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내가 있는 곳은 집 앞의 한 커피 전문점이다. 방금 전까지 다듬고 있던 글을 어느 정도 작업한 뒤에 바깥뜰로 나와 머리를 식히고 있었다. 이내 한 젊은 커플이 나와 담배를 피웠다. 일단 보기가 좋았던 건 이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녀가 사이좋게 담배를 피우고 있는 모습이었다. 세상이 점점 변해가고 있구나, 하는 실감이 들었던 것도 그 때문이겠다. 건강을 위해서라면 피우지 않는 것이 좋겠으나, 그것도 그들이 결정하고 선택해야 할 일이다. 하긴 나도 담배를 피우는 주제에 누가 누구를 탓하겠는가?
다만 그들에게 고마웠던 건 그리 흐뭇하진 않았어도 그들이 무슨 얘기를 나누는지 다 들릴 만큼 큰소리로 떠들었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내게 글감의 소재를 던져주었다. 아무 생각 없이 하늘을 보고 있는데, 그들의 얘기가 들려왔다. 굳이 엿들으려고 애를 쓸 필요도 없었다. 불과 5m 정도 거리에 있었으니 두 사람이 속삭이지 않는 한 듣지 않으래야 듣지 않을 수 없었다고나 할까?
"야, 여기 물이 왜 이래?"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야?"
"아니, 무슨 커피 매장에 노친네들이 왜 저렇게 많냐고?"
"아, 난 또 뭐라고. 뭐, 커피 마시러 왔겠지?"
문제를 제기한 여자에 비해 남자의 반응은 태연하기 그지없었다. 뭐 그럴 수도 있지, 하는 여자를 보며 남자가 되물었다.
"다른 건 그렇다고 쳐. 여기가 무슨 시장 바닥이야? 자기들만 있는 것도 아니고 저렇게 떠들면 다른 사람은 어떡하라고?"
사실 이 점은 나이 든 사람들이 반성해야 할 부분이 맞다.
노년에 가까울수록 마치 그들은 그 어느 누구도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듯 자기들 마음대로 행동하는 경향이 강하다. 매장 내에 듣기 좋은 음악이 흐르고 맛있는 냄새가 가득한 이 좋은 곳을 순식간에 시골 장터로 둔갑시켜 버리는 힘이 그들에겐 있었다. 솔직히 같이 늙어가는 처지에, 그들을 보고 있자니 오히려 내가 민망해질 정도였다.
"너무 그러지 마. 우리 엄마도 시간만 나면 친구분들과 이런 데 가서 커피 자주 마신대."
"그래도 어머님은 저렇게 개념 없이 행동하지는 않을 거 아냐?"
"그거야 모르지. 우리 엄마도 평소에 말은 별로 없지만, 친구들끼리 모이면 안 그러지 않겠어?"
"아무튼 나이 든 사람들이 나이에 어울리는 행동을 했으면 좋겠어. 영 자신이 없으면 집에 붙어 있든가."
"네가 말하는 나이 든 사람들의 기준이 얼마야?"
"글쎄, 한 오십이 넘으면 이런 데에 오지 않는 게 좋지 않겠어?"
오십 대 중반인 내가 괜히 켕기는 구석이라도 있는 듯 몸이 움츠러들었다. 조용히 매장 안으로 다시 들어와 노트북 앞에 앉았다. 자리를 잡고 앉았지만, 내내 그 남자의 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오십이 넘으면 이런 데에 오지 않는 게 좋지 않겠어?'
원래부터 난 혼자 있으면 굉장히 조용한 편이다. 그 흔한 기침이나 재채기 한 번 없이 쥐 죽은 듯 앉아 있곤 했다. 게다가 그 남자의 말을 듣고 나니 어떤 소리를 내는 게 더 부담스러웠다.
어쩌면 생각 없이 내뱉었을지도 모르는 그 말에 팔자에도 없는 타인의 눈치를 보게 생겼다. 어떻게 행동하든 자칫하면 진상 아닌 진상을 부리는 나잇값 못하는 추한 사람으로 비칠까 싶어서였다. 의자를 바짝 끌어당겨 노트북 위에 빠르게 글자들을 배열해 나간다.
이 좋은 기회를 내가 놓칠 리 없다. 그들이 말한 내용을 토씨 하나 안 틀리고 그대로 옮겼다고 장담하기는 어려울 테지만, 그들의 대화를 나름 재구성해 보았다. 다시 생각해도 괜스레 헛웃음만 난다. 그래도 나는 그나마 낫지 않느냐는 변명 아닌 변명을 해 본다. 혼자 와서 바닐라 라떼를 한 잔 시켜놓고는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또 아무런 소음도 발생시키지 않으며 조용히 글만 쓰고 있다. 아직 그럴 만한 나이는 아니라고는 해도 문득 '노 시니어 존'이라는 문구가 생각이 났다.
그냥 미친 척하고 그들이 앉아 있는 자리로 가 그들에게 한 마디 던져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염병할! 니들은 안 늙을 줄 아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