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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승주 작가 Dec 17. 2017

혁신가 로버트 오언과 혁신가 공자의 공통점

사회혁신의 관점에서《로버트 오언》, 《공자, 인간과 신화》를 읽었다.


공자가 사회 혁신가라고?


로버트 오언이라는 이름을 아는 사람은 누구나 그가 위대한 사회 혁신가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산업혁명이 영국을 휩쓸어 대부분의 영국인들이 공장의 부품으로 전락할 때 사회를 발견하고 협동의 원리라는 소중한 전통을 남겼다. 협동조합으로 질 좋은 생필품을 저렴한 가격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공유할 수 있었고, 아동교육과 보육, 성인교육과 각종 대중교육시스템은 혁신의 알맹이였다. 노동자들에게 질 높은 위생과 교육, 생필품이 제공되니 자신감을 찾은 그들은 노동조합을 조직했고 나아가 정치적 권리를 위한 폭넓은 단결 운동을 전개할 수 있었다. 


 공자 이야기를 해보자. 우리가 '유교 문화의 잔재'라는 말을 할 때 연상되는 인물은 공자다. '공자님 말씀'이라는 비유 역시 입바른 소리만 하는 고리타분한 이미지다. 그런데 공자에게 '혁신가'라는 수식어를 붙인 것은 영 어울리지 않은 느낌도 들 것이다. 공자는 눈에 띄는 업적을 남긴 것도 아니고, 높은 자리에 올라갔던 것도 아니고, 뜻을 얻었던 적도 없다. 평생 견제와 배척 속에 살면서 정치적으로 이뤄놓은 것은 거의 없이 세상을 등졌다. 하지만 그에게 '혁신가'라니? 공자 연구의 고전으로 꼽히는 H.G.크릴의 《공자, 인간과 신화》에는 비교적 담담하게 기록돼 있다. 


그의 생애에는 별로 극적인 요소가 없었다. 클라이막스도 순교도 없었으며, 그의 주요 포부 중 실현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공자가 세상을 떠났을 때 모든 사람들이 그를 실패자로 여긴 것도 분명하지만, 그 자신도 그렇게 생각한 것이 확실하다. - 《공자, 인간과 신화》


사정이 이와 같다면 공자가 동양인을 대표하듯 떠받들여지는 것은 그저 신화에 불과한 것인가? 공자 스스로가 기여한 것은 없을까? 공자에 관심 갖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떠오를 의문을 나도 가졌다. 어떤 분야의 원조를 신격화하는 동양 특유의 훈고학적 전통이 있고, 공자 역시 그렇게 포장된 것은 사실이지만 공자 스스로 이뤄낸 부분도 분명하다는 게 나의 결론이다. 


내가 로버트 오언과 공자의 '혁신적'인 공통점을 찾아내려고 한 까닭은 위대한 혁신이 가지고 있는 특징들을 기억하기 위해서다. 두 사람의 공통점을 비교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날 것이다. 


공자와 로버트 오언의 공통점


첫 번째 공통점은 '교육'이다. 두 사람 모두 교육에 인생의 대부분의 시간과 정력을 들였다. 그리고 그들이 쏟은 노력은 혁신의 혁신을 거듭하는 뿌리가 되었다. 그들이 거둔 혁신은 대개 그의 제자들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먼저 공자의 교육을 받은 제자들이 이뤄낸 것부터 살펴보자. 


공자는 무혈혁명을 달성하려고 노력하였다. 즉 왕위를 세습한 군주로부터 실질적인 권력을 빼앗아 공적을 기준으로 선발된 대신들에게 그것을 부여하고, 정부의 목적을 소수의 권력강화에서 전체 백성의 행복과 복리를 추구하는 것으로 바꾸려 하였다. 그러나 그는 단순한 이지적인 확신만으로는 혁명을 달성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자신이 생애를 바친 주의주장에 대한 참된 정열을 제자들에게 불붙이려고 노력하였는데, 이 점에서는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다. 이 '도道의 기사단'은 (아더 웨일리의 적절한 표현을 빌자면) 후세 기독교 기사도에서 발견되는 것 못지 않게 헌신적인 정신으로 충만하였다. - H.G.크릴의 같은 책


오언의 경우는 뜻밖의 추종자들에게 복음 수준의 영향력을 끼쳤다. 


이렇게 실패로 끝난 공동체 건설의 노력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이 있었으니, 노동계급 사이에 오언의 영향력이 크게 증대되었다는 점이었다. 영국을 떠나기 전에 오언이 주로 직접 대화를 트고자 했던 대상은 부유하고 영향력이 큰 이들이었지만, 이미 그때부터 그의 핵심 학설들은 당시 빠르게 증가하고 있었던 도시 노동자 계급에 훨씬 친화적이었고 이들을 풍부한 토양으로 삼아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특히 좀 더 젊은 세대의 노동자들 사이에서는 오언주의가 희망의 복음으로 호소력을 가지고 있었고, 바람직한 이상뿐만 아니라 경제를 건설할 정책의 핵심 요소들까지도 제공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 G.D.H.콜 《로버트 오언》


