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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쁠 희 Sep 30. 2021

12 내가 꿈꾸는 미래를 위해

이직을 미룬 후 발발한 코로나19로 인한 위기 그리고 다시 그려보는 미래

이직을 하지 않기로 결정한 나는 회사에 남았다. 그리고 그 결정을 내린 지 4개월이 채 되지 않은 시점에서 코로나19가 발발했다. 2020년 3월 WHO는 글로벌 팬데믹을 선언했고, 캐나다에서도 3,4월부터 많은 회사들이 전면 재택근무에 돌입했다. 그 당시에는 손소독제, 살균제, 화장실 휴지, 종이 타월 등을 사람들이 사재기하면서 품절되는 일까지 일어나기도 했다. 그리고 정말 많은 사람들이 실업자가 됐다. 


가게를 운영하고 있던 사람들도 강제로 가게를 닫고, 배달이나 픽업 오더만을 받는 것으로 전환했는데, 처음에는 배달도 제대로 구축되어있지 않았던 데다가 사람들이 외출을 자제하면서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정부는 이런 사람들을 위한 많은 금전적인 지원을 했지만, 그럼에도 힘든 시간들을 보냈다. 우리 회사도 예외는 아니었다. 팬데믹을 겪으며 우리의 클라이언트들이 그들의 고객들을 대거 잃게 되면서, 플랫폼을 사용하는 인원으로 돈을 받던 우리 회사의 수입이 줄어든 것이었다. 모두가, 모든 게 처음이었던 우리는 앞으로 어떤 일들이 펼쳐질지 전혀 예상을 할 수 없었던 상황이었다. 사장님은 그에 맞는 판단을 내려야 했고, 수입원이 더 적어질 것을 대비해서 약 4명의 직원들을 해고했다. 열다섯 명도 되지 않는 규모에서 4명을 자른 다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나와 좀 친해졌던 시니어 상사가 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굉장히 마음이 아팠고 충격적이었던 기억이 있다. 그때 당시 나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일을 도와줄 주니어 직원을 고용했었는데 그녀가 입사한 지 한 달만에 이런 일이 생긴 것이다. 


나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내가 만약 회사를 옮겼다면 어떻게 됐을까 상상해본 적이 있다. 아마 나는 그때 실업자가 되고, 이후에 찾아온 취업난을 겪어내야 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아찔했다. 여기로 남기로 한 것은 사장님의 설득이 컸지만, 나중에는 나를 설득해준 게 너무 고마웠다. 한 편, 4명이나 나간 지금,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으면 그다음은 나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렇게 나는 나간 이들의 업무를 사람들과 나눠 조금씩 맡고 다음 스텝을 준비했다.


어느 정도 이런 상황들이 익숙해졌을 쯤에는 사이드로 새로운 코스를 들으면서 공부도 하고, 새로운 스킬들을 배웠다. 언제까지나 우울감에 빠져 있을 수 없었다. 시간은 계속 가고, 이것 때문에 버리게 되는 시간들은 너무나 아까웠다. 지금은 내 커리어의 프라임 타임(Prime time)이니까. 


벌써 이 회사에서 나는 3년 차가 되었지만, 아직도 막내 매니저이다. 그때 겪던 고충들이 100프로 해소된 것도 아니고, 숙제와 같은 일들이 아직도 내게 남아 있긴 하지만 지금은 조금 더 내가 꿈꾸는 미래에 대한 그림이 선명해졌다. 팬데믹이나 중소기업의 한계라는 벽 안에 나 스스로를 가두지 않기로 했다. 결국 이 모든 상황을 변화시킬 사람은 나 자신이니까. 주어진 상황을 가지고 나는 오늘도 내가 꿈꾸는 미래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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