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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hl Jul 31. 2020

하루 30분으로 한 달 책 3권 읽기

2020 상반기 독서 결산


고등학생 땐 독서부에 들어가 도서관을 들락날락거리고, 야자 시간에도 문제집 아래에 책을 숨겨두고 몰래 읽었던 나. 회사원이 되며 평일엔 일하고 오니 피곤하단 이유로, 주말엔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밀린 예능을 봐야 한단 이유로 자연스레 책과 멀어졌다.


흔한 변명처럼 '일상에 치여' 책을 펼 시간이 없었다. 그러다 사내 북클럽에 참여하며 다시 책 읽기에 박차를 가하게 되었다. 분량은 하루에 딱 15쪽! 시간으로 치면 30분 내외가 걸리는데, 생각보다 효과가 좋다. 야금야금 읽다 보면 어느새 한 달에 책 두 권은 뚝딱이다.


그렇게 읽은 책 몇 권을 소개해보려고 한다. 이름하야 2020년 상반기 독서 결산!



1월, 2월... 그리고 3월  

경찰관 속으로 (원도 저)

12월에 시작해 1월에 끝낸 <경찰관 속으로>가 세 달 동안 읽은 유일한 책이다. 2, 3월엔 책을 전혀 읽지 못했다. 이사와 결혼 준비로 너무 바빴다(고 하자). 저자가 관련 클래스를 통해 독립출판물로 발행했으나, 입소문을 타고 5천 부 이상을 판매하며 이제는 일반 서점에서도 구입할 수 있게 된 전설의 책. 나 역시 풍문으로 그 명성을 듣고 읽어보게 되었다.


과연, 담담한 글투에도 소용돌이치는 내면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언니'가 되어 같이 슬퍼하고, 함께 분노하고, 때로는 한숨을 쉬고 체념하기도 했다. 충분히 제 몸을 건사할 수 있는데도 지팡이를 쥐고 흔드느라 바쁜 이들이 많다.


'업무'의 일환으로 취급되며 피 묻은 시신에 익숙해져야 하는 상황은 보는 이로 하여금 죽음을 생각하게 한다.

나도 서서히 죽음을 향해 가는 것만 같아서 자꾸 내 발밑을 쳐다보게 돼. 현재 내가 걸어가는 곳이 어디인지 보기 위해.



4월

북클럽 시작!

스무스 (태재 저)

언니가 극찬을 하며 권해 읽게 된 책으로, 저자가 수영을 배우며 겪은 에피소드와 그에 대한 단상을 담았다. 비 냄새를 닮은 수영장 풍경과 그 안팎의 사람들 이야기가 퍽 흥미롭다. 스스로를 계산적인 사람이라 칭하며 글을 쓰면서도 출판을 염두에 두고 있음을 드러내는 자아 성찰도.


'딱 봐도 껄렁껄렁한 인상에 물에는 절대 들어오지 않으면서, 반말을 높여서 하는' 강사에 대한 묘사는 내 마지막 수영 강습 때의 그 강사를 떠올리게 했다. 한껏 귀찮은 듯한 태도로 입은 것도 아니고, 벗은 것도 아니게 전신 슈트를 반만 걸쳤던. 아마도 수영장엔 '그런 강사가 꼭 한 명씩은 있다'는 질량 보존의 법칙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정작 밑줄을 그은 건 다른 강사에 대한 이야기였지만.

강사님의 상세한 설명이 내 마음을 주물렀다. 아무런 설명도 듣지 못한 채 받아들여야만 하는 일 때문에 마음이 지쳐버렸을 때, 의도야 어떻든 타인이 제공하는 자세함은 포근하게 다가온다.


