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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eelboso Apr 08. 2021

[플랜트 배관재 톺아보기] 프롤로그

배관재의 시작

[플랜트 산업 쉽게 접근하기] 시리즈를 마치고 약 2주 동안, 어떤 글을 작성해야 읽으시는 분들한테 도움이 될지, 제가 쓴 글을 읽고 무엇을 느끼고 얻어 가셔야, 글을 읽는 약 4분~5분의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으실지 많이 생각했습니다. ‘읽기 쉽고 편한 글로 플랜트 산업을 소개’하겠다는 처음 마음가짐을 글의 주제가 바뀌더라도 이어가고 싶었기 때문에 주제를 찾는 시간이 더 길어졌던 것 같습니다. 


고민 끝에 찾은 주제는 “배관재”입니다. 플랜트를 살아있는 생명체에 비유하면, 배관재는 혈관, 줄기와 같은 역할을 하는 플랜트를 건설하기 위해 가장 기본이 되는 중요한 재료입니다. Oil&Gas, 발전플랜트, 산업플랜트를 가리지 않고, 플랜트 산업의 모든 공종에 쓰이고, 플랜트 시공이나 운영 시 겪게 되는 문제의 상당한 부분이 배관재에 의해 발생합니다. 예를 들면, 제가 근무했던 해양플랜트 엔지니어링 회사에서 진행했던 프로젝트들의 펀치리스트(Punchlist, 시공 후 최종 점검 시에 아직 해결되지 않은 사항들을 발견하여 작성한 문서)를 보면, 평균적으로 약 60~70%가 배관재 관련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배관재를,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질 수 있는, 혹은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는 내용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주제를 플랜트 산업에 쓰이는 배관재로 정한 뒤에도 고민이 많았습니다. 배관재와 관련된 개별 소재마다 어느 정도 깊이로 내용을 조사해서 전달드려야 할지, 혹시, 다른 곳에 잘 정리되어 있는 소재를 재탕하는 것은 아닌지.. 특히, 어떤 분들을 대상으로 글을 써야 할지 쉽게 판단이 서지 않았습니다. 주위 많은 분들의 조언을 얻은 끝에 얻은 결론은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글은 아무리 뛰어난 명문이어도 나에게는 의미가 없다.” (명문을 작성할 능력도 없지만 말입니다..)였습니다. 그래서, 배경 지식이나 경험이 없는, 플랜트 자재를 처음 접하는 분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배관재 소개 글을 써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앞으로 소개해 드릴 배관재는 크게, 파이프(Pipe), 피팅(Fitting), 플랜지(Flange)로 구분할 수 있고, 매주 작성할 내용들도 이 세 가지를 벗어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단순한 배관재인데, 할 얘기가 그렇게 많나?” 싶으시겠지만, 파고들수록 끝이 없었습니다. 배관재에 대해 잘 몰랐을 때 공부했던 참고자료부터, 숫자를 세기 어려울 만큼 다양한 배관재의 재질에 대한 소개, 표준으로 사용되는 ASME, ASTM, 각 오일 메이저(oil major)들의 재질 관련 스펙, 배관재의 글로벌 제조업체/유통업체… 끊임없이 이어질 수 있는 이야기들로 가득합니다.


다만, 플랜트 산업의 대중적인(?) 이야기를 열심히 전달해도 큰 관심을 받지 못한 제 브런치가, 관심에서 더 멀어지지는 않을까.. 아무도 읽지 않는 글을 쓰게 되지는 않을까… 뭐 이런 불안, 우려, 걱정들이 있기는 합니다;;


그럼에도, 제 글을 읽어 주시는 분들이 (단 한 분이라도) 쉽게 얻어 가실 수 있도록, 제가 가진 역량을 다해서 시리즈를 이어가 보겠습니다.



