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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hl Sep 23. 2020

(똥)스키를 타는 고양이

고양이와 나#12 - 고양이와 알레르기

재이는 사료를 제외한 간식은 뭐든 좋아한다. 건강을 생각해 별도의 간을 하지 않고 삶아만 주는 닭가슴살도 곧잘 먹는다. 반면 와니는 갓 삶은 닭가슴살이 아니면 잘 먹지 않는다. 한 번에 세네 덩이씩 삶아 냉장고에 넣어뒀다 꺼내 주면, (전자레인지에 돌려 덥혀주는데도) 먹는 둥 마는 둥 하다 뒤늦게 꺼내 주는 사료를 향해 미련 없이 고개를 돌린다.


밥을 먹으면서도 이후에 마실 커피를 더 기대하는 집사의 눈엔 간식보다 사료를 좋아하는 게 신기하다. 더 신기한 건 사료만 먹는 와니가 간식을 좋아하는 재이보다 더 통통하다는 것이다. 살찌는 계절 가을만 되면 안 좋던 밥맛이 그렇게 좋아지던데, 바로 그런 이유인 걸까.


와니에게 재이의 닭가슴살과 같은 존재를 찾아주기로 했다. 사료만 먹으면 왠지 영양 불균형이 올 것 같기도 하고 매끼 같은 것만 먹이기도 미안했기 때문이다. 워낙에 입이 짧은 꽃님이(본가에 사는 동생 고양이)도 잘 먹는 데다, 츄르나 간식 캔과 달리 별다른 첨가물이 없어 안심인 말린 북어를 구입했다. 잘게 쪼개 주니 (재이는 물론) 와니도 곧잘 먹었다. 바삭-하는 소리를 내며 열심히 먹기에 입맛에 맞아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 후 이상한 일이 생겼다. 재이는 종종 똥스키를 탔고, 와니는 곧잘 먹은 걸 토해냈다.


'똥스키'란 고양이가 화장실에 다녀온 직후 엉덩이를 바닥에 딱 붙이고 앉아 앞발만 움직여 이동하는 것을 말한다. 뒷다리는 고정한 채 앞발만 바삐 움직이는 데다, 지나간 자리에 미처 이별하지 못한 분비물의 흔적이 마치 스키 플레이트가 지난 흔적처럼 남는 게 스키와 닮았다. 엉뚱한 행동이 자못 귀여워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며 그 뒤에 붙는 수고로움 - 그루밍을 하기 전에 얼른 꼬리를 닦아줘야 해! - 이 자연스레 연상돼 마냥 귀엽지많은 않게 된다.


처음엔 물을 잘 안 마시는 재이가 변비에 걸려서, 사료를 너무 급하게 먹은 와니가 채 해서 그런 줄 알았다. 덕분에 아이들에게 하는 잔소리가 늘었다. '재이야, 물 좀 많이 마셔~', '와니야, 천천히 좀 먹어~' 그러다 스케일링을 하러 간 병원에서 재이가 똥스키를 타고 와니가 구토를 하는 진짜 이유를 알게 됐다. 


뭐 다른 거 궁금하신 건 없고요? 진료를 마치고 선생님이 말했다. 음... 뭐, 없... 아! 근데 재이가... 또... 똥 스키를 타요;;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내 아이의 치부를 남에게 드러내는 일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선생님은 백 한 번째 듣는 얘기라는 듯 담담했다. 아, 원인은 두 가지가 있을 수 있는데요. 먼저 똥스키를 탄다는 건 거기가 간지럽다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기생충이 있어서 그런 걸 수도 있어요. 그게 똥으로 나오기도 하거든요. 아니면... 알레르기일 수도 있고요. 알레르기에 대한 반응이 여러 가지거든요. 똥스키라던가, 구토라던가. 혹시 아이들이 최근에 새로 먹기 시작한 게 있을까요?



먼저 첫 번째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해 심장사상충 약을 발라보기로 했다. 밖에 나가는 일은 병원을 가거나 본가에 내려갈 때뿐이라 필요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 좀 할걸. 후회했지만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집에 오자마자 아이들의 뒷덜미(스스로 그루밍할 수 없는 부위)에 액체로 된 약을 하나씩 발라주고 기다렸다. 아이들이 똥을 싸기를.


아, 아까의 대화에서 하나 빠진 게 있다. 아, 근데 비위가 좀... 약하시나요? 선생님이 덧붙였다. 아, 막 약하진 않은 것 같은데, 왜... 왜요? 영문을 몰랐다. 그게... 선생님이 옆에 있던 키보드를 두드리더니 모니터를 내 쪽으로 돌리며 말했다. 만약 기생충이 있다면... 그게 죽어서 이렇게 나올 거거든요. 모니터엔 뿌옇게 블러 처리가 되어있지만 여전히 몇 마리인진 셀 수 있을 꼬불거리는 하얀 선들이 있었다. 으악.


그러니까 약을 바르면 항문을 통해 기생충의 사체가 나온다는 거였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이들의 몸속에 기생충이 돌아다닌다 상상하니 끔찍했다. 다행히 스케일링을 받느라 금식했던 아이들은 각자 닭가슴살과 사료를 깨끗이 비웠고, 저녁엔 화장실에서 금세 큰일을 해내고 한결 개운한 표정으로 나왔다. 이젠  차례다. 아이들이 다시 들어가기 전에 화장실을 확인해야 한다. '그것' 있는지 없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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