이미 위의 인용문에서도 나타나듯 오언은 급진주의와 정치 운동을 좋아하지 않았다. 10시간 노동제 운동에 헌신하였지만(말년에는 8시간 노동제를 옹호한다) 국회의원, 기업가, 종교 지도자를 만나 설득하는 데 집중했다. 오언의 혼을 담은 '공장법 입법'은 누더기가 되었지만 어쨌든 당시 영국 분위기에서는 파격적인 반향을 얻으며 통과되었다. 공장에서 고용할 수 있는 최소 연령은 10세가 아니라 9세로 낮아졌고, 노동 시간 제한은 10시간이 아니라 12시간이었으며 식사시간을 포함할 경우는 13시간 반이었다. 하지만 16세 이상의 노동 시간에 대해서는 아무 규제가 없었고 어떤 종류의 감독 조항도 없었다. 강제성의 한계가 있었다는 이야기다. 벌금은 두 배로 늘었지만, 법령을 집행할 사람이 아무도 없었으므로 사실상 무의미했다. 오언조차도 이 법은 자기와는 전혀 무관하다고 선언할 정도였다. 한국에서 김영란법이 어떻게 처리되는지 보면 오언의 공장법 처리 과정이 이해될 것이다. 하지만 오언이 추진한 공장법은 오늘날까지도 중요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법은 보통의 시장에서 채용한 노동의 조건에 대해서도 국가가 규제를 가할 권리가 있다는 점을 처음으로 확립했으니까. 


오언과 공자는 비주류에 관심이 없었고 사회의 주류를 설득하는 데 온 힘을 기울였다. 공자는 민중의 편에서 한마디도 하지 않았고, 로버트 오언 역시 노동자에 관심이 없었고 정치 투쟁은 더더욱 싫어했다. 당연히 예상되는 결론이지만 권력자들은 처음에는 오언의 말에 관심을 표했지만 지겨워하기 시작했다. 관심을 가진 까닭은 오언이라는 지렛대를 이용해 노동자 계급과 대다수의 하층민들에게 이미지 광고를 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오언이 종교를 비난하고 사회적 책임의 부담을 늘리기 시작하자 싸늘해졌다. 공장법 추진 결과를 부자와 권력자들이 어떻게 생각했을까? 아마 정나미가 떨어지지 않았을까? 하지만 이 과정을 지켜본 노동자, 젊은이, 하층민 등은 오언의 생각은 부자들이 아니라 자신들에게 필요하다는 걸 서서히 인식하기 시작했다. 


공자의 언행이 담긴 《논어》를 읽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귀족과 관리를 위한 책이다. 노동자나 서민, 백성을 위한 말은 하나도 들어 있지 않았다. 공자에게 백성은 '타자'에 불과했다. 대화의 대상은 철저히 귀족층으로 제한되었다. 심지어 "여자와 하인들은 잘 해주면 기어오르려고 하고, 거리를 두면 원망하는 족속들이다"라고까지 말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생각나지 않는가? 고대 세계의 귀족들이 가지고 있는 사고방식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공자 철학의 목표는 백성이었다. 백성을 정치의 주체로 인정하지 않은 대신 모든 책임을 지도자에게 돌렸다. 군주가 선량하고 유능하다면 백성을 처벌하지 않아도 되며, 흉년에 백성 세금을 늘리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며, 백성에게 군사 교육과 기본 교육을 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당시 백성을 현금인출기 정도로 생각하던 귀족들에게 백성 자체가 국가의 존립 이유이며 국가 운영의 목적이라는 공자의 주장은 혁명적인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강조할 만한 점은 둘 다 '도덕 개혁가'였다는 점이었다. 인간의 심성을 잘 다스려 사회 변혁을 이룬다는 주장은 한가해 보일 수 있지만, 이것이야말로 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방편이었다. 로버트 오언은 당시 권력자들의 선한 심성을 자극하려고 무척이나 애썼고, 공장 노동자들이 정직하게 노동하고 전 생애에 걸친 체계적인 교육을 통해서 시민의 심성을 가질 수 있도록 애썼다. 공자 역시 국민교육에 역점을 두었다. 모든 사람에게 일정한 교육을 베풀어야 한다는 주장과 패기 있는 평민을 교육받은 '군자'로 만들려고 노력한 것은 결국 세습적인 귀족질서에 최후의 일격을 가했다. 귀족들은 공자와 그의 제자들이 제기한 파괴적인 이론에 의해 수세에 몰리고 나서야 명확한 정치 철학을 발전시켰다. 당대의 정치 문화가 합리적인 수준으로 높아지도록 끊임없이 압력을 가한 것은 공자의 공적이다. 


로버트 오언과 공자를 사회 혁신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게 중요한 까닭은 앞으로 사회를 혁신하려고 할 때 어떤 점을 고려해야 하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대중들은 급격한 것을 싫어한다. 적극적인 정치 참여보다는 어떤 권리 주체로서 인정받기를 원한다. 대중을 지배하는 자들 역시 급진적인 사람들과는 대화 자체를 거부한다. 이 두 계층과 대화하기 위해서는 젠틀하고 합리적인 캐릭터가 필요하다. 오언과 공자 같은 캐릭터 말이다. 나는 이들이 '뜻 밖의 혁신'을 이뤄냈다고 생각한다. 시대가 역동적으로 변한다고 하더라도 지켜야 하는 인간적인 덕목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시대에 휘말리지 않고 인간의 가치를 지키는 방법이다. 스스로 성과를 내기 위해서 혼신을 기울이기보다는 자기가 해야 할 것을 함으로써 다음 세대에게 혁신의 기회를 넘겨준 것은 내가 배우고 싶은 점이다. 사회 혁신가들이 빠지기 쉬운 가장 위험한 함정이자 유혹이 자기 세대에 이루려는 욕심이 아닐까? 이것을 '기필하다'(期必-)고 한다. 진정한 혁신을 이룰 수 있는 사람을 키우고 스스로 거름이 되는 사람이야말로 사회를 근본적으로 혁신시킬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로버트 오언과 공자는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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