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커뮤니티에 올라온 이야기를 여기다 잠시 빌리겠다. 혹시나 작성자의 눈물까지 담아왔다면 여기서 미안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그 여인은 '무조건 걸러야 하는 남자'를 주제로 이야기를 풀고 있었다.
"어떤 남자를 걸러야 하는지 알아? 일단, 만나는 장소가 중요해. 이건 정말 중요하니까 명심해두고 남자 만나라구. 일단 난 자만추를 선호해. 인만추는 별로. 그래서 클럽 무조건 사절. 헌팅포차 사절. 감성포차 사절. 데이트 앱 사절. 랜덤채팅도 사절. 그런 건 좋지 않더라. 그런 데서 남자 만나면 열에 아홉은 안 좋은 남자더라고. 뭐, 일반화는 아니지만, 개인적인 경험담은 그렇다는 것이지."
남자인 나도 그녀의 말이 가볍게 들리지 않았다. 아무렴. 연애를 많이 해본 여인의 경험담이라는데 어찌 소홀히 대할 수 있겠는가. 물론 굳이 그렇게 경험담을 바탕으로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고 난 본다. 잠깐. 상상의 나라에 발을 디뎌보면 되니까.
#1 클럽에서 춤을 추며 여자를 만나고 있는 남자
여기는 클럽. 광열이 몰아친다. 분위기도 분위기지만, 여기 모인 이들의 마음속에서 막 쏟아지는 이 정열적인 마음들. 한 남자의 마음을 들여다보자. 우리는 상상의 나라에 들어왔고, 사람들의 마음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으니, 마음 편히 읽어보자. 그 남자의 마음은. 흠. 지금 어떻게 하면 저기 50m 앞에 있는 저 여자를 가까이할지 고민하고 있다. 어떻게든 옆 테이블로 데려와 그 여자와 합석해 '돈독'한 친분을 쌓으려고 한다.
아, 한 남자가 보인다. 그는 일명 죽돌이라는데. 심심할 때면 클럽에 온단다. 심심할 때마다 찾아와서 물이 좋은지 본다고. 어라, 이 남자 한 여자에 꽂혔다. 그녀의 마음 지금 댄져. 위험상태다. 그녀 자신은 모르지만, 그녀 본인의 마음속에선 위기 본능이 활성화되고 있다. 마음속에서 그녀에게 얼른 도망가라고 아우성이지만, 그녀. 듣지 못한다. 그 남자는 능숙한 솜씨로 그녀의 마음을 휘어잡고 마는데. 아. 그에게는 여자친구가 있다. 한참 전화 소리가 시끄럽게 울려댔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새로운 여자에게 다가갔던 것.
여기. 또 다른 남자가 있다. 물론 여자도 있다. 그 둘은 오늘 처음 만났다는데. 스킨십이 예사롭지 않다. 매우 익숙해 보이는데. 어디서 그런 스킨십을 배웠는지. 참 눈물겨운 일이다. 그러한 스킨십의 기술을 배우기까지 얼마나 많은 이성과 접촉했겠는가. 아. 아무튼, 여기 클럽의 분위기를 잠깐 보자. 지금 스킨십이 난무한다. 남녀칠세부동석. 예기의 이 말이 무색하게도 지금 모던보이와 모던걸이 머리를 뱅뱅 돌리며 춤을 추고 있다. 문제는 클럽이라는 공간은 남녀에게 이러한 스킨십을 자연스레 동반하게 만든다는 것인데. 여기서는 이게 '정상'이니 말이다.
아, 빼먹을 뻔했다. 어떤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물론, 여기 쓰인 모든 이야기는 상상으로 짐작해 본 클럽이지만. 아무튼, 상상 속에서 만난 그녀는 놀라운 말을 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그를 만난 건 A 클럽 한 테이블이었다. 그는 능숙하게 다가와 그녀의 마음을 휘어잡았고, 그녀는 다른 남자에게 했던 것처럼 능숙하게 거절했다고. 문제는. 그러다 잠이 들었다는 것. 이하, 생략.
#2 랜덤채팅에서 만난 그
이번에도 상상의 나라를 펼쳐보자. 상상의 나라에서는 본인 마음대로 상상할 수 있으니. 우리 다 같이 상상의 나라에 발을 디뎌보자.
여기는 랜덤채팅 속이다.
그녀는 어떻게 남자를 만나야 할지 고민이었다고 한다. 남자와 접점이 없어서 힘들었다고. 이렇게 솔로로 올해를 마무리할까 봐 '힘들'었다는 말이 공감되는 건 왜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녀는 그러다 랜덤채팅에 가입하게 됐다고 한다. 많이들 이런 채팅앱에 가입해서 남자친구나 여자친구를 만나기에 그녀도 그리 위험한 환경은 아니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그렇게 그녀는 고르고 골라 괜찮은 남자를 찾았다. 10명 중에서 1명이 좋은 남자라는데, 1명을 어렵사리 찾은 것이다. 그 1명을 만나기까지 그녀가 겪은 시련을 한 번 '읽어' 보자.
