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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젤리미 Aug 20. 2022

내 몸이 좋아하는 음식 찾기

저포드맵 고춧가루의 배신

오늘은 일어나자마자 칸디다균 스핏 테스트를 해봤다. 이제 막 칸디다 자가치료를 시작한지 일주일 좀 넘어가지고 무엇을 기대하겠냐마는- '혹시나'해서 해봤는데 '역시나'였다. 


유리컵 속에 길게 늘어지는 침을 보면서 여전히 내 몸속에 증식한 세균들이 많이도 살아있다는 걸 깨달았다. 찍어둔 사진은 안구 보호를 위해 생략하기로 하고- '내 몸에도 칸디다균이 많이 있을까?' 궁금하다면 자가치료를 시작하기 전에 테스트 해보고, 약 4-6주 뒤에 다시 해보는 것이 좋겠다. 


*칸디다균 스핏 테스트: 아침에 일어나자마 투명한 유리컵 속에 물을 넣고 입속에 있던 침을 뱉는다. 침이 길게 늘어나고 밑으로 깔려 내려갈 수록 칸디다균이 과잉 증식한 상태라고 보는 자가진단 테스트 방법. 


벌써부터 빠른 변화를 기대한 나의 잘못이었다. 단념하고 다시 칸디다균 자가치료 루틴을 이어갔다. 


몸의 움직임이 조금 자유로워지기 시작하면서 아침에 '운동 뽐뿌'가 일기 시작했다. 방구석에 처박아두었던 홈트레이닝 아이템, 밴드를 꺼내 들었다. 흐트러진 자세 때문에 봉긋 솟아난 승모근을 없애는 운동을 유튜브를 보며 따라해봤다. 밴드의 양쪽 끝을 잡고 머리 뒤로 팔을 왔다갔다 움직였다. 고작 몇번 움직였다고 바들바들 떨고 있는 모습을 거울로 비춰보니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나왔다. 


단 몇분만에 운동을 끝내고 오레가노 오일부터 먹었어야 했는데 무슨 정신인지 아침밥부터 차렸다. 어제 만든 저포드맵 닭가슴살 볶음밥을 마저 먹고, 아쉬운대로 그릭요거트도 한숟가락 떠먹었다. 



출근했더니 수줍게 올라와있던 귤 2개. 회사 동료가 베푼 따뜻한 인심에 기분도 좋고, 마침 저포드맵 과일이라서 더 반가웠다. 나름 돼지런한 아침 식사였다. 


건강 컨디션이 좋아지면서 나의 식단 관리는 한단계 더 어려워졌다. 식욕까지 좋아져서, 먹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먹을 수 없고 자제해야만 하는 시험에 걸려든 것이다. 조용한 사무실에서 혼자 계란 2개를 책상에 톡톡 두드려 까먹고, 다음에는 사 먹지 말아야 할 고구마 말랭이까지 뜯었다. 


고구마는 소위 착한 탄수화물이라고도 하는데, 소장에서 당으로 흡수되지 않고 대장에서 식이섬유와 같은 역할로 소화가 된다고 한다. 이런 걸 저항성 전분이라고도 하는 것 같은데- 아무튼 탄수화물이 먹고 싶을 땐 저항성 전분이 많은 음식으로 대체하는 것이 좋다고 해서 도전해본 것이었다. 


간만에 먹은 고구마 말랭이가 너무 맛있어서 한봉지를 그 자리에서 비웠더니 점점 가스가 차고 더부룩했다. 이렇게 또 하나의 '피해야 할 음식' 리스트를 발견하다니, 이것도 이득인 셈인가! 


칸디다균 자가치료와 식단관리를 병행하면서 컨디션이 어느 정도 회복을 하고 있다고 느낄 때즈음- 자연스럽게 내 몸에 맞는 음식과 맞지 않는 음식을 적극적으로 가려내기 시작했다. 


그 방법은- 앞서 다른 글에서 소개했듯 저포드맵 식단을 위주로 하되, 조금씩 고포드맵 음식을 추가해보는 것이다. 그리고 몇시간 뒤 또는 다음날 나의 몸 상태를 예민하게 느끼고 체크해본다. 


이럴 때 또 제 역할을 톡톡히 하는 것이, 아직 완벽하게 낫지 않은 나의 관절들이다. 관절 통증과 부종의 변화를 지켜보면서 그 날 먹은 음식이 나에게 맞았는지, 안 맞았는지 좀 더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이를테면- 


-삶거나 찐 고구마는 원활한 배변 활동을 도와주지만, 말린 고구마는 복부팽만감을 준다. (조건부 불합격)

-락토프리 우유에 오트밀을 넣고 전자렌지에 돌리면 고소하고 맛있는 아침 식사가 된다. (합격) 

-라떼가 너무 마시고 싶을 땐, 락토프리 우유와 디카페인 조합으로 마시면 맛도 좋다. (합격) 

-생 야채와 콩이 많이 들어간 포케 샐러드는 나의 배를 아프게 한다. (불합격) 

-소울푸드인 진라면 대신 곤약면이 들어간 컵누들면을 택했어도, 고춧가루가 들어간 국물을 많이 마시면 장에 자극이 가서 무릎이 아프다. 자세한 설명은 이 글을 끝까지 읽어보길! (불합격) 

-무알코올 맥주 한 캔 정도는 적당한 일탈감과 만족감을 준다. (합격) 

-순두부와 나물밥 조합은 그야말로 천상의 짝꿍! 언제든지 다시 먹고 싶다. (합격) 



새롭게 깨달은 것. '저포드맵 식단'만이 '무조건 정답'은 아니라는 걸 배웠다. 저포드맵에 속하는 '고춧가루'가 많이 들어간 국물을 마시면 다음날 관절이 더 붓고 아팠다. 2021년 4월 말, 강원도 여행에 가서 처음으로 무릎 관절이 붓기 시작했던 것도 고춧가루가 많이 들어간 매운탕을 먹고 난 다음 날이었다. 


얼큰한 맛을 주는 고춧가루는 나의 위장에도 자극을 준다. 내가 불닭볶음면과 엽기떡볶이를 사랑했을 때처럼 다량의 지속적인 섭취는 장 점막을 약하게 만들고, 관절염을 유발할 수 있다. '고춧가루 알레르기'를 갖게 되는 셈이다. 


어떻게 보면 진짜 피곤한 작업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고생길이 나를 더 긍정적으로 만들었다. 


진심으로, 두 발로 걸어다닐 수 있을 정도로 나아준 것만으로 감사하고, 식단 관리에 도움을 줄 수 있을 정도로 통증이 있어줘서 감사하다. 이 피곤한 작업을 기꺼이 즐겁게 이어나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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