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추어 사진관 _ ep 03
“거길 왜 또 가?”
“음... 그게 말이지... 음.. 그게.. 저기... 음... 음…. ”
호주 여행을 또 간다는 나에게 주변 사람들은 평범하지 않다는 시선을 보냈다.
“호주가 그렇게 좋았어?” 엄청 좋은지는 잘 모르겠다.
“비행기 표를 싸게 구한 거야?” 그럴리가.
“야, 그 돈이면 안 가본 나라를 가.” 일리 있는 말이다.
“돈이 남아도냐?” 카드빚을 달고 산다.
“거기 물가가 싸?” 물가로 치면 태국을 갔겠지.
누군가에게 여행이라 함은 한 번 다녀왔던 곳을 또 가는 것이 돈 낭비, 시간 낭비를 의미할지 몰라도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지 않다. 전에 갔었던 상점에 들러 전에 봤었던 가게들이 여전히 건재하는지 훔쳐보는 재미, 매번 늦게 오던 버스가 여전히 늦게 오는지를 확인하는 재미, 사진으로 남겼던 장소에 다시 방문해 얼마나 변했는지를 비교해보는 재미.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큰 재미는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내가 얼마나 다른지를 느껴보는 재미이다. 정말 신기한 것은 예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같으면서도 달라서 같은 곳에서 같은 것을 봐도 다른 감정이 느껴질 때가 있다는 것이다. 분명 예전에는 지루하게만 보였던 미술관인데, 그래서 굳이 들어가지도 않았던 곳인데 다시 방문하니 인상파 화가의 그림이 너무나도 아름다워 보여 반나절을 보내기도 하고, 뭐 볼 것이 있냐며 왜 가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던 전통시장이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다. 물론 누구와 함께했느냐에 따라 같은 장소가 다르게 느껴지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래서 나는 굳이 한 번 여행 했던 장소를 또 방문하는 것에 거부감이 없다. 물론 돈과 시간이 허락하는 한에서. 나는 이를 리마인드 여행이라 부른다.
유럽의 많은 국가에 다 가보지도 않았으면서 굳이 영국에 또 갔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 였 던 것 같다. 대학 시절 짧게나마 살았던 곳에 5년 후 직장인이 되어 다시 방문하면 어떤 느낌일지 궁금했고, 내가 한국에서 아웅다웅 취업 준비를 하는 사이 마음의 고향 영국이 얼마나 변했는지도 궁금했다. 그렇게 나의 추억여행이 시작되었다. (누가 보면 영국에서 나고 자랐던 사람인 줄 알겠지만 전혀 아니다.)
영국에 도착해 처음 두어 달을 살았던 시골 마을 St. Albans에는 버스 노선이 다섯 개나 더 생겼고, 시티센터에 있던 피자헛은 자취를 감추었다. 옥스퍼드에는 Blackwell 서점이 여전히 시티센터 중심부에서 위용을 뽐내고 있었으며, 홈스테이하던 시절 초등학생이었던 주인집 아이는 고등학생이 되었다. 잠시 아르바이트를 했었던 런던 소호에 있는 일식집은 이상하게도 가는 길이 기억이 나지 않아 생존 여부를 파악할 수 없었다.
5년이라는 시간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일 것이다.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매일 아침 갓 구운 빵을 저렴한 가격에 먹어보겠다고 들렀던 테스코의 빵 코너에도, 집에 일찍 들어가기 싫어 무작정 타고 시간을 보냈던 이층 버스 맨 앞칸에도, 한국에 있는 친구들과 연락하고자 매일 같이 들렀던 도서관 컴퓨터 코너에도 과거의 내가 고스란히 묻어 있었다.
그렇다. 리마인드 여행의 묘미는 한동안 잊고 지냈던 과거의 나를, 그때의 감정들을 다시 꺼내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먼 훗날, 이 순간의 내가 그리워질 때 쯤 또 다른 리마인드 여행이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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