요즘은 그건 어림도 없는 일이다.
같은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이웃에 사는 어린아이들이 아무리 귀여워 보여도 머리를 쓰다듬어 주지도 못한다. 예쁘다는 말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실로 각박하고도 기이한 세상이 되고 만 것이다. 한마디로 눈을 감고 귀도 막은 채 모두 모르는 체하고 살아야만 아무 탈 없이 하루를 무사히 보낼 수 있는 기이한 세상이 되고 만 것이다.
그건 학교에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이미 먼 옛날의 골동품 같은 이야기가 된 지 오래이다.
언젠가는 어느 초등학교 1학년 남학생이 자신의 잘못을 타이르는 담임선생님의 얼굴에 침을 뱉는 사건이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어느 중학교에서는 수업을 담당한 여선생님의 궁둥이부터 보여주고 수업을 하라고 명령을 하는 배은망덕한 학생도 있었다는 것도 이미 뉴스를 통해 누구가 알고 있는 사실이라 하겠다.
그뿐만이 아니다. 심지어 수업시간에 교단에 누운 채 핸드폰으로 선생님의 다리를 촬영하는 동영상이 올라오기도 하였다.
수업시간에 수업을 거부하기 위해 아예 책상에 엎드려 잠을 자는 아이들도 많다고 한다. 정말 기가 막힐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래서야 어떻게 교사들이 수업을 제대로 진행할 수 있으며 교사로서의 자부심과 긍지를 느끼며 교직에 임할 수 있겠는가!
물론 학생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교사의 지시를 잘 따르고 순종하는 학생들이 더 많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작은 실뱀 한 마리가 큰 강물을 온통 흐려놓는다‘는 말이 있다. 그러기에 수업을 거부하거나 방해하는 몇몇 소수의 학생들로 인해 그것을 수습하느라 제대로 된 수업이 이루어질 리가 없음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오죽하면 다시 태어난다면 절대로 다시는 교사의 길을 택하지 않겠다는 한숨 섞인 교사들의 한탄이 나오기도 할까. 그래서 그런지 실로 금년에는 발령받은 지 채 5년도 안 된 교사들의 이직률이 가장 높게 나타나고 있음이 그것을 충분히 입증하고 있다.
아파트 경비원과 중학생
어느 날이었다.
밖에서 갑자기 시끌벅적하며 다투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얼른 듣기에도 지금 밖에서 누군가가 크게 다투고 있는 소리였다. 그 소리는 바로 아파트 아래 놀이터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바로 옆에는 아담하면서도 비교적 작은 놀이터가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 평소에는 아이들이 모여 재잘거리며 떠들고 노는 소리로 조용할 새가 없는 곳이다.
이 놀이터는 부근에 있는 몇몇 어린이집에서 교사들이 인솔해 온 원생들이 단골로 오는 코스였다. 여기저기 어린이집 교사들이 번갈아 가며 여러 명의 원생들을 데리고 와서 미끄럼틀과 시소, 그리고 목마와 그네도 타며 재잘거리며 떠드는 소리로 조용할 날이 없는 곳이기도 하였다.
놀이터 바로 옆에는 제법 크게 자란 느티나무, 그리고 아담한 벤치가 몇 개 놓여 있어서 여름철에는 잠시 더위를 식히기 위해 젊은 엄마들과 아이들의 시원한 쉼터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오늘따라 놀이터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예사롭지 않다. 듣기에도 거북한 상스러운 목소리로 고성을 지르며 누군가가 심하게 다투고 있는 소리였다.
나는 반사적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밖을 내다보게 되었다.
놀이터에서는 지금 초등학교 고학년쯤 된 학생과 중학교 1,2학년쯤 되어 보이는 대여섯 명의 아이들이 모여 있었다. 그리고 그들 중의 한 명과 우리 아파트 경비원과의 싸움이 한창 벌어지고 있었다.
놀이터 바닥에는 자전거 다섯 대가 여기저기 아무렇게나 어지럽게 널부러져 있었다. 보나마나 그 아이들이 타다가 아무렇게나 내동댕이쳐 놓은 것이 틀림없었다.
난 그제야 그 아이들이 누군가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언젠가 잠깐 외출 길에 그들을 우연히 몇 번 본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 아이들은 우리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는 아이들이었다. 그들은 가끔 우리 아파트 주변을 자전거를 타고 떼를 지어 거칠게 돌아다니며 서로 험한 욕설과 거친 행동을 하던 모습을 가끔 보아왔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자전거를 얌전히 타는 것이 아니었다. 도로에서 인도로 위험하게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면서 재주를 부리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어쩌다 넘어지기라도 하면 다른 아이들은 잘됐다는 듯 낄낄거리고 웃어대며 심한 욕을 퍼붓기도 하였다. 그러면 넘어진 녀석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덩달아 웃으면서 욕으로 맞대응을 하곤 하였다.
