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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작가 Jun 22. 2021

내가 못 하는 걸 잘하는 내 아이

그래, 인생은 절대 평가로 살아야지.

  "엄마, 나는 새가 좋아요."


  아이가 새를 그려왔다. 나는 그림을 보는 건 좋아하지만, 그리는 건 질색이다. 어린 시절 글쓰기 시간은 빨리 지나갔고, 미술 시간은 길었다. 똑같은 김밥도 백일장에서는 맛있었고, 사생대회에서는 목이 메었다. 그중에서도 수채화가 제일 싫었다. 아무리 색을 잘 입히고 싶어도 잘 안 되었다. 나는 늘 다른 아이들을 곁눈질했다. 누굴 봐도 나보다 진도가 빨랐고, 훨씬 나아 보였다. 교실 뒤에 스케치북을 거는 것도 싫었다. 허락도 없이 왜 모두의 그림을 거는 거냐. 내 그림을 찾는 건 쉬웠다. 가장 색감이 연하고 흐릿했으니까. 누가 흐릿한 색감이 내 성격이라고 할까 봐, 나는 이렇게 호불호가 분명한데 하며 고개를 힘껏 내저었다. 저건 내가 아니야. 내가 내 그림을 거부했기 때문일까. 내 그림은 단 한 번도 내 눈을 마주쳐주지 않았다. 나도 슬쩍 곁눈질을 하며, 다음에는 꼭 잘 그려봐야지 했다. 잘하고 싶지만, 어째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 남들 다 쉽게 하는데 나만 힘들다는 느낌을 들게 하는 것. 그게 내게는 그림 그리기였다. 어른이 돼서 인생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 내 인생이 흐릿해질 때마다 나는 스케치북을 떠올렸다.  







  세상 부모들은 뱃속의 아기가 궁금하다. 나를 닮았을까 남편을 닮았을까. 어떤 부분을 얼마만큼 닮았을까. 우리가 무엇을 상상하든, 거기에 그림에 관한 건 참깨만큼도 없었다. 그런데 신은 아이를 보낼 때, 우리에게 없는 무언가를 살짝 담아서 보낸다.

 

  아이는 하얀 도화지를 부담스러워하지 않았다. 선도 자신 있게 긋고, 다채로운 색도 망설이지 않는 손으로 고른다. 그리는 내용도 상상 속의 익살스런 도깨비부터 시작해서 자신이 좋아하는 동물들까지. 요사이는 새에 대한 애정이 엿보인다. 조용히 지켜보는 과정이 즐겁다. 부리와 눈, 깃털은 색연필을 깎아 꼼꼼히 그리더니, 바탕은 오일 파스텔을 집어 칠하고는 휴지를 가져다 슥슥 번지게 처리한다.


  "엄마, 이러면 그림이 따뜻해져. 마술 같지."


  내게는 네가 마술 같다. 어디서 배웠냐고 물어보니, 학교에서 미술 선생님이 알려줬단다. 덩달아 미술 선생님까지 예뻐(?) 보인다. 이렇게 잘 가르치다니 분명 대단한 선생님이 틀림없다. 이상하다. 그림에는 그렇게 칭찬이 후하다. 기대감 없는 엄마의 한없는 칭찬과 그 칭찬에 기분이 한껏 우쭐해지는 아이. 선순환이다.

아이는 가끔 내게 어릴 때 쓰던 육아 일기를 읽어달라고 한다. 아이가 엄마의 눈으로 기록된 어린 시절 듣는 것을 좋아하는 것처럼, 나는 아이가 그려내는 세상을 들여다보는 것이 좋다.


  가끔 아이를 키우다 이 순간을 담아두고 싶을 때가 있다. 시간을 잡아다 담을 수 있다면 조약돌에 담겠다. 

평소엔 졸졸 흐르는, 나만 아는 말간 물가에 담가뒀다가 필요할 때마다 꺼낼 수 있게. 

오늘 같은 날을 담아다가, 내가 초조해지는 날 꺼내보겠다. 

내가 잘하는 걸 내 아이가 못 하더라도, 내 기대치가 높아지는 걸 자각할 때마다 꺼내보며 기억하겠다. 

내가 못하는 것을 잘하는 아이의 모습을. 너는 내 기대대로 사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아이의 즐거움에는 남의 시선이 없다. 그림꽝 엄마가 보기에는 너무 잘 그리는데, 다른 애들은 어떤지 궁금해졌다. "다른 애들도 이렇게 잘 그려?"라고 물었더니, "몰라? 다음에 한 번 볼게."라고 답하지만 업데이트는 없다. 자신의 그림에 집중하고, 비교대상 없이 자기 그림에 만족하고 뿌듯한 표정으로 들고 오는 아이는 꼭 혼자만의 레이스에서 일등을 한 사람 같다. 상대 평가 아닌, 절대평가 인생이다. 내 인생의 주인공은 진정 나라는 태도. 그래, 인생 그렇게 살아야지. 나도 아이의 실력을 비교하지 않기로 했다.


  모든 아이들은 성취감을 딛고 자란다. 내 아이는 늦게 걸었다. 돌이 지난 지가 한참인데, 남들 다 뛰어도 아랑곳없이 여유를 부렸다. 딱 한 달만 더 기다렸다 전문의한테 데려간다라고 했을 때, 드디어 아이가 걸음을 내디뎠다. 답답한 엄마 속도 모른 채, 발걸음을 하나, 둘, 셋 옮기고서는 온 세상을 얻은 듯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어서 손뼉 치라며. 자신만의 시간에, 자신의 인생 과업을 성공적으로 끝낸 이의 표정. 나는 이 표정에 압도당해, 세상 요란한 박수를 치며 아이와 함께 온 우주를 들어 올렸었다. 모든 아기들은 인생을 절대 평가로 출발한다.


  앞으로 수도 없이 아이를 남과 비교하고 싶을 때마다, 아이의 첫걸음마를, 아이의 그림을 떠올리겠다.

무엇을 하던, 그렇게 자신 있게 발걸음을 옮기고, 선을 긋고, 색칠을 하며, 너만의 인생을 그려나가길.

너의 인생이 네가 그리는 그림처럼 익살스럽고 따뜻하길 바라면서.


6.21.21.





방울토마토를 참새들이 와서 먹어치우자 아이가 그려 온 "무시무시한" 참새 퇴치용 올빼미. 화단에 꽂아뒀다. 옆은 멋있다는 East African Crowned Cra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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