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회 부적응자다
사실은 이 사회가 인간 부적응인데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사회 부적응자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렇다.
직장에 들어가 회사 인간으로 사는 삶이 생각만 해도 숨 막힌다. 그럼 무슨 일을 하고 싶은데? 도무지 떠올려 봐도 없다. 그냥 하고 싶은 일이 없다.
하루 종일 앉아서 일하도록 강제된 사무직 일을 하며 마치 동물원의 사자가 된 듯한 기분이었다. 움직이지도, 쉬지도 못하게 자리에 묶어 놓고 일하기를 강요 받는다. 허리고 다리고 뭐고 저려서 죽을 것만 같다. 온 몸이 살려달라고 소리지르는 느낌이다. 내 정신은 업무에 묶이고 손발은 의자에 묶여 족쇄처럼 속박당했다. 하루 종일 자유없이 살고있으니 자꾸 누가 귀에대고 "죽어야 해" 라고 속삭였다.
일의 노예, 노동 기계를 길러 내는 것이 당연한 사회에서 살기에 나는 너무나도 인간이었다. 임금 노동에 하루를 빼앗기는 것이 당연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내가 "그럴듯한 노동 상품"을 연기하며 살기란 하루하루가 고역이었다. 마음에 안 드는 직장을 다니며 하루를 삼등분으로 쪼개 사는 것도 지쳐갔다. 아침엔 피곤을 견디며 운동하고, 출근해선 저린 다리를 두드리며 일하고, 퇴근하면 이직 준비하는 일상. 와중에 사무직은 정말 안 맞는 것 같다며 다른 분야를 기웃거리는데 뭘 해야 좋을지 감도 안 잡혀 매일이 고민의 연속이었다.
뭘 해야 행복할까. 어떤 일을 해도 내가 자유 없이 산다면 불행할 것만 같아서 미치겠다. 이 일을 하겠다고 하면 누가 시켜줄지도 걱정이다.
대체 왜 우리는 하고 싶은 것을 하는 데에도 자격을 인정받고 허락받아야 하는 걸까? 애초에 왜 살아 있으려면 모든 일에 돈을 지불해야 하는 걸까? 단지 살아 있기 위해 왜 죽은 듯이 일 해야 하는 걸까? 그냥 세상이 제발 나를 살아 있게만, 가만 놔뒀으면 좋겠는데. 내 한 몸 건강하게 살아있기만 했으면 좋겠다는 소망이 그렇게 큰 욕심인가.
살아갈 자유조차 박탈당했다는 생각에 가슴이 답답하다. 주저앉아 절규하고 싶고, 어디론가 달려가 그냥 하염없이 소리나 지르고 싶었다.
임금 노동은 거래가 아니다. 이건 명백한 갑을이 존재하는 노예 계약이다.
"네가 일 하고 싶어서 돈벌겠다고 들어왔잖아, 이러면 안되지" 라고 말할 수 없는 이유는, 돈을 버는 일이 선택이 아니라 강제가 됐기 때문이다. 돈을 안 벌면 굶어 죽는 상황에서 돈 버는 일은 자발적 거래일 수가 없다. 누가 일 하고 싶어서 일하는가? 다들 굶어 죽을 수 없으니 억지로 꾸역꾸역 출근한다. 우리의 꿈은 모두 굶어죽을 일 없는 백수가 아니던가.
한 쪽은 돈에 생계가 달려있는 상황에서 제발 입사라도 시켜달라고 개같이 빌어야 겨우 "오케이, 너 200줄테니까 300만큼 일하고 우리 회사 와서 허리디스크 터져도 척추수술 1800만원은 네 돈으로 내야하고 앉아있느라 만성질환 걸려도 병원비는 네 돈으로 내야 하는거 알지?" 라는 말을 듣는 게 현실이다. 이걸 거래라고 하면 안되지. 엄연히 노예 계약이다.
거래는 "나 당신네랑 이 조건에서 이 일 해보고 싶은데 관심있음 연락주세요"를 할 수 있어야 거래다. 이 거래가 성사되지 않아도 내가 큰일나지 않아야 거래다.
그런데 현대 사회에서 노동은 안해도 죽고 해도 죽는다. 노동력을 바치고 남의 돈 받으면서 비굴하게 살아야 하는 노예 인생이 전혀 당연하지 않은데, 삶의 주인 의식을 가지고 이 세상을 살기에는 세상이 허락하지 않는 기분이었다.
남들은 추울 때 히터 나오는 곳에서 편히 앉아 일 하는 게 복된 거라 했지만, 정작 그렇게 일하는 나는 추우면 추운대로 찬 바람 맞으면서 정신 차리고 싶었다. 뛰어나가 제설이라도 하고 싶었고, 계절을 느끼고 싶었다. 좁은 사무실 한 구석에 틀어박혀 종일 똑같은 일만 하다 인생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회사 근처를 산책할 때마다 골초들이 연초 태우는 냄새 맡는 것도 지겹고, 하루 종일 앉아만 있다가 몸이 약해지는 것도 싫다. 기분 탓인지 몰라도 벌써부터 체력이 쓰레기가 되고 있는 것 같다. 돌려줘 나의 심폐지구력.
나는 이 노동 감옥에서 어떻게든 숨 쉴 구멍을 찾고 싶었다. 도무지 살아있는 것 같지가 않고 껍데기만 남은 기분이었다. 그 껍데기조차 아파서 못 살겠다 비명을 질렀다. 사무직이 아니면 해결되는 일일까? 장담할 수 없었다. 수영 강사 일도 자유가 없기는 마찬가지였고, 심지어 수영을 좋아하는데도 앞으로 수년간 내 의지와 상관없이 출근해야 한다는 생각에 답답하고 괴로운 건 변함없었다.
아니, 애초에 인간은 이렇게 오랜 시간 노동하도록 설계되지 않았는데. 잘못 돼도 사회가 잘못된 거지, 내가 지극히 인간이라는 이유로 고통받아야 한다니. 이건 명백히 학대다. 이런 방식으로 인생을 헤쳐나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삶의 의미도, 이유도, 의지도, 의욕도, 목적도 꺾이고 모두 잃어 절망스럽다.
왜 인간은 자발적으로 자기자신을 학대하며 살아가길 택한 걸까? 안 해도 되는 일을 굳이 굳이 만들어서까지 말이다. 세상에 불필요한 일인데 돈이 된다는 이유로 만들어진 가짜 노동에 하루를 태우며 살아야 하는 걸까?
나는 돈이 아니라 사람을 위한 일을 하고 싶고, 이왕이면 강제로 노동하는 일은 최소화하고 싶다. 내 하루하루를 정신적, 물리적으로 죽이는 일을 그만두고 싶다. 그만둬도 잘 살 수 있다는 걸 믿지 않는 사람들 모두에게 보여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