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단상
<녹물>
우리 외벽에 말라붙은 녹 자국이네
턱뼈 가지가 지끈한 건
얼었다 녹은 텃새의 피 냄새 덕이고
짹짹
거봐 무척 아침이 가까워서
손 닿지 않는 날개뼈 사이에 기억할 것들 숨기고
조금 남은 그늘에 청록의 수로를 터야 해
근데 이제는 떠나야 해요 이젠
베갯속에 고개를 파묻으려는 찰나 네가 말했어
자기는 무엇하나 기억나지 않는 곳으로 간단다
그래그래 잘 가 몸조심하고
근데 목소리 내지 못하는 거 보면 꿈이지
웃어 버리고 못 들은 거로 할까
죽었다고 생각하라니 꽤 먼 곳이겠다
제주도 어쩌면 타히티일까
너 고갱을 좋아한다고 했던가
남국의 섬들이 나오는 다큐멘터리를 봤는데 말이야
그중에 엄청 예쁜 섬이 있었어
전쟁 때 쓰던 참호가 있대
아주 조용한 곳인데
바닷물이 어찌나 맑던지
같이 봤으면 좋았을 텐데
짹짹
그러거나 말거나 새들이 지저귄다
꼬리뼈가 시큰대고 이내 격통이 찾는다
불쌍한 척하려는 게 아니라 아침이 왔다는 거야
나는 아침에 맡는 알코올 냄새가 싫어
머리가 빙글빙글 돈단 말이지
그러니까 아마 아무것도 기억 못 할 거야
배웅 나갈 순 없어
그보다 최악은 없을 거라고
진짜 엉망일 거야
왼발에 들숨 오른발에 날숨
폐 한가득 녹이 슬 테고
시퍼런 이끼도 낄 거야
있지 그 섬에 도착하면 편지를 써 줘
제주도로 홀로 떠났을 때처럼
언젠가 빌어먹을 서울을 떠나자는 말을 할 때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