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셰익스피어: 사랑하는 이들이 들어옵니다 / 7 길에서 만난 책
사랑하는 이들이 들어옵니다
007. 길에서 만난 책
프랑스에 교환학생을 갈 때 꿨던 꿈.
프랑스는 예술의 도시고 영화의 발상지니까 가면 왠지 예술 감각이 충만한 사람이 되어 돌아올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부족한 준비로 인해서 프랑스에서 프랑스어로 된 수업은 듣지 못하게 됐고, 영어로 되어 있는 수업들 - 그중에서도 '영미 문화'와 관련된 수업 들을 위주로 커리큘럼이 짜였다. 그게 인생의 첫 셰익스피어였다. 영어에도 구어가 있고 이제는 쓰이지 않는 단어가 있겠지. 평생에 걸쳐 영어를 배워 왔는데도 새로운 것들이 많았다. 그래서 그 수업이 재미있었느냐면 딱히 그렇지도 않았다. 암기가 중심이 되던 것도 있고, 그때에 읽었던 리처드 3세가 구미가 당기는 내용도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이제는 미국에서 영화를 찍는 사람이 되었다. 운이 좋게도 참 여기저기를 많이 다녔다 싶다. 뭐라도 하고 싶어서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다 보면 무언가가 생기게 된다. 영화를 찍기 위해 소품을 사러 굿 윌 마켓이라는 미국의 기부를 중심으로 굴러가는 자선 마켓에 다녀왔다. 주로 옷과 잡화를 위주로 판매하고, 귀여운 그릇이 많아서 종종걸음을 하곤 한다. 이 번에는 주황색 티셔츠와 식판, 그리고 침대 이불보가 필요했다. 생각해 보니 책도 한 권, 그래서 만나게 된 책이 이 "A Midsummer Night's Dream"이다. 한국어로는 한여름 밤의 꿈.
유사 제목의 노래로 친숙함은 있지만 어떤 내용인지 비극인지 희극인지도 알지도 못하는 채로 헌책 표지에 있던 당나귀가 귀여워서 책을 구매했다. 물론 원서에 미번역본이라 한국어 이북을 함께 곁들여서 감상했다. 책의 구석구석에는 삽화와 영어로 된 해석이 있었고 당최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없는 파트들은 한국어 개정본을 더해 읽으니 어떻게 어떻게 읽을만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익숙해진 순간부터는 재미가 있더라. 아, 이런 내용이었구나. 이렇게나 우리 문화에서도 많이 인용되곤 하는 책이 이런 내용이었구나.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교양처럼 느껴지는 이름이지만, 막상 셰익스피어 고전을 읽으려고 하면 마음처럼 쉽지가 않다. 일단 내가 익숙하고 잘 아는 그런 형태가 아니지 않나. 극이라는 건 결국 무대 위에서 만나야 하는 거 아닌가. 이걸 '읽는다'라는 행위에는 도대체 어떤 의의가 있을까. 회의감이 가득한 상태로 책을 열었지만 무지렁이였던 나를 향한 반성이 주가 되는 시간들이었다.
헌책을 읽다 보면 낱장이 떨어지기도 한다. 이 책도 수십 년을 책으로 존재하면서 이곳저곳을 거쳐왔겠지. 그래서 읽는 동안 한 장 한 장을 잃어버리기도 했다. 꽤 오랜 시간에 걸쳐서 읽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책을 찢어먹기 좋다. 찢어먹는다는 것은 말 그대로 책을 낱장으로 뜯어도 보고 오려도 보고, 찢어도 보면서 내가 품어 가고 싶은 파트를 정확하게 알아가는 거다. 책은 본래 많은 이들에게 읽히기 위해서 생산되고 판매되지만 오랜 시간을 거쳐 가면서 오래되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보존 가치가 있게 되기도 한다.
트리프트 스토어에서 저렴한 금액에 구매한 책이 어느 정도의 보존 가치를 지니는지는 모르지만 내가 한 고전을 찢어 먹어 보면서 이 맛 저 맛을 느껴봤다는 사실은 기존의 다른 어떤 책을 봤던 때보다도 만족감이 높다. 우연으로 시작했지만 사실상 처음으로 각색한 것이 아닌 셰익스피어의 이야기를 자발적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보았다는 성취를 이루어서 기쁘다.
+
내가 읽었던 한국어 E book은 평생을 거의 셰익스피어 연구에만 몰두하신 분의 번역본이었다.
그래서 기대가 많았는데 생각보단 어려웠다. '만화로 읽는 고전' 시리즈에 물들여진 탓이다.
[100권의 의미]는 책을 100권을 읽으면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
그리고 그 책들이 개인의 삶에 어떤 의미를 형성하는지 알아보고자 시작한 프로젝트입니다.
2021~2023년에 걸쳐 100권을 읽은 후 같은 리스트로 두 번째 100권을 시작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