그렇게 험하게 자전거를 몰고 다니는데 자전거가 부러지거나 고장이 나지 않고 타이어가 멀쩡한 게 이상할 정도였다.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상스러운 욕설과 험한 행동에 마주친 사람들마다 그들에게 주의를 주기는커녕 하나같이 겁난 표정으로 재빨리 피하며 지나치곤 하였다.
지금 놀이터 한가운데에서는 경비원 아저씨와 그 녀석들 중의 한 명이 마주 서서 말다툼을 심하게 하고 있었다. 중학생쯤 된 어린아이와 경비원 아저씨와의 말다툼이 한창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나머지 아이들은 주위에 빙 둘러서서 흥미롭다는 듯 구경만 하고 있었다. 보통 아이들이 아니었다.
중학생쯤 된 그 녀석의 태도는 정말 버릇이 없었다. 보통내기가 아니었다. 누가 보아도 요즘 말로 선을 넘은 것이 분명했다. 한쪽 손은 허리에 뒷짐을 진 채 나머지 한쪽 손으로는 경비원 아저씨를 향해 삿대질까지 하며 금방이라도 경비 아저씨를 칠 듯이 기세등등한 태도로 대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저씨가 뭔데 이래라 저래라 하는 거야, 응?”
“이녀석아 뭐긴 뭐야 경비 아저씨지.”
“경비 아저씨면 다야? 그런데 무슨 권리로 여기서 자전거를 못 타게 이 야단이야? 이 놀이터가 아저씨 놀이터야?”
이쯤 되면 경비 아저씨가 대꾸할 말이 궁해지고 만다.
“야, 이놈 좀 봐라, 여긴 아이들이 놀라고 만들어 놓은 놀이터지 자전거 타는 데가 아니잖아?”
“그럼 여기서 타면 어떻게 되는데?”
“그걸 몰라서 물어? 여기서 이렇게 자전거를 험하게 타다가 다른 아이들이 다치면 어쩌려고 그러냔 말이야?”
“누군 여기서 타고 싶어서 타는 줄 알아?”
“그럼 왜 여기서 타는 건데?”
“그걸 말이라고 해! 자전거를 탈 데가 없으니까 어쩔 수 없이 여기서 타는 거지.”
“그래도 여긴 안 된단 말이야. 그러니까 다른 데 가서 타란 말이야.”
“다른 데 어디? 그럼 아저씨가 자전거를 마음대로 탈 수 있는 장소를 만들어 달란 말이야.”
“나참 기가 막혀 말이 나오지 않네. 그리고 너 왜 말끝마다 반말을 하는 거지?”
“뭐라고? 아저씨는 나한테 반말 안 했어? 아저씨가 반말을 하니까 나도 하는 거지.”
“야 인마, 난 어른이잖아.”
“뭐어? 어른? 어른 좋아하고 있네, 어른이면 어른 값을 해야 할 거 아니야?”
“하아 참 기가 막혀서……. 아무래도 너희들 안 되겠다. 경찰을 불러야 하겠다.”
“그래 부르고 싶으면 당장 불러 봐. 누가 겁낼 줄 알아? 씨○!”
그 녀석은 한 치의 양보도 없이 경비원 아저씨에게 바락바락 대들고 있었다. 보통내기가 아니었다. 한 손은 여전히 뒷짐을 진 채 금방이라고 경비원 아저씨를 칠 것처럼…….
경비원 아저씨는 더 이상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사면초가에 몰린 채 곤욕을 치르고 있었다. 차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하릴없이 어린아이에게 당하고 있는 안타까운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난 곧 아파트 놀이터로 달려나가서 싸움을 말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그러나 생각과는 달리 몸이 얼른 말을 듣지 않았다. 순간 겁이 났기 때문이었다. 섣불리 나섰다가는 보나 마나 그들에게 큰 봉변을 당할 것이 불을 보듯 뻔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을 이해시킬만한 자신도 없었지만, 그들을 감당해 낼 자신도 용기도 없는 부끄럽고 비겁한 나 자신이 되고 말았다.