그녀가 처음 연락을 주고받은 남자는 아무리 봐도 그녀를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고 했다. '읽씹'의 자연스러움과 '안읽씹'의 빈번함은 그녀로 하여금 매우 불쾌하게 만들었다고. 본인을 사람으로 생각한다면 이렇게 읽씹과 안읽씹을 했을 때 기분이 나쁘다는 것을 알 텐데, 상대는 아무렇지 않게 연락을 끊곤 해서 그녀는 그와 '절'연하게 됐다고 했다.
또 다른 남자. 그는 그녀와 대화가 잘 맞았다고 한다. 대화가 물 흐르듯이 자연스레 흘러갔다고. 그러다 보니 그녀도 어느새 마음을 열게 됐다고 그녀는 말했다. 친해지고 재미있으니 그를 만나보고 싶었고, 만났고, 그렇게 연인이 됐다고. 그렇게 연인이 생겨서 기뻤지만, 이내 그 기쁨은 눈물에 갈취당했다고 한다. 그는 그녀를 만난 뒤로도 랜덤채팅 앱을 지우지 않았고, 어느새 또 다른 여자를 만났다고 한다. 그녀는 그가 이 앱을 또 사용할까 걱정하고 있었는데, 역시 여자의 촉은 틀리지 않는다는 것을 그때 다시금 깨달았다고 한다.
그녀는 앞에서 밝힌 두 남자 외에도 7명의 남자를 '랜덤채팅'을 통해 만났지만, 여기다 다 적을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녀가 억장이 무너졌던 순간들을 담담하게 기록하기란 쉽지 않으니.
나는 이들의 이야기를 '상상'하다가 <논어>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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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께서는 자리가 바르지 않으면 앉지 않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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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는 자리가 바르지 않으면 앉지 않았다고 한다. 이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다. 그러던 중에 클럽과 랜덤채팅이라는 공간에서 있었던 아픔들을 보고 깨닫게 됐다. '자리'가 중요하다고. '공간'이 중요하다고. 어디에서 누구를 만나는지가 매우 중요하다고. 그 환경의 분위기가 실상 연애의 가치를 결정할 수도 있다고. 쓰레기만 찾는다고 하지만, 정작, 보석이 있는 곳에 안 가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고. 그러니, 좋은 사람을 만나려면 좋은 공간에 가도록 먼저 노력해야 한다고.
물론 클럽, 랜덤채팅 같은 공간에서 만나 연애를 잘하는 사람도 있다. 결혼까지 가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클럽과 랜덤채팅으로 상처받고 고통스러워하고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모두가 그렇지는 않지만, 적어도 누군가는 그렇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자리가 바르지 않으면 앉지 않았다'는 공자의 행동이 본받아야 할 만한 것이 아닌지, 나는 주장해본다.
예전에는 나도 나이가 들기 전에 한 번이라도 클럽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춤을 막 추는 이들로 가득한 그곳을. 스킨십이 오간다는 그 분위기가 내심 궁금하긴 했다. 아, 이리 보면 청춘이라는 시기는 참 사악한 듯 하다. 청춘이라는 이 두 글자 때문에 클럽이라는 곳도 '경험'삼아 가볼 만한 곳으로 합리화할 수 있기 떄문이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곧잘 말한다. 젊을 때는 여러 여자 만나보라고. 처음 보는 이와 짜릿한 유희도 느껴보라고. 가벼운 사랑도 해보라고. 젊을 때 아니면 언제 이렇게 놀겠냐면서.
다행히 공자의 말은 나의 불건전해지려는 마음에 쐐기를 박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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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마을의 풍속이 인하다는 것은 아름다운 것이다. 인한 마을을 잘 골라서 거처하지 않는다면 어찌 지혜롭다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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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마을에 갈지는 본인 몫이다. 하지만 '끼리끼리'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님을. 어디서 만나는지에 따라 대화하는 주제나 생각하는 방향이 다르다는 게 괜히 있는 말은 아님을. 우리는 충분히 알고 있다.
환경은 참으로 무서워서 한 사람의 영혼을 한 순간에 더럽힐 수도 있다. 젊을 때는 클럽에 한 번 가보는 것. 그게 뭐 얼마나 나 자신의 영혼을 더럽힐 수 있을까 싶지만, 우리는 한 번이 두 번이 되고 그것이 습관이 되고 하루가 되고 인생이 되는 것을 이따금 목도하게 되지 않던가. 좋은 대학에 들어간다는 것은, 단순히 취업을 잘하기 위함이 아니라, 좋은 환경에서 좋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게 한 인간의 생애에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인'한 마을을 잘 골라서 거처해야 한다. 사랑꾼이 많은 마을을 찾아서 거처해야 하고, 사람으로서 사랑받을 수 있는 마을을 찾아서 거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