저는 무엇을 공부하든 그것의 역사나 기원부터 찾아보는 편입니다. 뿌리를 알아야 현재를 더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플랜트 배관재 톺아보기]의 첫 이야기는 간략하게 살펴보는 배관재의 역사입니다.


문명과 함께 시작한 배관시스템


역사학자들은 일반적으로 위에 말씀드린 파이프, 피팅, 플랜지 및 밸브 등으로 이루어진 배관 시스템이 문명이 발생된 시점부터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측하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농업의 발전과 함께 시작한 인류의 4대 문명인 메소포타미아 문명, 이집트 문명, 인더스 문명, 황하 문명 모두 강을 끼고 발전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문명의 젖줄인 물을 관리하는 관개 사업은 문명을 이룬 국가의 중요한 국책 사업이었습니다. 농업용수 및 식수로 사용할 물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강에서 물을 대량으로 끌어올 수 있는 관개사업 중 배관시스템 건설이 가장 큰 부분이었을 겁니다. 


배관시스템을 구축한 4대 문명의 모습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메소포타미아 문명 - 인류 최초의 배관 시스템 사용


배관 시스템의 시작은 기원전 4000년,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발원지인 수메르(Sumer)에서 점토로 만들어진 하수관이었습니다. 점토 하수관은 폐수를 제거하고 우물에서 빗물을 모으는 데 사용되었는데, 고대 수메르 도시인 니푸르(Nippur, 현재 이라크 바그다드 남동부)의 Bel 사원과 에쉬눈나(Eshnunna, 현재 텔 아스마르, Tell al-Asmar, 이라크 바그다드 북동쪽)에 점토 하수관의 흔적이 남아있습니다. 

수메르 문명이 사용한 점토 하수관


또 다른 고대 수메르 도시인 우루크(Uruk, 현재 이라크 남동부 유프라테스 강 근처)의 시민들은 기원전 3200 년경에 도시의 꼭대기에 벽돌로 화장실을 지었는데, 불로 구운 점토 하수관을 연결해서 하수를 처리했습니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 사용된 점토 파이프는 청동기 시대 히타이트(Hittite) 제국의 수도였던 하투사(Hattusa)에서 보다 개량된 형태로 사용되었는데, 점토로 이루어진 배관 시스템을 쉽게 분리하고 교체할 수 있었기 때문에 청소가 가능했다고 합니다.


이집트 문명과 인더스 문명의 배관시스템


흙을 이용한 배관 시스템은 기원전 2700년경 인더스(Indus) 문명에서도 발견되었습니다. 수원지에서 도시로 물을 끌어 오기 위해 점토 배관을 사용했는데 누수 방지를 위해 아스팔트를 이용했고, 심지어 표준화된 규격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최초로 금속으로 만든 파이프를 사용한 곳은 기원전 2400 년경의 이집트입니다. 아부시르(Abusir) 지역에 모여있는 신전과 피라미드는 구리로 만들어진 배수관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로마 문명의 배관 시스템


고대 문명 중 배관 시스템을 이용한 것으로 가장 유명한 역사는 로마 문명입니다. 로마 시대 초기에 배관 공사가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졌는데, 납으로 만든 배관 시스템의 길이가 400km를 넘었을 만큼 광범위한 수로 시스템을 갖추고, 상수도 및 직물을 염색한 뒤의 염료 폐수를 비롯한 각종 오수/폐수도 상하수도를 통해 처리했습니다. 


고대 로마의 발전된 배관 시스템은; 

상수도와 하수도의 물 흐름을 조절하기 위해 꼭지가 있는 밸브를 사용했습니다.

수도관에 제조업체, 소유자 등의 정보를 비문으로 새겨서,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납으로 만든 배관의 도난을 방지했습니다.

로마 수도론을 저술한 줄리어스 프론티누스(Sextus Julius Frontinus, 공화정 시대의 최고 관직인 집정관 3회, 현재의 영국인 브리타니아의 총독을 역임한 정치가)는 수도 감독관을 역임했을 때, 파이프의 표준 치수와 재질을 규정했습니다. 


