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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다훈 Jul 29. 2023

대화

허수아비 논법

 대화란 무엇인가? 우리나라에서는 세종대왕님이 만들어주신 한글을 기반으로 약속된 언어들로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고, 남의 의견을 수용하며 올바른 비판과 충고가 기반이 된, 혹은 정보 전달을 위하여 하는 것이 대화다. 이를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은 같이 아는 약속된 언어, 남의 의견을 수용할 자세, 올바른 비판과 수용을 할 수 있는 언어능력 및 공감능력, 자신의 의견 표출을 올바르게 할 수 있는 표현능력이 요구된다. 우리는 사람과 사람 간에 소통을 위해 언어라는 약속을 어릴 적부터 배우기 시작한다. 태어나서 엄마와 아빠라는 약속을 가르치기 위해서 수만 번 아이에게 엄마 해봐, 아빠 해봐 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언어를 배웠다. 그 언어로 다른 사람들과 소통을 했고 대화를 배웠다. 마냥 자신의 말만 하는 것이 아님을 배워 경청하는 자세를, 타인의 입장을 생각하는 역지사지를 통해 배려를 배웠다. 언어의 시작은 곧 배움의 시작이다.


 헌데 이상하게도 최근 들어서 이 배움이 잘못된 방향으로 흐른 것인지 아니면 타인에 대한 배려와 경청이 사라져 버린 세상이 돼버린 것인지 헷갈리는 상황이 많이 일어난다. 전부터 꾸준히 언급되어 오던 허수아비 논법이 무기가 돼버렸다. 인터넷 세상에서 만의 문제라고 생각했던 것이 점점 밖으로 퍼져 나오고 있다. 옛적에는 이와 비슷한 주의 전환의 오류라는 것이 있었는데 이는 단순히 대화의 주제가 불리하다 싶을 때 다른 곳으로 돌리는 느낌이었다면은 허수아비론은 그저 주장 자체를 왜곡해서 메신저를 공격하는 방식이다. 내 얘기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이나 전하고자 하는 바는 중요하지 않다. 단순히 하나의 표현이나 마음에 안 드는, 꼬투리 잡을 수 있을 법한 단어선택이나 어투가 보인다면 그것 하나로 메신저를 비난한다. 나는 이것을 대화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또한 논리가 필요가 없어진 세상이다. 논리보단 무논리가 논쟁에서 더욱 유리하다. 그들은 이미 남의 얘기에 설득을 당할 여지가 없다. 자기 입맛대로 맞춰놓은 생각인데 어떻게 논리적인 접근으로 바꿀 수 있을까. 차라리 회유와 유혹이 더 통할 판이다.


 사람들은 왜 이렇게 변한 것일까. 이 점에 대해서는 이전부터 수차례 대화 방식의 변화와 삶의 방식 변화 및 인식의 차이가 나타나고 개성중시, 개인주의 사회가 되면서 각자의 방패를 무기 삼아 쓰는 경우가 늘어남에 따라 생겨난 문제라고 말했었다. 이게 안 좋다-라는 것처럼 수차례 강조하고 말을 해오는 이유는 간단하다. 사람대 사람 간의 소통이 일어나지 않는다. 본인의 가까운 사람이 아니라면 크게 중요시 여기 지도 배려도 경청도 나타나지 않는 극한의 이기주의 사회. 정이 많고 의를 중시하며 예를 지킨다는 말은 다 옛말에 불과하다. 필자가 아직 나이가 많은 편은 아니지만 제가 어릴 적만 해도 지나가다 보이는 모든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고 다니는 것이 당연했으며 같은 아파트 층수에 사는 이웃들과 친하게 지냈다. 시골이 사람이 없어서 문제라면 도시는 사람은 많으나 사람냄새는 하나도 나지 않는다. 물론 이렇게 된 배경에는 묻지 마사건들이 나 사회적 문제점이 되어버린 많은 부분들에서 우려되는 점이 많아 보다 남을 경계하는 경향이 생겨난 것이지만은 모두를 잠재적 범죄자로 만들어 버리는 모습은 꺼림칙하다.


 사람들이 어떻게 바뀌었으면 좋겠다,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는 희망사항이나 개선안을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그냥 내가 생각하기엔 이렇게 바뀌는 것이 서로 간의 약속을 지키는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하는 개인적인 생각. 내 글에서 단어나 문맥상 오해가 생길 수 있는 부분에 정정하는 문장이 들어가는 이유도 이와 같다. 허수아비가 되기 싫어서, 혹여나 내가 약속을 어길 것 같아 보일 때 스스로를 보호하고 남에게 배려하기 위해서. 또한 남들의 얘기를 차분히 다 듣고 의견을 종합하여 한 번 정리해서 물어본 다음 내가 생각하는 바를 얘기해 주고 그것마저도 감정적인 상황에 대한 설명과 이성적인 판단에 대한 조언을 함께 해준다. 이는 경청과 배려를 동시에 활용한 대화 방법이다. 나는 모두가 나처럼 할 필요도 없고 내가 하는 것이 정답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다만, 우리가 어릴 때부터 교육받은 것, 받아야 할 것이 무언인가.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서 서로 간의 약속에 올바른 전달을 위해서는 배려와 경청이 기본이라는 것이다. 모두가 이를 한 번 더 생각하고 언행에 주의를 기울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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