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벤처캐피탈 시장은 어떻게 ‘형성’되었는가 (상)

왜 한국에서는 민간 VC가 자연 발생하지 못했는가

by 다결



우연이 아닌 설계, 한국형 VC의 출발점

서울이 창업하기 좋은 도시 세계 8위라는 사실, 알고 있는가?
한국은 창업하기 좋은 나라 세계 12위에 올라 있다.

이 성과는 우연이 아니다. 대한민국은 정부가 벤처캐피탈 시장을 처음부터 끝까지 ‘설계’했기 때문일 수 있다.

한국은 자금이 모이고, 투자되고, 회수되는 전 과정을 하나의 구조로 만들고 이를 30년 넘게 유지해왔다.

한국의 벤처캐피탈 시장은 미국처럼 민간에서 자생적으로 발전한 구조가 아니다.

국가가 산업정책의 일환으로 시장의 틀을 먼저 만들고, 민간 자본이 감당하기 어려웠던 초기 위험을 정부가 선제적으로 떠안았다. 그 위에 민간이 참여할 수 있는 투자 생태계를 단계적으로 얹어가며, 오늘날의 한국형 VC 모델이 형성되었다.



왜 한국에선 민간 VC 시장이 자생할 수 없었나

― 출발 조건의 차이 ―

한국에서 벤처캐피탈 시장이 민간 중심으로 바로 만들어지기 어려웠던 이유는 한국이 다른 나라보다 뒤처져 있었기 때문이 아니다.


출발 조건 자체가 달랐기 때문이다.

한국은 경제 성장을 위해 일찍부터 기술집약 산업에 집중해야 했다. 문제는 이런 산업이 민간 투자자에게는 지나치게 부담이 컸다는 점이다. 신기술 개발에는 많은 자금과 시간이 필요하고, 성공 여부를 사전에 예측하기도 어렵다. 민간 자본이 선뜻 나서기 어려운 구조였다.


자본의 여유도 부족했다.

당시 한국은 전쟁 이후 자본을 이제 막 축적해 가던 단계였다. 벤처 투자는 자금을 장기간 묶어두는 방식인데, 빠른 경제 성장이 절실했던 한국에서 민간 자본이 위험한 투자에 오래 머무를 여유는 크지 않았다.

실패를 감당할 환경 역시 충분하지 않았다.

벤처 투자는 여러 번의 실패를 거쳐 소수의 성공으로 전체 손실을 만회하는 구조다. 그러나 당시 한국에서는 한 번의 실패가 개인과 기업 모두에게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모험적인 투자가 선택되기 어려운 이유였다.


여기에 더해 한국 경제는 오랫동안 제조·수출 중심 구조로 성장해 왔다. 이 구조에서는 안정적인 매출과 빠른 성과가 중요했고, 불확실한 미래를 전제로 한 벤처 투자는 자연스럽게 우선순위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미국 vs 한국, 출발점이 달랐다

― 세계 VC의 시작과 한국의 선택 ―

벤처캐피탈은 미국에서 먼저 시작되었지만, 한국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를 받아들였다.

미국에서 현대적인 벤처캐피탈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등장했다.

1946년, 하버드대 교수였던 조르주 도리오는 ARDC(American Research and Development Corporation)를 설립했다.목적은 명확했다.
군과 대학에서 개발된 신기술을 민간 기업으로 이전해 실제 산업으로 연결하는 것이었다.

미국의 벤처캐피탈은 이렇게 민간 자본을 중심으로 자연스럽게 형성된 시장이었다. 이미 축적된 자본이 있었고, 기술이 있었으며, 실패를 감당할 수 있는 투자자층도 존재했다.


반면 한국의 상황은 달랐다. 한국의 초기 벤처캐피탈은 민간 투자자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시장이 아니었다.

국가는 산업 발전을 위해 기술 기업이 필요했고, 이를 위해 기술금융과 산업정책의 일부로 벤처투자를 도입했다.

초기 한국의 벤처캐피탈은 순수한 지분 투자 기관이라기보다 투자·대출·기술금융을 함께 수행하는신기술금융기관에 가까운 역할을 했다.


즉, 투자는 시장의 선택이 아니라 국가 정책의 수단으로 시작된 구조였다. 미국의 VC는 자본이 만든 시장이었고,
한국의 VC는 국가가 먼저 만든 구조였다.



미국의 VC는 자본이 만든 시장이었고, 한국의 VC는 국가가 먼저 만든 구조였다.



다음 글에서는, 국가가 이 시장을 어떻게 ‘제도’로 만들고 실제로 작동하게 했는지를 살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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