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생활을 하면서 이런저런 조언을 주고받는 경우를 더러 보게 됐다. 각자의 자리에서 생겨나는 수많은 형태의 생각들이 엉퀴어 생긴 고민들을 어떻게 풀어보고자 타인에게 말을 건네어보는 행위는 과연 올바른 것일까.
그냥 문득,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첫째로, 고민상담을 원하는 이는 정말 객관적인 지표를 원하는 것인지, 아니면 자신이 바라는 결정에 좀 더 힘을 실어주기를 바라는 것인지. 두 번째, 고민상담을 받아주는 이의 '객관적인 시선'은 정말 객관적일 수 있는 것인지.
나는 주로 들어주는 입장이다. 스스로의 고민이나 약점을 쉬이 밖으로 꺼내지도 않을뿐더러 결국에 모든 고민을 결정하고 책임져야 하는 것은 나이기에 스스로 알아보고 좀 더 합리적이라 생각되는 부분을 선택하니까. 여기에는 그 고민이 나의 고민이고, 나를 누구보다 잘 아는 것은 '나'라는 생각이 깔려있다.
내가 고민을 들어줄 때마다 생각을 말하기에 앞서 먼저 붙이는 말들이 있다. '정말 순수히 내 생각으론'라던가 '내 입장에서는', '내가 들은 상황만으로는'같은 말들을 꼭 붙인다. 결국 그 사람의 입장을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일어났던 일들을 모두 알지도 못하고 완전 똑같은 구조로 생각하지도 않으니 중요히 여기는 부분이 다를 수도 있는 것인데. 그렇기에 모든 배경을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나타나는 인지부조로 인한 오류를 최대한 대비하고자 붙이는 말들이다.
그럼에도 '객관적으로 봤을 때'라는 말은 점점 잘 안 쓰는 편이다. 고민을 듣고 내 생각을 말하는 순간 결국 그건 나의 주관이 조금이라도 관여할 수밖에 없다. 당장 어제만 해도 친구와 같은 상황에서 다른 의견을 뱉고 있었다. 그게 서로의 '객관'이라 말하면서. 세상에 완벽한 객관은 오로지 숫자에만 있는 것 같다.
위에서 말했던 첫 번째 생각에서 나는 후자를 좀 더 이해하려 하는 편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고민에 대한 결정을 이미 내렸다. 정말 하나도 모르는 상황이라면 진짜 선택이 어려운 것일 수 있으나, 대게 저런 상황은 자신이 하고자 하는 선택에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누구 하나라도 자신이 온전히 짊어질 책임에 대해 부담감을 덜어주기를 바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모든 결정은 온전히 본인의 책임이 맞다. 선택에 대한 책임을 타인이 같이 짊어지는 경우는 학창 시절까지 부모님이 해주신 역할일 뿐이다. 본인이 생각하는 고민이 있다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까?'보다 '이런 상황에서 이렇게 하고 싶은데 어떨까?'로 질문하는 것을 추천한다.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천천히 떠오르는 제일 큰 주제는 '객관이란 무엇인가?'였다. 사람은 결국 살아온 시간 동안 쌓아온 경험들로 자신만의 주관과 고정관념이 생겨난다. 모든 의사결정과 판단에서 그 점이 개입하지 않는 부분이 없다. 당장 나에게는 유쾌하고 좋은 친구일지라도 타인에게는 시끄럽고 유치한 사람일 수 있는 법이다. 각자의 주관들을 모두 하나로 모아서 단 하나의 기준이라고 말하는 것이 '객관'이라면 정말 존재할 수는 있는 것일까. 그건 모두가 약속으로 정한 법이나 언어 정도가 아닌가.
역지사지, 객관적 사고, 이런 걸 할 수 있는 사람이 정말 있을까. 수치상으로 보이는 일이 아니고서야 모든 상황에서 갖가지 경우의 수를 모두 계산하여 제일 합리적인 방안을 내놓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이게 불가능하기에 공리주의가 생겨난 것이 아닐까.
가끔씩 이런 생각에 한 번 빠져들기 시작하면 굉장히 재밌다. 지금이야 첫 소설책을 도전해 보자는 생각에 브런치에 글도 잘 안 쓰고 있었는데 간간히 이런 식의 글을 쓰는 것이 너무 재밌고 생각정리에 도움이 되었단 기억이 들어 어쩌다 한 번씩 쓰게 되지 않을까 싶다. 소설을 쓰기 위해서 고민하고 진행하는 방식을 따로 기록해 볼까-하기도 했는데 이게 회사를 다니니까 확실히 쉽지가 않다. 직장생활과 자기개발을 하면서도 글을 쓴 사람들은 정말 어떤 사람들인 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