그날 경비원과 중학생과의 다툼이 어떻게 끝이 났는지는 자세히 모르겠다. 그러나 두고두고 그때의 일을 생각할 때마다 부끄럽다는 생각에 마음 한구석이 늘 씁쓸함을 금할 수 없다. 나 자신도 모르게 어느새 나잇값도 못하는 용기없는 사람, 그리고 어른이기를 포기한 무책임한 방관자가 되고 만 것이 분명하였다.
그런 걸 보면 나이를 먹었다고 모두가 어른이라고 볼 수는 없는 것이다. 나잇값을 제대로 해야만 어른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앞으로 진정한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국가에서 정한 어느 정도의 과정을 이수한 뒤에 어른 자격증을 부여해 주는 그런 사회가 이루어져야만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용감한 노인을 목격하게 되었다
어느 날 우연히 유튜브를 보다가 깜짝 놀랄만한 장면을 보게 되었다.
달리는 지하철 안에서 벌어진 장면이었다.
지금 전동차 안에는 정장을 곱게 차려 입은 20대초쯤 된 젊은 아가씨가 앉아있었고, 바로 그 옆에는 80대쯤 된 노인이 앉아있었다.
그런데 노인이 갑자기 옆에 앉아있는 아가씨의 종아리를 둘둘 말은 신문지로 힘껏 후려갈기며 소리치고 있었다.
“어디서 버르장머리 없이 어른 앞에서 다리를 꼬고 있어! 당장 다리 풀어놓지 못해!”
그런데 이상했다. 아마 다른 여자들 같으면 펄쩍 뛰면서 노인을 향해 무섭게 대들며 욕설을 퍼부었을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는 바로 그 자리를 피해 다른 곳으로 이동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아가씨는 달랐다. 노인을 향해 별 반항이나 대꾸도 없이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휴대폰만 보고 있었다.
정장에 스커트 차림인 아가씨의 종아리가 그대로 노출되어 있었다. 그런데 노인이 힘껏 때리고 있었지만, 아가씨는 노인에게 대들지도 않았으며 별 반응을 보이지 않고 꼬고 있던 다리를 슬그머니 풀었다.
조금 뒤 아가씨가 다시 슬그머니 다리를 꼬게 되었다. 일부러 의도적으로 그랬는지 자신도 모르게 습관적인 행동이었는지는 모를 일이다. 그러자 노인은 다시 신문지로 아가씨의 종아리를 향해 두어 번 힘껏 후려치며 소리쳤다.
“아니 그래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또 다리를 꼬고 있어!”
그러자 아가씨는 이번에도 못 이기는 척하고 꼬고 있던 다리를 풀었다. 그러면서 잘 들리지는 않았지만, 아가씨가 노인을 경찰에 신고를 하고 법적으로 벌을 받도록 하겠다고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때 그 광경을 옆에서 보다 못한 젊은이 하나가 아가씨가 안 돼 보였는지 노인을 향해 한마디 했다.
“너무 그렇게 때리지 마세요. 아프잖아요.”
그러자 노인이 젊은이를 향해 버럭 화를 내며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이까짓 신문지로 때렸는데 아프긴 뭐가 아프다고 그래? 내가 손으로 때리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인 줄 알아. 왜 손으로 때리지 않고 신문지로 때렸는지 알기나 해? 이런 아이를 맨손으로 때리면 내 손이 더러워질까 봐 신문지로 때린 거야, 알기나 해?”
일이 이렇게 되자 어느 틈에 누가 신고를 했는지 역무원이 급히 달려왔다. 그리고 노인을 향해 어디서 내리는지를 물었다. 그러자 노인이 대답했다.
“난 다음 정거장에 내릴 거야. 하지만 난 내리지 않을 거야. 저 애가 나를 신고해서 법적으로 해결한다고 하니까 어디서 내리는지 끝까지 따라가서 어떻게 법적으로 해결하겠다는 것인지 끝까지 따라가 볼 거야!”
유튜브에 나온 이야기는 거기까지였다. 그리고 그다음 일은 어떻게 끝이 났는지 모를 일이었다.
난 그 장면을 보고 느낀 바가 많았다. 요즘 조금만 뭐라고 해도 젊은이들한테 ‘꼰대’라는 말을 듣는 세상에 저토록 용감한 노인이 있었다니!
나이만 먹었다고 저절로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다. 분명히 잘못된 일인 줄을 알면서도 모두가 못본 체하며 눈 감고 살아가는 세상이 된 지 오래이다. 그런 요즘 세상에 그 노인이야말로 나잇값을 제대로 하는 용감하면서도 진정한 어른이 아닐까!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