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에 살다보면 <멋진 신세계>의 독재자 포드를 이해하게 된다. 그가 왜 어린 아기들이 꽃을 볼 때마다 전기충격을 주었는지 말이다.
독재자 포드(*미국 자동차 회사 Ford의 상징으로 소설 속 초대 독재자 이름이 포드다.)는 공장을 돌려야 한다. 소비를 촉진시켜야 한다. 사람들이 최신의 물건에 민감하고, 새 물건을 사면서 기뻐해야 한다. 그래야 포드는 부(富)를 독점할 수 있다.
자기 자본 증식. 그게 포드가 멋진 신세계의 사람들을 4S(Screen, Sex, Sports, 그리고 Soma)로 독재하는 목적이다. 멋진 신세계 속 문명인들은 생각할 힘을 잃어야 한다. 주어진 자기 일만 반복하다가 소비하고 연애하고 스포츠와 오락만 즐기는게 '행복'이라고 철썩 같이 믿어야 한다. 감각적 쾌락이 '행복'이라고 의심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지방에 살면 자꾸 의심하게 된다. 최신의 물건이 없어도, 유행에 뒤떨어져도, 어마어마한 맛집의 음식이 아니라도, 삶이 편안하고 행복하다.
소비하지 않아도 충만한 행복을 느끼는 것, 바로 '꽃'의 힘이다. 포드가 사람들에게 전기충격으로 공포를 심어 준, 바로 그 꽃 말이다.
우리 가족은 매 주말 논다. 놀고, 놀고 또 논다. 집에 붙어 있는 법이 없다. 준비물은 돗자리와 책과 빵 정도다. 차를 타고 달리다가, 적당한 데에 선다. 산 아래에서, 절 입구에서, 해변에서, 습지 둘레길에서 걷는다. 생크림에 빵 찍어 먹고, 책 몇 장 읽다가, 가을이 깊어 나뭇가지에서 말라버린 열매를 낙엽 위에 놓으며 장식하다가, 그렇게 시간을 보낸다.
일 하지 않는 시간은 걷고, 대화하고, 안아주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 우리가 누리는 자연을 '공짜'라고 부르기 미안하다. 그만큼 아름답다. 습지를 걸으면서, 단풍을 눈에 담으면서, 사랑하는 사람과 이야기하고 웃고 떠든다. 주중에 불쾌했던 일은 습지를 한 바퀴 도는 사이, 대화를 통해 정리한다. 왜 문제였을까, 앞으로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이게 내 선에서 해결할 수 있는걸까.
주말의 휴식은 몸도 편안할 뿐더러, '어떻게 살 것인가'를 토론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놀거리가 주어진 화려한 상점이나 체험시설에서는 경험하기 힘든 시간이다.
꽃을 사랑하면, 자연에 기꺼우면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다. <굿 라이프>의 저자이자, 서울대학교 행복연구센터 소장이면서 심리학과 교수인 최인철 교수님은 '행복'을 이렇게 정의한다.
굿 라이프, 즉 좋은 삶으로서의 행복은 좋은 기분과 함께 삶의 의미와 목적 그리고 삶을 향한 품격있는 자세와 태도까지 포함한다.
- <굿 라이프> 중, 최인철 지음
<멋진 신세계>에서는 행복이 '좋은 기분'에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행복은 단순히 쾌락에만 있지 않다. 최인철 교수님의 말씀처럼 '삶의 의미와 목적, 그리고 삶을 향한 품격있는 자세와 태도'에도 행복이 깃들어 있다.
꽃에는 힘이 있다. <멋진 신세계>에서 주장하는 단편적 행복에서 벗어날 수 있는 힘이다. 소비하지 않아도 행복하다. 소비하지 않으니 시간이 생긴다. 그 시간 동안 사유하고 토론한다. 자연 옆에서는 생각이 많아진다.
그래서 지방을 사랑한다. 지방은 꽃의 세계다. 소비할 물건보다 자연이 더 넉넉하게 마련된 곳이다. 덕분에 내가 사는 아름다운 바닷가 도시, 동해시에서는 소비하지 않고도 충분히 삶을 꾸릴 시간, 경제적 능력을 추스릴 수 있다.
여기는 비록 용 안나는 개천이지만, 사유의 힘을 단단하게 갖춘 '생각하는 갈대'들이 모여 산다. 생각하는 갈대들은 용이 될 힘을 갖추기도 했지만, '용으로 살면 좋은 점과 나쁜 점'과 '이상하다. 개천인데 여기 왜이렇게 좋아?'를 먼저 생각하고 토론하는 사람들이다. 걷고 읽고 쓰고 토론할 수 있는 작은 바닷가 마을은 너무나 물이 맑은 개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