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5. 공부하던 영역의, 공부와 관계없는 책 - 프랑스 요리의 기술
잘 되라고 하는 말
005. 공부하던 영역의, 공부와 관계없는 책
프랑스 요리의 기술,
줄리아 차일드, 시몬 베크, 루이제트 베르톨
공부가 싫은 이유 중 가장 큰 것은 그 끝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수능 공부를 하다 보면 수능을 보게 되겠지. 외국어 공부를 하다 보면 외국어 능력 시험을 보거나 그 외국어를 활용할 상황에 처할 테다. 그보다 더 이상적인 생각은 공부의 반복적이고 끝이 보이지 않는 과정 속에서 잘 떠오르지 않는다.
이제 더 이상 "프랑스어를 배우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됐다"고 말할 수 없다. 2018년에 프랑스에 가기 전, 반짝 열심히 한 것을 기준으로 삼으면 발싸 5년 넘도록 공부해 왔기 때문이다. 파리에서 교환학생도 했다. 또 프랑스인과 만나서 회화를 할 생각을 하면 등에 식은땀이 줄줄 나고 최대한 피하고 싶다. 프랑스어가 어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그만큼 열심히 하지 않았던 나의 모습을 돌아보고 싶지 않다. 공부가 이렇게 사람을 비겁하게 만든다.
지난 100권을 읽을 당시에는 한국사 능력 검정 시험에 정신이 조금 팔려 있었다. 시험과 관계없는 한국사 책을 읽으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공부의 연장선에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럼 하나도 시험에 도움 안 될 책을 읽어 보자. 마치 대학을 입학하는 수험 생활 시절에 영화만 주야장천 봤던 영화과 학생 지망생이었던 나처럼. '프랑스'라는 키워드로 검색해서 나온 책 중에 가장 뜻밖의 책을 고르려고 노력했고, 사상가와 철학자들의 유혹에도 불구하고 이곳에 안착했다. <프랑스 요리의 기술>, 프랑스에서 요리를 배운 후에 그 기술들을 미국의 환경에 적응시키려고 노력했던 저자들이 악전고투해 온 결과들의 집결체다.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요리를 시도하면서 알게 된 것은, 각 나라의 재료가 다르고, 그 맛도 매우 다르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미국 고구마에서는 엄한 맛이 난다. 달달하고 보들보들해서 한 개를 먹으면 질리는 줄도 몰랐던 나의 고구마가, 여기서는 호박에 가까운 질퍽한 맛이 난다. 땅도, 재배하는 사람도 다르니 조리하는 방식도 달라져야 마땅할 거다. 저자들은 자신들이 연구한 내용을 친절히 공유하며, 그들이 겪어온 고난과 극복을 담담하게 전해준다.
레시피 북이라는 건, 결국 읽는 사람이 성공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작성되는 책이다. 자기 계발서를 읽다 보면 내가 자신을 채찍질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부끄러워지고 그들이 건네는 일침에 초라해지곤 했다. 그러나 레시피 북은 재료를 어떻게 어루만지고 다루다 보면 된다고, 그리고 이런 것들이 없다면 다른 것도 괜찮다며 어르고 달래준다. 실패하기도 한다고, 망친 음식을 겪어 봐야 또 더 맛있는 음식을 만들 수 있다고 말한다.
각기 다른 성격의 재료들이 도구 위에서 어떻게 움직이는지 이렇게 오래 들여봤겠구나. 그리고 그것들을 맛보고 음미하면서 그들이 하고 있는 행위들에 대해 더 자세히 이해하게 됐겠구나. 레시피의 한 줄 한 줄은 간단한 지침에 가까운데도 가만 들여다보고 있자면 평화롭고 다정한 감정을 느낄 수 있다. 읽는 사람도 그 같은 과정을 거쳐 맛있고 행복한 식사를 하길 바라는 마음이 함께 해서일까. 이 책을 읽고 요리를 시도하진 않았다. 그 점이 가장 마음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