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단편선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대엽 Jan 20. 2023

녹물

겨울 단상

<녹물>



우리 외벽에 말라붙은 녹 자국이네


턱뼈 가지가 지끈한 건


얼었다 녹은 텃새의 피 냄새 덕이고



짹짹



거봐 무척 아침이 가까워서


손 닿지 않는 날개뼈 사이에 기억할 것들 숨기고


조금 남은 그늘에 청록의 수로를 터야 해



근데 이제는 떠나야 해요 이젠


베갯속에 고개를 파묻으려는 찰나 네가 말했어


자기는 무엇하나 기억나지 않는 곳으로 간단다



그래그래 잘 가 몸조심하고


근데 목소리 내지 못하는 거 보면 꿈이지


웃어 버리고 못 들은 거로 할까



죽었다고 생각하라니 꽤 먼 곳이겠다


제주도 어쩌면 타히티일까


너 고갱을 좋아한다고 했던가



남국의 섬들이 나오는 다큐멘터리를 봤는데 말이야


그중에 엄청 예쁜 섬이 있었어


전쟁 때 쓰던 참호가 있대



아주 조용한 곳인데


바닷물이 어찌나 맑던지


같이 봤으면 좋았을 텐데



짹짹



그러거나 말거나 새들이 지저귄다


꼬리뼈가 시큰대고 이내 격통이 찾는다


불쌍한 척하려는 게 아니라 아침이 왔다는 거야



나는 아침에 맡는 알코올 냄새가 싫어


머리가 빙글빙글 돈단 말이지


그러니까 아마 아무것도 기억 못 할 거야



배웅 나갈 순 없어


그보다 최악은 없을 거라고


진짜 엉망일 거야



왼발에 들숨 오른발에 날숨


폐 한가득 녹이 슬 테고


시퍼런 이끼도 낄 거야



있지 그 섬에 도착하면 편지를 써 줘


제주도로 홀로 떠났을 때처럼


언젠가 빌어먹을 서울을 떠나자는 말을 할 때처럼



매거진의 이전글 안아 달라는 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