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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밤일기 Aug 21. 2019

안녕, 미워했던 나의 두 번째 엄마

할머니와의 여행을 결심하게 된 계기

딱히 엄마나 어머니라는 단어를 신성하게 여기는 것은 아니지만 내게 그 단어의 의미는 남다르다. 이미 잃어버린 것이기 때문이다. 엄마가 돌아가신 이후 나는 누군가가 내 ‘엄마’의 자리를 침범하는 것을 견디지 못했다. 이미 충분히 낡았음에도 엄마의 손길이 닿은 물건들을 밖에다 내버리지 못하는 것을 보면 분명히 그렇다. 나는 아직도 엄마와 함께 살았던 집에 살고 엄마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주변에 산다. 이미 고장 난 지 오래인, 엄마가 수를 놓은 시계는 차마 버릴 수 없어 안방 벽에다 고이 달아두었다. 내 책상의 책장 위에는 엄마와 함께 찍은 사진이, 내 지갑 속에는 엄마의 증명사진이 있다. 그렇게 지독하게 그리워했다. 제사상 앞에 앉아 울기를 반복했던 아이는 이제 엄마의 기일에도 무덤덤하게 웃을 수 있는 어른이 되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엄마라는 단어는 내게 말 못 할 먹먹함을 불러일으킨다.


나는 평생 내 엄마를 제외한 누군가를 ‘엄마’라 여기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에 이르러서야 나는 내게 두 번째 엄마가 이미 존재하고 있었음을 인정하게 되었다. 감히 엄마라는 단어를 어디다가 가져다 붙이느냐며 화를 낼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다. 아직 너를 낳아준 엄마를 잊지 못했으면서 또다시 누군가를 엄마라 부르고 생각할 수 있느냐고 의아해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주 오랜 시간을, 누군가의 돌봄 속에 살아가다 보면 결국 그를 엄마라 여기게 될 날도 온다는 것을 나는 이제야 깨닫는다.     






나와 동생의 두 번째 엄마, 그리고 내 아버지의 엄마. 분명 미워했으나 어느새 세상 그 누구보다도 사랑하게 되어버린 우리의 할머니.     


일주일에 한 번, 꼭 전화를 할게요. 내가 얼마나 잘 지내고 있는지 사진을 보낼게요. 할머니가 보고 싶어 한국에 일찍 들어갈지도 모르겠어요. 어딘가로 떠나기 전이면 늘 할머니에게 이야기하곤 했다. 내 소식을 최대한 자주 전하겠노라고. 늘 그랬던 것처럼 할머니에게 인사를 한 후 떠나간 길 위에서 나는 할머니의 생각을 참 많이도 했었던 듯하다. 그러면서도 여행을 떠나오기 전 그토록 떠들어 댄 것처럼 일주일에 한 번은 전화를 하고, 날마다 내가 여행하는 곳들의 사진을 찍어 보냈다. 그렇게 할머니에게 조금이라도 더 닿아있기 위해 애를 썼다. 정말 사람 일이란 건 모를 일이다, 할머니를 엄마라고 여기게 될 줄이야. 그런 생각을 할 때마다 괜한 웃음만 새어 나왔다.


나의 할머니는 편협하고, 때때로 나빴으며 고집이 셌다. 어릴 적의 나는 그런 할머니를 미워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잔뜩 힘들어하던 엄마를 보며, 상처 받아 울던 엄마를 보며, 그러면서도 차마 자식들이 있는 앞에서는 그 어떤 것도 내색하지 못했던 엄마를 보며 자라왔기에 더더욱 그랬다. 엄마의 죽음 앞에 크게 놀라 찾아온 할머니와 그런 할머니를 너무나도 원망했던 외할머니 간의 다툼을 보며 나는 평생토록 할머니를 좋아하지 못할 것이란 생각도 했었다. 






할머니가 미웠다. 엄마의 죽음 이후 우리를 돌보는 할머니에게 쉽게 정을 붙이지 못했다. 정을 붙인 듯 행동하다가, 울컥 화가 차오를 때면 ‘그래서, 할머니는 엄마를 미워했어요?’하는 질문을 하곤 했었다. 할머니를 향한 분노도, 미움도, 하물며 원망마저도 나의 것이 아님을 알면서도 나는 할머니를 미워했다. 그 감정의 주인 될 사람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기에 나는 그의 감정을 대신 받아들이기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실 이 감정이 엄마의 것인지도 알 수 없었으나, 어쨌거나 원래 내 것이 아니었던 감정들은 그렇게 나의 것이 되었다.


그랬던 할머니를 언제부터 사랑하게 되었던가. 사랑이 먼저였던가, 익숙함이 먼저였던가. 할머니를 사랑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인지하기도 전에 이미 할머니와 함께하는 생활에 익숙해져 있었다. 그런 익숙한 나날들 속에서, 할머니를 잃게 된다면 나는 아주 많이 허전할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늘 내게 공감하며 함께 웃고 울어주던 할머니였기에 할머니가 내 곁에 없다는 것은 내 모든 일에 함께 해 왔던 사람이 사라진다는 것과도 같은 의미라는 생각을 함께 하게 되었다. 할머니의 자리가 텅 비어버린 나의 일상을 떠올리다가 몇 번쯤 울음을 터트렸던 것도 같다. 할머니가 없는 나의 생활을 떠올리는 것이 정말 끔찍하리만큼 싫음을 받아들인 이후에야 결국 나는 당신을 사랑하게 되었음을 인정하게 되었다.



분노도, 원망도, 미움도 모두 나의 것이 아니었다. 내 것이 아닌 감정들을 놓아버리고 나니 그 자리에 남은 것은 오로지 사랑뿐이라. 안녕, 미워했던 나의 두 번째 엄마. 이제 나는 내게 남은, 이미 이전부터 사랑해왔던 사람과 이토록 아름다운 세상을 함께 바라보려 한다. 우리 함께 만들었던 여권을 들고 내가 사랑한 수많은 풍경들을 찾아 떠나려 한다. 오로지 우리의 행복을 위해, 이미 사랑하게 된 것도 모른 채 끊임없이 상처만 줬던 지난날의 나를 대신하여 용서를 빌고 그의 남은 날들에 온통 행복의 꽃이 피길 수없이 기원해야겠다. 최선을 다해 사랑한 끝에 이별을 맞이하는 날이 왔을 때, 우리 정말 후회 없이 사랑했노라 이야기하며 헤어질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때때로 말한 적 있으나 내가 엄마와 이별하던 순간 가장 후회했던 것 중 하나는 우리의 마지막 순간이 우는 모습뿐이었다는 점이다. 엄마가 기억할 내 마지막 모습이 오로지 그것뿐이라는 것을 참 오랫동안 후회했다. 전혀 준비하지 못한 이별이었기에 마지막 인사도 나누지 못했고, 그 모든 것은 결국 내게도 상처로 남았다. 나는 아름다운 이별 같은 건 모른다. 어쨌거나 어떤 상실이라는 것들은 모두에게 흔적을 남기고, 그 흔적은 대체로 아름답지 않다. 우리에게도 반드시 끝은 찾아올 것이다. 어쩌면 나는 그 이별의 순간에서도 여전히 잔뜩 울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최선을 다해 사랑한다는 것이 후회 없는 상실의 순간을 맞이할 수 있게 해 줄까? 그것 또한 장담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그것뿐이기에 할 수 있는 것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것뿐이다.     

안녕, 사랑하는 나의 두 번째 엄마. 언젠가 찾아올 상실 이후의 것들은 남은 사람들이 감당할 테니, 우리에게 남은 모든 시간 동안엔 우리 그냥 함께 행복하기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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