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취같은 새벽
다 지난날 밤의 술 때문에 벌어진 숙취 탓이리라. 개운히 깬 것도 아니면서 일찍 일어났다는 이유 하나로 머리를 굴리며 하루를 알차게 보낼 계획을 세워본다.
지금부터 글을 쓰고, 몸이 뻐근해지면 햇볕이 충만한 열 한시부터 삼십 분씩 걸으면서 새로 생긴 카페에 들러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한 잔 사 와야지. 뭐 이런 계획들. 지켜질지는 사실 아무도 모른다. 나도, 내 마음도 내 머릿속도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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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밥 먹으면서 책을 놓지 않는 딸에게 독한년. 글이 밥이 되지도 않는데 쎄가 빠지게 일해서(등골 휘어질정도로 열심히 일해서) 그 돈 다 필요없는 책사는데 쓰고 밥은 오지게 축내구. 하며 새벽부터 눈을 흘긴다.
나는 그래서 엄마에게는 아무말도 하지않고 침묵을 자켰다. 일찍 위장에 들이부은 따끈한 미역국의 국물 때문에 잠이 쏟아지기도 했다. 요즘은 두 눈이 무거워지는 속도가 제멋대로다.
며칠 전엔 눈이 왔다. 그 덕분인지 공기는 더 차가워졌고, 내 몸은 더욱더 따뜻함을 찾는다. 따뜻함이 스스로 열을 내는 방법은 아니고, 가슴속에 품어온 이야기들을 그러모으는 식으로 정적인 활동으로 내는 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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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의 단편집을 읽고 있다. 지도의 암실부터 읽는데 처음에는 대관절 이게 무슨 말인가 싶었다. 한 문장을 읽고 한 문단을 겨우 읽으면 왜 이 말이 나온 건지 몰라 다시 앞으로 가야 했다. 그래서 더는 못 읽겠다며 집어던지듯 시피 했던 이상 단편집을 반절 정도 읽게 되었다. 휴업과 사정은 조금 사정이 나은 편이었다. 그래도 장르 구분은 되었으니 말이다. 한국의 페터 한트케 같다고 생각했다. 아니면 한트케가 이상을 닮았다고 해야 하겠지. 지도의 암실은 [관객모독]에서 받았던 충격보다는 확실히 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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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원래 꿈이었던 소설집을 내려고 꾸준히 습작 중이다. 아직 일상을 길게 늘어뜨리는 글을 써내지 못하고 있어서, 그리고 연필과 종이에 친숙해지는 버릇을 들여 한 자 한자 늘려가고 싶어서 엉덩이를 의자에 붙여 집중하는 버릇을 들이고 있다. 이렇게 하다 보면 일상으로부터 시작해서 결말까지 쓸 수 있겠지. 하며 펜을 잡는다.
오늘은 만년필의 카트리지를 한번 리필했다.
나는 나에게 잘했다고 칭찬해 주었다
그래도 뭔가를 하나의 닙으로 꾸준히 써왔으니
잉크가 닳은 것이겠구나. 싶어서 뿌듯했다.
종이와 펜,
그리고 타자기.
노트북.
평소 글맛을 찾으려고 무던히 노력했다고 생각했는데, 생각해보니, 이 셋은 아예 찾지 않는 것이 더 나을뻔 하였다. 오로지 종이와 펜만 있었으면, (차고 넘치는 것이 종이와 펜인데) 그것 뿐인줄 알고 꾹꾹 집중하여 글을 썼을텐데. 머릿속에 있는 생각이 아니라 손의 감각을 좋게하려는 것에 집착한 결과로 나는 아예 글에 대한 방향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
이걸로 쓰고 있으면 아 저것은 어떨까. 저것이 더 가볍고 타자 속도도 빨라지지 않을까. 아니다. 저것은 가벼워도 너무 현대스러워서 영감이 떠오르지 않아. 하면서 미련하게 옛날 타자기로 글을 치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하면 나는 한심한 내 모습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글쓰는 것을 중단한다. 그리고 그 가벼운 현대식 글쓰기 문물로(노트북) 넷플릭스의 최신 드라마나 영화를 검색하여 시청하고 있다.
이토록 내면은 소란한데, 가지고 있는 것 중 풀어내고 싶은 이야기들이 많은데.
그런데 나는 한낱 물건에 갇혀 영감을 이유로 미신적인 행위나 하는 것처럼 앉아있으니 얼마나 부끄러운지.
그래서 나는 다시 시작했고, 물건들을 치우기 시작한다. 내 내면의 소리를 받아 적기 위해. 어떤 위대한 작가는 말했다. 내면의 질문에 주인공의 이름을 붙혀주고 그들이 하는 말을 그대로 받아적기만 하라고. 그게 바로 소설이라고. 그게 바로 이야기라고. 그게 바로 당신이 하고 싶은 말이라고.
소설은 나의 독백이다. 아무도 들어주지 않지만 눈으로 볼 수있는 독백. 아직은 혼자 소란하지만 언젠가 이 작은 독백같은 소란을 이해해줄 독자가 있겠지? 그 전에 떠오르는 생각을 아무데나 써재길 생각이다. 혹시나, 이것이 내가 앞으로 쓰는 모든 글의 작가노트가 되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