빵 고르듯 살고 싶다 (임진아 저)

대학시절 알고 지냈던 일러스트레이터 작가 임진아의 책으로, 읽어야지-읽어야지- 하다 작년에 <서울 국제도서전>에서 발견하고 구입했다. 제목에 걸맞게 빵 냄새가 폴폴-나는 책갈피도 덤으로 받고. 내가 모르는 과거와 그 후의 이야기가 주였지만, 마주했던 시간의 일화도 적혀있어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퇴사를 하고 평소 로망이던 '평일에 미용실 가기'를 하는데도 눈치를 보게 되지만, 내일에 대한 기대로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잠자리에 들 수 있는 하루를 공유한다. 특유의 간결한 그림만큼이나 담백한 글이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지면과 마음을 채운다.


그 가운데 분명한 실체를 떠올리게 하는 한 문장이 있어 밑줄을 그었다.

매사에 '내가 더 힘들어'라는 시선으로만 상대를 바라보는 사람과는 더 이상 대화를 할 수가 없다.


여행의 이유 (김영하 저)

오리지널 커버가 더 마음에 들었는데, 우물쭈물하다 '바캉스 에디션'으로 구입하게 된 책. 지금은 다시 오리지널 커버로 구입이 가능하다. 크흙. 그래도 내용은 같으니까. 읽고 참 좋아서 지금은 <오래 준비해온 대답>을 사서 읽고 있다.


예전에 어디론가 떠나고 싶단 생각이 든 적이 있다. 지나고 보면 그때의 난 아무런 의무도 없이 놀고, 먹고, 돈을 써도 되는 그런 장소와 명분이 필요했던 것 같다. 여행이 아니라, 여행의 탈을 쓴 '일상으로부터의 도피'를 원했던 것이다.


일상은 파도처럼 밀려온다. 해야 할 일들, 그러나 미뤄두었던 일들이 쌓여간다. 언젠가는 반드시 처리해야 할 일들이다. (중략) 어둠이 빛의 부재라면, 여행은 일상의 부재다.

들켰다.



5월

강원국의 글쓰기 (강원국 저)

'글을 잘 쓰기 위한 필독서' 같은 리스트에 종종 들어있는 책이라 숙제를 하는 마음으로 읽게 되었다. 과연 전공서적을 읽는 듯, 글을 쓰는 마음가짐부터 실전 팁까지 그 내용이 광범위했다.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는 바로 '일단 써라'다. 세상 흔한 말이지만, 한편으론 실천하기 가장 어려운. 하지만 일단 분량을 채우고 나면 얼른 발행하고 싶어 근질근질해하는 내게 가장 뼈 때리는 문장은 따로 있었다.


우리가 헤밍웨이나 톨스토이와 같은 점이 있다면, 그들이나 우리나 초고가 엉망이라는 사실이다. 다른 점도 있다. 헤밍웨이나 톨스토이는 열심히 고쳤고,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잘 쓰는 사람은 잠깐 쓰고 오래 고친다. 못 쓰는 사람은 오래 쓰고 잠깐 고친다.

나는 여전히 오래 쓰고 잠깐 고치는 사람이다. 역시 뭐든 실천이 어렵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백세희 저)

하도 화제라 안 읽어볼 수가 없었다. 조금 늦긴 했지만. 책을 사고 보니 이 책의 성공을 순전히 '제목 빨'로 보는 사람이 많다는 걸 알게 됐다. 하지만 그건 내용도 모르는 이들의 섣부른 판단이 아닐까?


언뜻 의미 없어 보이는 대화 속에서 좋다가도 싫고, 싫다가도 좋은-뭐라 말할 수 없는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분명히 존재하며 이따금 내 마음을 심히 어지럽히지만, 무엇이라고 단정할 수 없는.


기준선이 높으면 지금 나의 상태를 굉장히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는 증거가 될 수 있어요. (중략)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술은 취하려고 마시는 건데, 안 취하는 사람을 부러워한단 말이에요.

'적당히'라는 건 참 어렵다.


