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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다혜 Nov 07. 2019

적게 소유하는 연습을 합니다.

절약에는 큰 손 보다 작은 손이 유리해요.

친정 엄마가 바다 장어를 사서 나눠주셨습니다. 후라이팬 크기에 맞게 손질해서 천일염을 뿌린 후, 약한 불에 구웠습니다. 불이 세지면서 하트 모양으로 말려들어 갈 때, 재빨리 한 입 크기로 잘라주었어요. 엄마가 주신 귀한 장어, 조금이라도 탈까봐 노릇한 기운이 날 때면 뒤집어주기를 반복했어요. 장어집에서 맡던 특유의 장어 굽는 향이 온 집안에 가득했습니다.


딸, 사위, 손주들이 좋은 음식도 먹고 살기를 바라는 엄마 마음이 느껴졌어요. 맥주 곁들여, 정말 맛있게 먹었습니다. 어찌나 만족스러웠던지, 남편은 여동생(시누)과 전화할 때도 뜬금없이 말하더군요.


"나 오늘 장어 먹었다~"


종종 장어 한 마리, 수산 시장에서 떼와야 겠습니다.


3마리의 장어 대신 먹을만큼 2마리. 쌈채소를 양껏 사두기보다, 유기농 채소로 먹을만큼 조금만.

엄마는 처음 장어를 3마리 나눠주신다고 했어요. 좋은 거 많이 먹으라는 마음이셨어요. 선의를 거절하기 참 곤란하지만, 2마리만 받았습니다.


먹보 귀신인 제가 무려 한 마리의 장어를 물린건 큰 변화입니다. 예전의 저와 많이 달라졌어요. 뭐든 많이 갖는게 좋은 건 줄 알았고, 쌀 때 양껏 쟁이는게 현명한 줄 알았어요. 그러니 저렴한 물건을 잘 찾아내는 저의 통장 장고가 바닥을 드러내는건 많이 오른 물가 때문이라 생각했어요. 한 달 식비 80만원은 우스웠습니다. 심지어 그 땐 둘째 없이 돌쟁이 큰 딸과 3인 가구였는데도 말이죠.


'비싼 물건 쳐다보지도 않고 열심히 사는데, 왜 나는 돈을 모으지를 못 하는 걸까. 장바구니 물가가 많이 올랐다.'


하지만 이젠 장어에 곁들일 쌈채소로 유기농 깻잎과 유기농 케일을 삽니다. 한 알에 300원씩 더 비싼 동물복지 유정란을 사고, 아이들 간식은 과자보다 유거트와 우유를 줍니다. 빵을 살 때도 가능하면 유기농 밀가루와 천연 효모로 발효시켜 말린 무화과로 단 맛을 낸 다소 거칠고 건강한 빵을 삽니다.


그래도 4인가족 한 달 식비 45만원으로 거뜬히 살아갑니다.


상황은 3년 전이나 지금이나 같은데도, 지출액이 줄었습니다. 3년 전에도 종종 친정 부모님과 시부모님께서 농사 지은 식재료를 주셨고, 부부 용돈 20만원(지금은 15만원입니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땐 많이 소유하는 데만 집중했어요. 친정 부모님이나 시부모님께서 주신 재료는 물러 터져 곤죽이 되버리기 일쑤였고, 싸다고 쟁여 놓았던 세일 국산 돼지고기는 결국 냉동실로 향했지요. 냉동실은 가득차서 쳐다보기도 싫었어요. 냉동실 전구가 식재료에 다 가려져, 언제나 컴컴했하기도 했죠. 


제게 들어온 좋은 식재료와 물건을 잘 먹고, 잘 관리하는 데 소홀했어요. 저에게는 싼 물건을 찾는 연습보다, 적은 물건을 소유하는 연습이 필요했던겁니다. 장어 2마리부터 살뜰히 다 먹고, 또 먹고 싶을 때 한 마리 더 사먹는 연습 말입니다. 



절약에는 큰 손 보다 작은 손이 유리했습니다. 많이 사기보다 적게 소유하는 연습이 필요했던거에요. 이젠 냉장 소고기가 냉동 소고기 되는 일 없고, 그날 바다에서 잡아올린 장어가 냉동 장어가 되어 1년 뒤 냉장고 정리 할 때 버려질 일은 없습니다.


싼 걸 사는 데 길들여지기보다, 적게 소유하는 습관을 들이기. 삶은 간소해지고, 불필요한 스트레스를 줄이며, 환경과 절약에 도움이 됩니다. 미니멀 라이프. 어렵지만 해 볼 만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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