줄리어스 프론티누스가 규정한 파이프의 표준 


역사학자들이 물의 공급망과 하수도를 비롯한 위생 시설이 서로마의 제국의 붕괴 (서기 476년) 이후 1000년 이상 정체되거나 퇴보했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 로마 시대에 구축된 배관 시스템이 얼마나 훌륭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현재 배관의 어원이 된 로마문명의 배관 시스템


배관 시스템이 로마 시대에 엄청난 발전을 이루고 그 이후에 퇴보했기 때문일까요? 배관을 뜻하는 영어 plumbing, 배관공을 뜻하는 plumber 모두 납을 뜻하는 라틴어인 plumbum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납의 원소 기호 Pb의 유래도 Plumbum입니다)

납으로 만든 로마시대 파이프

로마 시대에 납은 상하수도뿐만 아니라, 지붕을 덮는 타일을 제작하는 데도 사용되었고, 심지어는 대중목욕탕 욕조의 주원료도 납이었다고 합니다. 납이 선호되었던 이유는 납의 가단성(외부의 힘에 의해 외형이 변하는 성질)에 의해 원하는 모양으로 제작하기 수월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배관시스템과 납 중독


로마시대 이후로 (20세기 초반까지) 사람들이 납 수도관으로 식수를 공급받는 등 일상생활 중에 납에 쉽게 노출되면서 납중독에 의한 심각한 문제에 노출되었습니다. 과거의 높은 유아 사망률과 사산 비율 모두 납중독과 연관되어 있고 (납중독 문제는 20세기 들어서 밝혀졌습니다) 그 외에도 정신이상, 경련, 발작 등 다양한 건강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당연히, 로마 시대에도 납중독이 널리 퍼졌다는 증거가 많이 있습니다. 학자들이 밝혀낸 특이한 사실은 로마인들을 납에 중독된 것은 납으로 만든 조리기구나 음료의 첨가물(와인의 방부제로 납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때문이지, 납 파이프 때문은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납 파이프가 중독을 일으키는 다른 지역과 달리 로마 지역의 물에는 칼슘이 너무 많아서 납 배관의 안쪽으로 스케일이 쌓였고, 스케일 층이 물이 납 파이프에 닿는 것을 방지했다고 합니다. 


중세 이후 근대까지의 배관 시스템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로마제국의 붕괴 이후 중세시대 전반에 걸쳐서, 배관 시스템과 배관재는 특별히 언급할 만한 진보가 없었습니다. 사치의 끝판왕인 루이 14세가 베르사유 궁전의 분수를 가동하기 위해 파리시에서 사용하는 물의 양보다 많은 양을 세느 강에서 퍼올렸던, 프랑스 이블린(Yvelines)의 초대형 수차 “말리의 기계”(Machine de Marly)와 연결된 수도관 정도가 중세에 알려진 배관 시스템입니다. 


고작 분수를 위해 설치했던 거대한 기계 Machine de Marly


1800년대 후반부터 미국에서 아연으로 도금된 철 배관이 음용수의 배관으로 사용되고, 1960년대 이후 나삿니가 있는 압축 이음매(compression fitting)의 한 종류인 플레어 피팅(flare fitting)을 사용하는 구리 배관이 주로 쓰였습니다. 



플랜트에서 사용되는 배관재는 오래전부터 상하수도에 사용되던 배관재보다 훨씬 엄격한 조건이 적용되고, 유체에 따라 수많은 다양한 재질이 적용됩니다. 플랜트의 생산 공정을 흐르는 유체의 특성에 따라 배관재의 특성이 정해지지만, 작업자의 안전이나 환경문제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다음 주부터는 플랜트에 사용되는 배관재와 연관된 다양한 소재들을 정리해서 전달드리겠습니다.


좋은 한 주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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