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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다훈 Aug 11. 2023

끝맺음

시작을 못하게 만드는 결말

 이야기를 쓰는 나에게 심각한 문제가 생겼다. 모든 이야기에는 웬만하면 기승전결, 서론-본론-결론의 형태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나는 점점 결(결론)을 쓰기 힘들어진다. 어떻게 끝을 맺어야 할지 모르겠다. 내 글이 용두사미(글이 좋다는 뜻이 아니다)가 되어버린 기분. 처음 주제를 정하고 글을 적어 내려 가기 시작할 때는 정확하게 짚고 싶은 부분에 대해 얘기하고 그 속에서 넓혀 얘기하기 시작하는데 다시금 본론으로 돌아와 정리하고 내 의견을 피력하고 난 다음에 끝맺음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다른 사람들과 얘기를 하던 도중에도 소위 썰을 풀기 시작하면 재밌게 풀어나가다가 어디서 터트리고 어디서 마무리 지어야 할지 감을 못 잡는다. 유치원, 학창 시절을 지나와 쌓아 온 타인과의 소통, 사회성을 모두 잃어버린 듯한 기분이다.


 아마 별 거 아닌 것처럼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나에게는 큰 일이다. 나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사람. 이야기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주제, 청자 그리고 결말이라고 생각한다. 솔직히 이 사람이 말을 잘 하건 못 하건 주제가 관심을 끌 만하거나 듣는 사람에게 맞는 얘기라면은 듣게 되어 있다. 그리고 결말이 궁금해지고 그 끝에서 나오는 쾌감이 존재한다면 이 사람이 한참을 생각하다 말해도 모두가 그 시간을 기다려준다. 독자들이 자신이 관심 있는 분야가 아님에도 이야기를 끝까지 읽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 이야기의 전개가 결말을 궁금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야기에서 가장 기대치가 높아진 부분은 어디인가. 궁금증이 쌓여있는 결말 부분이다. 우리는 항상 결과를 중시하며 살았던 영향 탓 인지 모든 것에서 결말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영화의 끝이 배드엔딩이냐 해피엔딩이냐에 따라서 볼지 말지를 고르는 상황도 생겨났다. 그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영화의 이야기가 아니었던 것. 자신이 바라는 결과를 보고 싶은 것은 당연한 것이다. 내가 드라마 속에서 응원하는 커플이 이어지거나 통쾌한 복수, 사이다를 통해 고구마를 날려주는 결과가 나오는 만화를 볼 때면 기분이 좋아지지 않는가. 나는 그런 글을 쓰고 싶다. 아무런 생각 없이 접해서 우연히 읽었더니 생각보다 재밌다는 마음으로 결말이 궁금해 끝까지 읽게 되는 글. 읽는 도중에 조금 물음표가 생기는 경우가 있더라도 별문제 없이 넘어가는 짜임새 있는 잘 읽히는 글. 그런 글로 내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


 이 문제는 위에서 말했듯 대화에서도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전화를 해도 친구들과 만나도 재밌는 이야기를 시작해하다가 잠깐의 정적이 흐르는 순간 그다음 내용을 찾아내지 못하고 흐지부지하게 끝낸다. 그러다 분위기 전환할 겸 다른 얘기를 시작하면 조금 끼어들까 싶다가도 어느새 조용히 듣고 있는 자신이 보인다. 뭔가 지금 끼어들어서 내 얘기를 시작하면 다 같이 즐길 정도로 끝낼 자신이 없다. 나 스스로가 얘기를 하는 것도 좋아하지만 남 얘기를 듣는 것을 더 좋아하는 성격인 탓도 있지만 자신의 얘기를 내뱉는 것에 자신이 없어진 것은 초등학교 시절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다. 수업시간에 손들고 발표하는 것이 제일 두려웠던 그때로.


 나는 인간관계에서 나름 나만의 원칙을 정해 칼같이 지키고 있었다. 주변 사람이 많아 보이면서도 스스로 친하다고 말할 수 있거나 자주 연락을 하거나 하는 것에서도 세세히 차이점을 둘 정도로 원칙이 깊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애매해졌다. 그냥 얘정도면 이렇게 할 수 있지, 얘정도면 안되지 않나-하면서 뭔가를 확실히 결론 내리지 못한다. 그렇다. 무슨 일에서 던 확실하게 빠르게 결정을 내리고 실천으로 옮길 수 있었던 과감함이 사라졌다. 자신감이 혹은 자존감이 떨어졌나 보다. 원래도 크게 높은 편은 아니었으나 스스로를 피력할 만한 정도는 됐었기에 당혹스럽다. 어쩌다 이렇게 된 것일까. 그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사람의 성향이 바뀐 것일까. 모르겠다. 이조차 확실히 결정하지 못하겠다.


 과거의 결정들을 후회한 적이 없다. 어떤 결정이던 그 순간에 내가 생각하는 최선으로 내렸던 결정이기에 스스로를 자책하지 않고 그 앞을 나아가기 위한 새로운 선택을 선호했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내리는 결정에 뒤따르는 것을 감내해 낼 자신이 없어서 점점 책임에서 도망치고 싶어 진다. 곧 있으면 식당에 가서 메뉴판만 10분을 보다 나올 것 같은 지경이다. 치기로 보일 수도 있었던 그 과감함이 그립다. 지금의 나는 기타를 한 번 쳐보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몇 개월동안 기타 검색만 하고 구매버튼을 누르지 못한다. 아마 그 시간에 빠르게 시작했다면 이미 코드 몇 개는 익숙해졌을 것인데도.


 세상이 무섭다. 언제 나에게 무슨 일이 닥칠지 모른다. 나의 지금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이 소중하다. 그런데 미래가 두려워 현재에 집중하지 못하는 자신이 멍청하다 하면서도 마냥 달려들지 못한다.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을 시작해야 하는데 나는 또다시 미룬다. 이것은 단순히 게을러서, 의지가 없어서-라고 말하기도 힘들다 이제. 일의 시작이 귀찮거나 흥미가 없어서가 아닌 두려워서 못하는 것이 과연 그렇게 말해도 되는 상태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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