빨강 머리 앤 (루시 모드 몽고메리 저)

북클럽과 별개로 '카카오 프로젝트 100'으로 읽은 책. 실은 다른 책을 읽고 싶었는데, 다 마감이 되는 바람에 선택지가 없었다. 평소라면 읽을 생각도 못했을 텐데, 편독(偏讀)은 좋지 않으니까- 어쩌면 좋은 기회일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읽다 보니 이따금 예상치 못한 감동이 있었다. 불우한 앤의 어린 시절에 눈시울을 붉히다, 진정한 친구 다이애나를 만난 것에 다행이라며 눈물을 찔끔 흘렸고, 그녀를 딸로 받아들여준 커스버트 남매 덕에 진짜 가족이 생겨 감동의 눈물을 쏟았다.


꼭 끼는 잠옷 치마는 질색이지만, 그런 잠옷을 입어도 목에 프릴이 달리고 바닥을 끄는 예쁜 잠옷을 입었을 때랑 똑같은 꿈을 꿀 수 있으니까 괜찮아요.

앤은 마음씨도 얼마나 고운지.



6월 

일의 기쁨과 슬픔 (장류진 저)

다른 작가분들과 함께 '매쓰작(매일 쓰다 보니 작가)'이란 이름으로 글쓰기에 관한 릴레이 글을 쓴 적이 있다. 다음엔 어떤 글을 쓸지 논의하는 자리가 있었는데, 그때 나온 몇 개의 책 중 하나가 바로 <일의 기쁨과 슬픔>이다. IT회사 이야기인 데다, 마치 실제를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다는 말에 단연 궁금증이 일었다.


아니나 다를까. 집도 판교, 회사도 판교이던 시절 헬스장을 가는 길에 매번 보았던 다리가 표지에 떡하니 그려져 있었다. 볼 때마다 '이건 대체 무슨 용도야?'라고 생각했던, 진짜 다리 위에 조형물처럼 놓여있던 그 미니 다리가.


그런데 계단을 다 올라가고 나서 어딘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육교가 길 건너편으로 이어진 게 아니라 다시 우리가 있던 쪽으로 이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육교가 도로를 가로질러야 하는데, 도로와 평행하게 놓여 있었다.


원더 (R. J. 팔라시오 저)

역시 <서울 국제도서전>에서 구입, 아니 선물 받은 책. 책에 커버를 씌워 원래의 제목을 알 수 없게 한 후, 특정 날짜와 그 책의 한 구절을 적어 파는 부스가 있었다. 같이 간 친구의 생일에 맞는 책은 아쉽게도 품절이었고, 친구는 대신 다가올 생일 선물로 '7월 13일'이 적힌 책을 사주었다.


카페에 가서 뒷면에 적힌 힌트를 보고 책 이름을 유추해봤는데, 다행히 맞출 수 있었다. #남들과다른아이 그리고 #영화#원작소설. 맨날 까먹는다. 이번 주말엔 영화도 꼭 봐야지.


그저 내가 된다는 이유로 나에게 메달을 주고 싶다면, 좋다. 기꺼이 메달을 받겠다. (중략) 나는 5학년을 성공리에 끝마쳤다. 내가 아니라 해도, 그건 쉽지 않은 일이다.

이것은 '어거스트'라는 특별한 소년의 이야기이자, 어린 시절의 '우리'에 대한 이야기다.





1월 : 1권

2월 : 0권

3월 : 0권

4월 : 3권

5월 : 3권

6월 : 2권


6개월 동안 총 9권의 책을 읽었다. 종류를 나누면 에세이가 5권, 소설이 3권, 자기 계발서 (혹은 취미/실용서)가 1권이었고. 한 달에 한 권을 살짝 넘는 꼴이다. 아무래도 첫 삼 개월을 날려버린 게 큰 것 같다.


하지만 북클럽은 지금도 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게다가 이미 이번 달만 벌써 다섯 번째 책을 읽고 있으니, 하반기 동안 책 스무 권은 족히 읽을 수 있지 않을까? 하반기 결산을 기대하시라!




*. 표지 사진 : Photo by chris liu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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